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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y 21. 2020

부부 애정 표현 변천사

다음엔 어느 곳에서 어디를 바라보며 어떻게 말하게 될까.


첫 만남

페이스북으로 아내를 처음 본 나는 아는 후배를 통해 공작을 시작했다. 흔히 볼 수 있는 3자를 통한 애정공세였다.


"S야, 그 친구 좀 한 번만 만나게 해 주라. 응?"


연애 초기

가장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거침없이 사랑의 언어를 속삭였다. 다른 곳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 앞에는 오직 너만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서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신혼시절

2년의 연애 뒤에 우리는 결혼에 골인했다. 서로만 바라보던 연애시절에서 90도 방향을 틀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다른 곳들을 같이 바라보게 되었다. 당신의 가족, 당신의 일, 지금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그 풍경을 함께 보며 말했다.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예비 부모 시기

우리는 다시 마주 보고 서게 됐다. 시선은 아래로 30도 정도를 향했다. 매일 아내의 배를 바라보고 쓰다듬으며 리기(딸의 태명)에게 동시에 같은 말을 건넸다.


"리기야 사랑해."


부모가 되고 몇 년 후

정면으로도, 나란히도 서 있지 못하고 떨어져서 육아 전투를 각자 수행한다. 그래도 한 번쯤은 꼭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무안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딸에게는 하루 수십 번도 하는 이 말을 아내에게 하려니 그게 그리 어렵고 힘들다. 고민 고민하다 아내와 놀고 있는 딸아이에게 조금 크게 말한다. 시선은 아내와 딸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30도 정도 떨어진 곳의 천장쯤을 올려다보며,


"하연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전해줘."

"치잇, 그게 뭐야...... 하려면 똑바로 해!"


문득 떠올랐다.

아내를 처음 만날 때도 3자를 통한 애정공세를 펼쳤던 것이.




어쩌다 한번, 딸아이 없는 둘만의 데이트

항상 셋이 있다 둘만 있으니 세상 어색하다. 음식점으로 향하는 길에 아내의 손을 잡으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그래도 조금 지나니 예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곧 기억이 돌아온다. 난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듯, 손을 잡고 걸어간다.


허락된 시간은 고작 두세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밥 먹으며 하는 말의 절반은 딸이 요즘 뭘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나머지 절반은 딸이 앞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둘, 우리 부부의 이야기는 1퍼센트나 될까.


음식점에서 나와 은근슬쩍 어깨동무를 해본다.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조금 지나니 다시 익숙해진다. 의외로 시간이 금방 갔다. 딸아이 봐주시는 어머니 힘드실까 봐 집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해야지, 말해야지 하다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이제 진짜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말한다. 위치는 아내의 뒤쪽 7시 방향쯤이다. 시선은 바닥을 보면서, 괜히 발로 바닥을 한번 쓸면서,


"여보 고생했어.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사랑해.)"




다음엔 어느 곳에서 어디를 바라보며 어떻게 말하게 될까.

"사랑해"는 할 수 있는 날이 있고 없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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