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회의를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아 그건 너무 말도 안되는 병맛이라… 아 그건 감이 잘 안와요… 아 그건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는데…”
러프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디벨롭 할 아이디어를 추린다. 내 생각에 이 과정은 잘못되었다. 세상에 버림받아 마땅한 아이디어는 없다. 모든 아이디어는 구체화되면서 힘이 생긴다. ‘이런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회의실에서 머릿 속에 성공한 그림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한 사원의 투정부림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이걸 진짜로 했네…’라는 감탄사가 나올법한 콘텐츠가 사랑받고 이슈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8GiTBnFq0
그랑사가의 광고영상 연극의 왕. 광고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영상이다. 그 유명한 돌고래유괴단에서 작업한 영상 콘텐츠로 조회수만 734만회를 기록했다. 물론 광고 집행을 했겠지만 광고인이 아닌 일반 친구들과의 메신져에서도 공유될 정도면 정성적으로 성공한 광고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영상은 러닝타임 10분 중에 마지막 2분이 되기 전까지 무엇을 광고하는지 알 수 없다. 역대급 배우들의 명연기와 주인공 격인 김강훈 배우의 당황한 표정이 전부다.
우리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처음 이 영상 아이디어가 나왔을 회의자리로 돌아가보자.
한 PD가 말했을 것이다. “요즘에 그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가 유행이잖아요. 연기를 진짜 잘하는 배우들이 나와서 역대급 연기로 어그로를 끌고 마지막에 게임을 딱 보여주면 어떨까요?” 물론 정확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했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저 아이디어를 흘려듣지 않고 구체화 시키고 잘 닦아서 제작한 결과물은 엄청난 퍼포먼스를 냈다.
10분의 러닝타임, 배우들의 출연료, 합성작업만 생각해도 절대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구체화와 실행력의 힘이다. 아이디어는 항상 있다. 중요한 것은 구현의 디테일과 실행력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8ZcWRbQkM
예시를 하나 더 보자. 이마트의 와인장터 광고다. 가상의 와이너리라는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와인을 일상적으로 마시면서 ‘와인은 어려운 술이 아니다.’라는 대의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 머리 속에 이 모든 디테일이 단번에 그려졌을까? ‘와이너리’라는 마을, 메주 달듯 와인을 메달고 있는 어르신, 새참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어르신들. ‘와인 먹을 때 이름을 꼭 알아야돼?’ 정도의 메시지는 생각을 했지만 어르신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까지 생각해내진 못 했을 것이다. 1명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러면 더 재밌겠는데?’와 같은 생각이 붙고 붙어 디테일을 완성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디벨롭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아 이건 무리다.’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말고 디테일하게 내뱉어보는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입밖으로 뱉고 보면 그 아이디어에 다른 사람이 살을 붙이기 시작할 것이다. 혼자서 주구장창 노트에 끄적여 보고 감탄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물론 그 전에 생소하고 불편한 아이디어도 수용할 수 있는 회의 분위기가 되어야겠지만.
얘기가 길어졌지만 결국은 아이디어 채택에 관한 이야기다. 러프한 아이디어를 보고 채택해서 디벨롭하는 것이 아니라 디벨롭된 아이디어들 중 실행할 아이디어를 채택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디벨롭은 디테일할수록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행력. 팀원들끼리 재미있게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다가 그냥 웃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광고회사에서 그렇게 스쳐지나간 아이디어만 수만 수천가지일 것이다. 생각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텍스트로 남기고 곱씹어보고 비쥬얼 레퍼런스도 찾아봐야한다. 아이디어는 움직여야 힘을 받는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만약에 내가 여러가지 광고를 보고 든 생각들을 단순히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었다면, ‘주임이 무슨 마케팅관련 글을 써…’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글은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