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조사실 의자에 앉아 있는 최갑수를 다시 마주했다. 오전 6시 30분. 이번에도 죄명은 스토킹이다.
이미 정을순에 대한 스토킹으로 실형까지 살고 나왔던 그였다. 출소 후 한동안 뜸했었는데, 그가 그녀의 집을 찾았갔다는 신고가 다시 접수되었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옆 팀에서도 그의 사건을 여러 차례 처리했었다. 법의 눈으로 보면 그는 교화되지 않는 집요한 가해자였다.
“최갑수 씨, 왜 또 갔습니까.”
“을순이가 오라고 하데요.”
“이 새벽에 오라고 했다고요?”
“아니예. 어제 낮에 집에서 같이 술 마시는데 멸치 갖다 달라해서… 그거 주러 갔지예.”
질문을 던지며 그가 메고 있던 낡고 해진 등산 가방을 열게 했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그의 말처럼 멸치가 가득 든 검정 비닐봉지가 보였다. 그리고, 대용량 옥수수 과자 한 봉지가 생뚱맞게 들어 있었다.
“이 과자는 뭡니까.”
“을순이가 좋아해서 주려고….”
“최갑수 씨, 당신 말대로 오라고 해서 갔어도 문 안 열어줬으면 그냥 집에 돌아가지 왜 밤새 주변을 서성이다가 이 새벽에 다시 찾아갑니까?”
“을순이가 멸치 먹고 싶다고 계속 문자하고 전화해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전날 오전부터 시작된 술자리. 취기가 오른 정을순은 고향 어머니가 보내 주신 멸치가 맛있더라는 최갑수의 말에 ‘나도 멸치 좋아하는데’라며 '볶아서 안주하자', '당장 가져와라'는 억지를 부렸다.
최갑수의 집은 그곳으로부터 지하철로 왕복 두 시간 거리였다. 최갑수는 내일 가져다주겠노라 달래며 귀가했지만, 정을순의 성화는 멈추지 않았다. 밤늦도록 독촉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결국 밤 11시가 넘은 시각,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최갑수는 멸치를 한 봉지 가득 챙긴 뒤 그녀가 좋아하는 과자까지 사 들고 마지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 돌아온 건 냉대였다. "이 시간에 왜 왔노. 당장 가라"는 문전박대에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근처 공원에서 깡소주를 마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고, '그놈의' 멸치를 기어이 전해주려 다시 문을 두드리다가 을순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수갑이 채워진 것이다.
최갑수의 주장은 핸드폰 통화 기록과 문자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정을순의 행동 패턴도 이전 사건 기록들과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정을순은 그를 수시로 호출했다.
장판을 깔아달라, 수도를 고쳐달라, 반찬거리가 필요하니 장을 봐 와라. 혹은 그저 심심하니 놀러 오라.
최갑수는 그 (심)부름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실은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동안도 정을순의 호출은 계속 있었고, 최갑수는 정을순 집에서 여전히 수발을 들고 노동을 봉납했다-그러다가 을순이의 감정이 돌변해 퇴거를 요구하면, 그는 당황하며 버티다가 결국 그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기를 반복했다.
이것이 두 사람의 히스토리다.
나는 최갑수를 여러 번 조사했었고, 앞서 스토킹범죄로 구속시켰던 이도 나였다.
그때마다 나는 성경 속의 한 인물과 관련된 콤플렉스를 떠올리곤 한다.
법의 눈으로는 유죄임이 분명하나, 인간의 눈으로 읽히는 비극을 나는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삼손과 데릴라 콤플렉스.
데릴라는 사자를 맨손으로 죽이고, 혼자서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과 겨루어 때려눕히는 삼손의 연인이 되어, 여러 날의 잠자리에서 그 힘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삼손은 거짓말을 해 보지만, ‘그녀가 날마다 그를 재촉하자 그의 마음이 죽을 지경(사사기 16:16)’이 되었고 결국, 자신의 긴 머리를 자르면 힘이 빠진다는 비밀을 말하고 만다.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삼손이 데릴라의 정체, 즉 자신의 약점을 찾아 해치기 위해 보내진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내치거나 떠나지 못하고,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알려 준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 때문에 감옥에 갇혀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삼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신체적인 죽음이나 힘의 상실이 아니라, 사랑하는 데릴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었다. 데릴라는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사사기 16:15)"며 삼손의 사랑을 인질 삼아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삼손에게 데릴라의 거절은 무저갱의 공포였기에, 결국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비밀을 말하고 만 것이다.
최갑수와 정을순.
최갑수는 전과자가 되거나,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는 사회적 죽음보다, 최을순으로부터 거절당하고, 그녀의 필요에서 지워지는 소외가 더 두려웠을까? 최갑수의 비극은 거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물론, 최갑수의 비극은 나의 감각적 해석일 뿐, 법이 고려할 사항은 아니므로 최갑수의 행위는 위법성을 따져 물어 응당의 처벌이 뒤 따랐다.
최갑수와 정을순의 사건은 가끔 우리 동료 수사관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하는데, 그 시작은 나의 입으로부터 이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되돌아본 나의 삶이 특히 최갑수와 다르지 않았다는 통찰 때문이다.
거절의 공포는 1대1의 인간관계에만 있지 않으므로 내가 몸담은 조직, 지역사회, 학교와 가족, 모든 곳, 모든 관계에서 나 또한 거절 공포 때문에 무모한 책임과 헌신을 요구받으면서도 수긍하며 살았던 것 같다.
최갑수가 정을순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돌아온 것은 '이 시간에 왜 왔냐. 당장 가라'는 그로서는 황당했을 냉대였다. 기어이 멸치를 전해주려 밤새 공원을 서성였던 그의 시간은 그 매몰찬 말 한마디에 소멸했다. 그런데 이 허망한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타인의 변덕스러운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 소중한 생의 조각들을 깎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해 가족 여행 중에 출근했던 날, 정작 내 아이의 졸업식은 가지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보호한다며 근무를 자청했던 날들. 최갑수가 문전박대당하면서도 품에 안고 있던 그 '멸치 봉지'는, 나에게는 '나쁜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해 아내 몰래 빚을 내어 바쳤던 그 돈뭉치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정을순의 기분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바쳤고, 나는 조직의 기대를 위해 나의 소중한 '지금'을 바쳤다.
나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세상의 시선에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잘못과 시대의 무게를 구분하고, 나의 약함과 한계를 오롯이 수용하는 것.
그것은 결코 무책임이 아니라 남은 생을 온전히 나로서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서 세상의 수많은 데릴라를 향한 '거룩한 거절‘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