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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치부자 Aug 24. 2024

이혼하는 중입니다.

feat. 몰래 짐싸서 아이둘 데리고 도망치던 아련한 그 날의 기록

2023년 6월 15일 별거 시작일.


30만 km가 넘은 낡고 그르렁거리는 sm5에

짐을 한가득 실고 아이들 둘을 태워 달려왔다. 





그날은 내 삶의 제2막이 시작된 날이었다.

나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을 

행동으로 실현시켰다. 


그 일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나는 프로젝트 이름을 지었다. 

이름하야 프로젝트명 


존엄성 지키기 프로젝트





엑셀 파일을 만들어 

가장 중요한 아이들과 머물 거주지, 

챙겨야 할 짐, 예산, 리스크에 대해 

알아보며 준비했다. 

(확정 짓고 싶진 않지만 

MBTI 검사에서 항상 J임.)



그날, 차 안 가득 실린 짐에 

두 다리를 하늘로 향해 앉아있는 아이들과

 어둑어둑한 저녁 달려가던 그 광경을 

평생의 아련한 기억으로 가져갈 것 같다. 


나는 마치 멀리서 그윽이 지켜본 느낌이다. 


독립의 그날을 위해서 

인터넷으로 미리 부동산을 알아보고 

방문하여 계약하고,

약 1시간 30분 거리의 별거지로 

짐을 7번 몰래몰래 옮겼다. 

이미 나의 존재감이 희미해졌고, 

회색돌 전략*을 통해

(*어떤 상황이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전략)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철저히 숨겼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시부모님이 함께 사시는 중이라 

조마조마한 순간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연로하기도 하셨고 

또 전혀 티를 안 내면서 움직였기에

눈을 피하기가 생각보다는 꽤 수월했다.



떠나는 그날, 아무도 집에 없는 틈을 타 

아이들 수저, 애착이불, 그리고 

평소 애정하는 접시까지 살뜰히 챙겨 왔다. 

어차피 쓸 일 없겠지만 

아이들 세탁세제까지 

탈탈 털어가는 나를 보며 

'나도 참 독한 X구나.' 했지만,

별거는 현실이니까 

나는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했고 

이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 짐은 남겨두면 

정말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떠나는 날 헌 옷 정리 사장님을 불렀다. 

나의 거의 대부분의 짐은 모두 버리거나

  나눔을 하고, 

꼭 필요한 옷을 빼고는 다 팔아버렸다. 


나는 옷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옷을 입었을 때의 

과거 모습, 기억이 담겨 있던 옷들은 

자주 입더라도 다 팔았다.

놓을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기에.


그리고 깜짝 선물로 값으로 만 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누워만 계시던 시아버지는

  옷가지를 한껏 수거하는 것을 보고 

'뭘 이렇게 많이 가져가나.'

하셔서 눈치가 보였는데, 


'아 안 입는 옷들 정리 좀 하려고요.'

대충 둘러댔다.  


마음이 틀어지면 

나에게 일하러 나가지 말고 애들 책임지라며 

아이들 등하원을 해주지 않는 시어머니 덕에

 아이들 하원을 틈타 바로 픽업을 했다. 

오전에는 먼저 어린이집에 들러 

원장님과 면담을 신청하여 

사정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왜 이렇게 떠날 수밖에 없는지. 


참으로 갑작스러우셨을 거다.

그런데도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은

  정말 훌륭한 어른이셨다. 



"OO엄마, 

가서 정말 건강하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이들과 잘 사세요. 

그리고 아이들 아프거나 하면 

절대로 내가 이혼해서 나 때문에 아픈가 보다 

이런 생각하지 않도록 하세요.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알겠죠?"



그날, 나와 아이들을 

지켜주고 보듬어주던 천사의 말씀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친정집이 아닌 양평의 어느 휴양지로 갔다. 

혹시나 전남편이 찾아오거나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전남편이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를 

어릴 적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누가 잘못했든 와서 숙이고 다독거리는 일은 

전남편이 절대로 없는 일이었다. 



직면하는 일

인정하는 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별거 후 나를 다시 찾아온다면 

그가 이런 일들을 해야 하기에 그는 오지 않을 터였다.

나는 그의 패턴을 99.999% 정도는 

맞게 읽을 수 있다.

지금도 저쪽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어디서 나온 맥락인지 99.99% 맞추는 편이다. 


그러나 겁이 많은 친정엄마는

  며칠은 딴 데 가있으라고 했다. 


나는 그 무엇보다 아이들을

  전남편에게 절대 내어줄 수 없었기에, 

나의 계산은 명확했지만 

만에 하나를 고려하여 

다른 데로 며칠 가있기로 했다.



저녁 7시 30분이 넘어, 전남편이 퇴근했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전화를 계속 안 받으니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수신차단을 하고 

지금 이렇게 연락할 것은 아니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문자를 했다.

친정식구들과도 미리 이야기하여 

연락을 받지 말라고 상의해 두었다. 


전화가 오는 순간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가 어떻게 나올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그에게 겁주기 위해서 벌인 별거가 아니었기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이 관계에 조금의 후회도 미련도, 

감정도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없어서

내 인생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마치 어벤저스의 타노스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것처럼

 나는 그 유일한 한 번을 실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첫 여행. 

아이 둘을 혼자서 케어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나는 근 10년 만에 

가장 편안한 여행과 쉼을 누리고 돌아왔다.  







//

별거를 시작한 지 일주일 뒤,

나는 이혼고소장을 제출했다.






잘했다.

전투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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