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고춧가루 한 스푼

by 와온

1년을 넘게 다녔던 단골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

지방경찰청(지금은 지방경찰청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에서 근무할 때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이른 아침 출근 후 사무실에서 5분 남짓 걸어 나와 그곳에서만 파는 1.8리터짜리 커피를 사곤 했었다.

커피는 자주 마시고 싶은데, 커피값이 부담스러워 선택한 나만의 궁여지책이었다.


나는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스타일도 아니고, 외모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숫기가 없어서 커피를 주문하고 받는 동안 종업원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거나 가게 밖에서 어슬렁 거리는 편이었다.

단지, 커피를 마치 오픈런하다시피 사러 가면, 매번 같은 종업원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사실 사장님인지 종업원이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정한 루틴으로 방문해 비슷한 커피를 사는 내가 그이의 눈에도 제법 익을 만은 했다.


그 무렵이었나 보다.

갑자기 그이가 주문한 커피를 건네며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손님은 옷 입는 스타일이 참 멋스러운 것 같아요.’


순간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나는 웃는데 내 얼굴이 찌그러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이는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한 마디 더 건넨다.

“전부터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나의 인지회로가 엉키고, 이놈의 경찰관의 의심병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중년의 볼품없는 내게 젊고 활기찬 여성인 그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나한테 뭘 바리지?

No, No. 절대 로맨스... 그런 건 내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진짜다.

나는 변변찮은 호응도 하지 못한 채, 1.8리터짜리 커피 통을 들고 총총총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날 하루는 수시로 거울을 봤던 것 같다. 친한 직원들을 만나면 자랑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다음 날부터 나는 단골 커피점을 옮겼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침마다 갈아입고 갈 옷이 변변치 않았다.

그렇다고 이만저만하니 새 옷을 사달라고 하면 아내가 사줄 리 만무하지 않나.

그리하여 그날 아침의 낭만에 나는 고춧가루 한 스푼을 더했다.


p.s.
오늘 아침 담배 한 대 피우고 내려오는 옥상 계단에서 옆 사무실 후배를 마주쳤다. 먼저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네며 한 마디 했다. ‘야 아무개야. 넌 옷 입는 스타일이 멋있는 것 같다.’

자 이제 그 친구의 낭만에는 설탕이 더해질까. 고춧가루가 더해질까.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