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May 22. 2020

스마트폰을 보지않는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면 벌어지는 일

연애시절 최고의 장점이 결혼 후엔 최악의 단점으로

연애시절의 아내, 당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자 친구는 나와 데이트하면, 전화벨이 울릴 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일절 보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든 친구들과의 만남이든, 정작 앞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SNS나 메신저 속의 사람들과 소통하려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익숙한 요즘의 풍경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오거나 말거나, 친구에게 톡이 오든 말든 여자 친구는 신경 쓰지 않았다. 데이트 중 아예 스마트폰을 꺼내놓지도 않았기에 항상 내게 최선을 다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이 점이 참 고마웠다.


 결혼을 하고 한집에 살기 전까지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아내의 습관이 최고의 장점인 줄로만 알았지 최악의 단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연히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연락 가능한 위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사소한 불편함부터 큰 걱정까지 다양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연애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출장으로 보름 동안 인천에서 먹고 자고 할 때였다. 부서 회식으로 꽤 마셨다는 아내가 2차를 마치고 택시를 탄다는 연락을 하고 연락이 끊겼다. 술 마시고 집에 간다고 한 이후로 연락이 안 닿으니 온갖 무서운 상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전화를 50 통도 넘게 했던 것 같다. 신호가 가는 걸 보니 배터리가 나간 건 아니었다. 몇 분에 걸쳐 몇 번 더 전화를 걸어본 뒤에도 연락이 안 되자, 이제는 집으로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부르려 하던 순간,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 전화해 집 호출을 눌러 달라 부탁드리는 것. 자정도 넘은 시간에 수십 통을 전화해서 경비 아저씨와 극적으로 통화를 했다.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출장을 와있는데 집에 가던 아내가 연락두절이 돼서요. 저희 집 호출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편에게 꼭 연락 달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참으로 민폐였다. 하지만 성공적. 몇 분 뒤 아내와 연락이 닿았고, 택시 타자마자 스마트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평소처럼 집에 와 잘 때까지 한 번도 안 꺼내본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확인했다.


 신혼 시절 아내가 에스컬레이터에 부딪혀 응급실에 갔을 때도 그랬다. 딸이 신생아였을 때 손톱 주변의 살이 심하게 찢어져 응급실에 갔을 때도 그랬다. 아내는 쉬고 나는 출근하는 날, 집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할 때도 그랬다. 아주 사소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할 때도 항상 그랬다. 나는 계속 통신 축선 상에 연결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전화를 하면 3번 중 2번은 통화가 안 되고, 톡을 보내면 읽고 응답하기 까지 두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어느새 아내의 생활 방식에 완전히 적응했다. 함께 살아 보니 아내는 나랑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그냥 스마트폰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회사 사람들도 아내와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걸 힘들어했고, 심지어 장인어른, 장모님조차도 너무 연락이 안 돼 무슨 일 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시는 일도 꽤나 있었다 했다.


연애 시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여자 친구 뭐가 그렇게 좋아?”

그럴 때마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줘. 나랑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아예 꺼내지도 않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게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내는 SNS나 톡 같은 온라인 연결보다 그저 눈앞에 있는 현실 세계에 더 충실한 사람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참 보기 힘든 사람이었다. 사실 아내는 모두가 온라인에만 빠져 사는 이 세상에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엄지 척, 치켜들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 한 명을 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같이 사는 한 사람은 연락이 안 되면 답답함에 지쳐 쓰러 간다는 사실, 어쩔 땐 너무 걱정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사실도 가끔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제발요.......

이전 12화 내가 내일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