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의 미움을 받다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 고아원에 맡겨졌다.
중년이 된 K는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고, 명절이 오면 자라나는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물어오는 게 점점 곤욕이 되었다.
K도 어머니가 그리웠지만 새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신을 쫓아냈다는 미움과 그보다 큰 두려움 때문에 선뜻 어머니를 찾아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의 이름 석자, 그리고 지금은 재개발, 재건축으로 변해 버린 유년시절 자란 동네가 어디쯤이라는 작은 기억이 어머니에게로 가는 지도로서 K가 가진 조각 전부였고, 어머니를 향한 간절함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남을 바라지는 않는다.
거절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움에 머무를 때가 유일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지방경찰청에서 장기실종업무를 담당하며 만났던 K와의 일화다.
공적인 기록으로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흔적을 보완하고, ‘추적’을 위한 단서들을 모으기 위해 K와 여러 차례 면담했던 것 같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는 어렴풋했고, 고아원의 기록에도 부모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재혼가정이거나 미혼모, 혼외자의 경우 보호자란이 공란 처리되기도 하니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내려놓은 먼지에 둘러 쌓인 부재(不在)가 막막해 보였지만, K는 자기 이름과 어머니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머니의 연령을 가늠해 경찰 전산망을 뒤졌다. 사망자를 제외하고 보니 전국에 동명이인이 20여 명 조금 안 됐다.
호적등본(지금의 가족관계등록부)을 뒤지고, 주민등록 사진자료들을 정리해 K에게 먼저 보여줬다.
역시나 어렸던 그의 기억 속 희미한 어머니를 35년을 훌쩍 뛰어 건너와 컬러 명함판 사진 한 장만으로 단박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발품을 팔아야 했다. 부산에서부터 북서진하기로 했다.
울산과 경남 등 몇 군데서 허탕을 친 뒤 나의 운인지, K의 간절함이 만든 기적인지 대구쯤에서 K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K가 만나고 싶어 하는 당사자는 어머니다. 재혼가정이므로 K의 각성바지 형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K의 그리움만을 앞세워 어머니를 그녀의 가정에서 불쑥 불러낼 수는 없다.
빌라 현관 입구, 반쯤 열린 문틈으로 나는 정중하고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여쭙고, K의 이름을 말했다.
‘누구요? 누구?...... 아......’
‘......’
‘들어 오이소.’
K의 어머니가 말했다.
‘난 걔 친엄마 아닙니더.’
K의 어머니, K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계모였다.
계부라고 했던 아버지는 친아버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K의 기억은 계모의 살가웠던 돌봄과 친부의 냉정함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 사실을 K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를 궁리하며 그녀에게 K는 친어머니로 기억하고 있고 무척 뵙고 싶어 한다 전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잘 컸더라는 안부를 전했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좋은 직장에 다니며 이쁘고 영리한 초등학생 딸을 두고 아내와 잘살고 있음을 미리 받아 둔 내 휴대전화기 속 K의 가족사진으로 확인시켜드렸다.
K를 만나 그의 기억과 다른 가족사를 설명해 주었다. K는 여전히 어머니가 보고 싶다 했다.
내가 중간에 끼어 만남을 주선하기로 하고, 날짜와 장소를 정했다.
약속 장소에 K는 가족 모두가, 대구에서는 K의 어머니만 참석했다. 친부는 여러 번 권했지만 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내 몫의 짐이 아니므로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K는 사실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마치 처음부터 자신을 품고 젖을 먹여 키워주신 이를 대하듯 두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받친 채 정성스럽고 다정하게 여러번 어머니를 불렀다.
K의 딸은 할머니를 마침내 만났다는 사실이 축제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본 딸 중 손에 꼽히는 귀엽고, 활기차며 붙임성 좋은 소녀였다. 한번 보고 나를 삼촌이라고 했으니 말해 뭐 하겠나.
나까지 끼워서 첫 가족사진을 찍었고,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말로 K가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넨 후로,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들 계신지 나는 지금 모른다.
K의 아버지가 손녀의 재롱 앞에서 어떤 ‘할배’가 되어계실지는 조금 궁금하다.
가끔씩 K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