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거나 혹은 어른스럽게라도

어울다. 어울리다.

by 와온

그 승용차의 경로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블록버스터 그런건 아니고.... 마치 꽁트의 한 장면 같았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반대편 차로 건너 인도와 차도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정차되어 있는 승용차 한 대가 보였다.

근처 편의점에서 강아지를 안은 젊은 여성이 나오더니 운전석에 올랐다. 편의점 볼 일로 그렇게 차를 댔나 보다는 생각, 나도 가끔 담배 사려고 길가 편의점 앞에 저렇게 차를 대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꼴 보기 싫어했겠다는 생각.... 이런저런 잡념을 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그 승용차가 중앙선을 가로질러 달려오더니 함께 대기 중이던 여러 대의 차량들 속에서 마치 ‘고른 듯’이 내 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버렸다.


줄곧 보고 있었기에 중앙선을 넘어오는 그 승용차의 비현실적 경로가 영화장면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큰 사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방 운전자는 달랐다. 민, 형사 책임을 전부 지는 사고였다.

나로선 뒷목 잡고 길바닥에 드러누우면 넉넉한 합의금도 받아 낼 수 있는 유혹의 끝판 같은 그런 사고였다.

가해 승용차에서 운전자가 내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역시나 많이 앳되었다.

나는 50대 남성이고, 게다가 경찰이다. 나와 그녀 사이의 위계가 아주 명료했다.


그날, 나는 좀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상대방 운전자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운전자분’이라고 불렀다.

‘운전을 조심했어야 했다’느니, ‘강아지를 안고 운전하면 어떻게 하냐’ 느니란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 상태를 묻고,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 뒤 사고접수를 하고, 그 현장에서 사고처리를 마무리했다.

‘어린’, ‘여성’ 운전자를 (법적) 무지와 (차량 사고) 공포라는 덫으로 옥죄어 위계 구조 속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어른의 행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른의 어원이 ‘어울다’, ‘어울리다’는 동사라는 말을 들었다.

잘 어울리는 것. 이 세계의 생명과 생명 없는 것, 존재와 비존재 모두와 어울릴 수 있을 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잘 어울리기 위한 모든 규범과 양식이 그 호칭의 자격이므로 어른이라는 단어 앞에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꿈은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게 아니면 어른스럽게라도 살고 싶다.

p.s.
사고 현장에서 그 운전자는 내가 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을까? 좀 어른의 멋짐이 느껴졌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내가 아주 기특한데, 아내는.... 어이구... 인간아....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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