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는 16살이었다.

by 와온

정현(가명)이는 16살이었다.


이 녀석 만행은 엄청났다.

관내 벌어진 차량털이 사건 대부분의 주범이었으며,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휘젓거나, 동년배 아이들의 돈을 빼앗고, 때리고...

우리 동네 또래와 학부모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정현이는 얼굴이 잘 생겼었다. 하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래서 정현이에게 나는 가끔 ‘넌 영화배우해도 되겠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정현아. 배 고프면 아저씨 찾아와라. 애들 돈 뺏지 말고’


어느 날 주간 근무를 위해 출근했더니 파출소 옆 창고에 전날 아침 퇴근 때까지도 없었던 50CC 오토바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된 걸 보니 교통사고 증거물인 것 같았다.

전날 야간근무자의 업무 인계사항을 들어보니 간밤에 연석을 밟고 전봇대를 정면 충돌한 오토바이 단독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운전자는 병원 후송되었는데 의식불명이라고 했다.

정현이었다.

며칠 후 순찰을 돌다가 정현이 집을 찾아갔다.

녀석의 아버지를 만났다. 정현이는 누나가 있는데 두 남매는 아버지를 별로 닮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혼 후 어린 정현이 남매를 두고 일찌감치 떠나버렸고, 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 말로는 훔친 오토바이로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를 낸 것이라고 했다.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전봇대를 정면으로 충돌한 사고여서 머리를 가장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치료비만 벌써 9,000만 원이 넘었고 병원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라 더 이상 치료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했단다.

치료를 중단하고, 장기기증 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녀석의 어떤 마지막 속죄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9천만 원 병원비 명세서 앞에서 그건 숭고한 선택이 아니었다.


20평도 안 되는 낡은 연립주택에서 그래도 계속 이어져야 할,
아버지와 누나의 삶을 위한 유일한 퇴로였다.


정현이 아버지는 아주 담담해 보였다.

어떤 아쉬움이나 자식의 목숨에 대한 미련, 죄책감 같은 것을 읽어 낼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나의 어떤 연민, 녀석의 목숨에 대한 안타까움, 더 말리지 못한 죄책감의 부재였고, 그것은 나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오래지 않아 녀석의 친구들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떠났다고 했다.


그 사고가 있기 한 달 전쯤, 정현이가 쟤 녀석 같은 무리 너 댓을 이끌고, 하얗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었다.

‘아저씨 배고파서 왔어요.’

내가 했던 말을 핑계 삼아 친구들 앞에서 일종의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내 주머니 형편과 상관없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녀석 또래의 먹성을 내가 모르지 않지만, ‘약속’ 같은 것을 했으니 머리를 굴려 1+1 피자를 찾아 네 판을 시켜 파출소 근처 공원 정자에 녀석 무리를 앉혀 두고, 나누어 먹였다.

‘피자헛 아니네? 아이 씨 이거 맛없는데...’

녀석은 염치라고는 모르는 녀석이었다.

녀석을 두고 가정교육이 어떠니, 버릇이 어떠니, 싸가지를 운운할 수 없었다.

녀석의 가정사를 내가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앞에서 먹던 피자를 서로 던지고 받는 모양새가 나를 조롱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 먹었다며 가겠다는 녀석과 그 무리들에게 또 배고프면 애들 돈 빼앗지 말고 아저씨한테 오라는 말을 남기고 내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백미러로 보니 녀석이 뒤에서 순찰차, 아니 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 욕을 여러 번 날리고 있었다.

그냥 못 본척했다. 내가 말로써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정현이를 경험한 후로도, 여러 명의 정현이 같은 아이들을 알고 지냈다.

걔 중에는 조손가정의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어 할머니께 번듯한 집을 사드렸다며 나를 찾아와 자랑하던 녀석도 있었고, 여전히 어른 망나니로 사는 녀석도 있다.


정현이가 살아 있다면 서른 살쯤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정현이를 생각하면 좋은 청년, 좋은 어른이 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만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선배 작가님 전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