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예절이 아니고...

by 와온

한참이 지나도 각자 방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친히 모시러 가야 하나?

다시 한번 목청을 돋궈 아이들을 불렀다.


그날은 휴일이고,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아점을 먹게 된 날이었다.

각자의 방에서 뭘 하는지... 아내의 요리를 지켜보며 아이들을 몇 번이나 불렀다.


휴대전화기를 손에 들고 고개를 묻은 채 느릿느릿 식탁 앞으로 모여들었다.

겨우 모여 앉은자리, 딸아이는 그나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는데,

아들은 여전히, 밥상을 차리는 손 바쁜 부모와 달리 느긋이 앉아 상차림 동안 수저 한 쌍 챙기지 않은 채 휴대전화에 온통 빠져 밥 먹는 동안까지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무례한 버르장머리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밥 먹는 동안이라도 휴대전화 내려놔라!”

“아, 왜요.”

“왜요? 니가 사업하냐?”

“요즘 다들 밥 먹을 때 휴대전화 봐요.”

어쭙잖은 항변(?)을 한다.

“밥상머리 예절이란 게 있는데, 내려놓으라고 하면 내려놔라.”

최대한 점잖게 말했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는 식탁을 한 번 뒤엎고 다시 차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상상의 그 장면이 내가 수사했던 가정폭력 현장과 겹쳐 약간 웃기기도 했다.


맞은편에 앉은 아내가 눈을 움찔움찔하며 나를 말렸다.

‘나를 말린다고? 저 녀석을 봐라. 내 말이 틀렸어?’

나는 아내의 동조를 구하는 듯한 억울한 표정으로 저항해 보았지만, 점점 커지던 아내의 눈이 마침내 꾸욱하고는 내려 감기며 입술을 깨무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얼른 눈을 깔았다.

젠장!


침묵만 흐르고, 모처럼 가족이 전부 모인 휴일 아점 자리에
불쑥 나는 불청객이 되어버렸다.

이 사태가 억울했지만 나는 자기반성이 빠른 편.

‘아... 내가 망쳤구나’, 자책감이 이내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마당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전히 억울했다.

무엇보다 뭔가 아들놈에게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한 가정교육, 훈육이 제지당한 데서 오는 좌절감? 아무튼 묘한 기분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밥상머리 예절이니 식탁 예절 운운했지만 휴대전화 손에 쥐고 밥 먹는 것과
식탁 예절이 무슨 상관일까?

(나는 이럴 때면 왜 엄마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울 엄마가 자식인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계셨던 것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던 숱한 날들 동안 쉴 새 없이 나를 살펴보았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돌아보니 내 밥그릇과 국그릇이 비었는지, 어떤 반찬을 잘 먹는지, 몸에 좋고 맛있는 새 반찬을 몰라보고 거르지는 않는지, 먹는 게 시원찮기라도 하면 그 이유가 행여 몸과 마음에 생긴 크고 작은 병 때문은 아닌지를 계속 살펴 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눈이 어두워 가는 엄마가 혹시 머리카락이 감겨있는 나물 반찬을 집어 들지는 않으시는지 국물에 떠다니는 날파리를 못 본채 떠 잡숫지는 않는지, 음식을 대하는 엄마의 표정과 젓가락질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었다.

밥상에 둘러앉아 오롯이 먹는 것에 집중하며 엄마와 내가 서로를 살피고 서로의 입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후회가 밀려왔다.


연로하여 노쇠하셨던 엄마가 내게 베풀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사랑의 표현으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주려고 애쓰셨던 때가 생각이 났다.


담배를 끄고 자기 방에 있던 아들을 불러냈다.


밥 먹는데 아빠가 짜증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그리고 천천히 녀석 할머니 이야기와 나의 후회, 내 생각을 말했다. 마지막엔 당부를 덧붙였다.


아빠도 늙었는지 요즘 너희들 생선 발라 주다 보면 가시가 잘 안 보이더라는 말.
이제는 우리 가족들이 서로서로를 돌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말.
그리고 나의 노쇠함도 고백했다.


반전은 그날 저녁 밥상에서 일어났다.

먼저 내려와 수저를 놓고, 넓지도 않은 식탁에서 아들이 이리저리 반찬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주고 치워주고, 내 밥그릇이 비어 가자 ‘밥 더 드세요’라고 까지 한다.

가정교육의 힘인 건가? 으쓱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났다.

녀석이 요즘 나랑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역시 인생은 연속된 반전 드라마구나 싶다.


p.s.
딸랑구가 하루는 나에게 ‘아빠, 아빠가 저번에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최근에 알게 됐어’라며 남사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내가 손이 없어도 밥을 먹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말하지 않아도 반찬이 떨어지려고 하면 추가로 시켜주고, 물 잔이 비려고 하면 채워주고, 메인 요리를 정성스레 잘라서 밥에 올려 주더라’며, 그게 돌봄이지 않냐는 것이다.

‘아니야. 딸랑구, 잘 들어라... 그런 놈 믿지 마라. 나는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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