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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도입할 뻔했던 전투기, 쌍꼬리의 악마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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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때다. 무스탕이나 썬더볼트가 나오기 전, 미국의 대다수 파일럿들은, 어떤 전투기를 타고 싶어 했다. 그 전투기 파일럿들이 자기 기체를, 이렇게 불렀으니까.


"하늘의 캐딜락."


일본 파일럿들은 이런 별명을 붙였다.


"쌍동(雙胴)의 악마."



*그야말로 쌍동의 악마 아닌가? 기수에는 1정의 강력 20밀리 포, 역시 만만찮은 12.7밀리 기관총 4정이 달려있다. 출처: wikimedia.org



1인승의 이 쌍발 전투기. 2개의 엔진으로 내는 묵직한 파워는 기체를 몹시 빠른 속력까지 도달케 했다. 게다가 화력도 좋았다. 그리고 최고 장점은 항속력이었다. 전쟁 중반까지, 미국 전투기 중에 가장 멀리 날 수 있었으니...


록히드 P-38 라이트닝이다. 라이트닝은 당연히 번개, 결국은 그 이름처럼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만다. 먼 하늘을 날아가, 번개처럼 적을 해치워 버리는 일.



*P-38의 배틀 액스(전투 도끼)가 지금 제로 전에 대한 도끼질을 끝내고 있다. 출처: markkarvon.com



희유의 공중 암살



미국은 꼭 죽여야 할 일본인이 있었다. 연합함대 사령 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였다. 일본 해군 중, 가장 머리가 좋고 유능한 자. 그리고 지구 상 가장 유력한 함대였던 연합함대를 지휘하는 자.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입역자니까.



*야마모토 이소로꾸 제독, 왜정 시대를 산 우리 윗세대들은 이 자를 다 알고 있다. 출처: shootingparrots.co.uk


일요일 아침, 진주만을 항공모함 6척으로 들이쳐, 시민과 군인을 죽이고, 주력 전함을 침몰시키거나 손상을 입힌, 그 기습을 발상 해내고 애초부터 계획을 짠 인간.


그 인간을 노린 공중 암살에, 라이트닝이 선택된 것이다. 미 해군이나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 중, 당시 그렇게 멀리 날아가 습격을 시도할 전투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P-38이 뽑혔고, 15대의 기체는 700킬로 이상 먼 거리를 날아가, 정확히 야마모토 이소로꾸가 탄 폭격기를 포착! 쇄도한다.



*거의 700킬로를 날아가, 야마모토가 탄 해군 육상 공격기(거의 폭격기다)를 격추하는 P-38. 출처: aviation-history.com


그리고 일제 사격!

불덩이로 만들어 정글로 추락시켜 버린다.


역사에 없는 공중 암살이다.



*야마모토가 탔던 일본 폭격기. 출처: bougainvillenews.files.wordpress.com



근데 이 전투기가 한국 공군에 도입될 뻔했다고?

쌍발 전투기 P-38 라이트닝이? 아니 언제? 그리고 몇 대?



50대를 한국에 이관하라!



제2차 대전이 끝나고, 극동 아시아에는 두 가지 천지개벽할 일이 생겼다. 하나는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진주,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을 지배하는 일. 또 하나는 한반도였다. 얼마 전까지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이, 그럭저럭(?) 독립국이 됐다는 사실.


그리고 독립국한테 필요한 건 자체 군대였다. 그중에서 특히 공군이. 육군은 젊은 장정들을 모아, 소총 1정만 쥐여주면 신생국으로선 그럴듯하다. 그러나 공군은 다르다. 비행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소박한 공군이라도 전투기, 훈련기, 연락기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이런 기종들을 구하는데, 전투기는 구하지 못하고, 훈련기만 들여온다.


남이 쓰던, 중고 T6 텍산.



*텍사스 인이라는 미 공군 텍산 훈련기, 2대가 비행 중이다. 출처: aviation-history.com



그런데 전투기는?

그냥 제로(0).


단 1대도 들여오지 못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뒤라, 구형 전투기들이 흘러넘쳤다. 민간인들한테도 고철 값 이하로 불하가 되고 그러는 시대. 그래서 요령 있게 찾아보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한국은 그래서 그냥 연습기로 만족하고 있는데, 문제는 38선 위의 북한이었다. 소련으로부터 전투기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으니까. 야크 전투기 등을 비롯해, 그 유명한 대전차 공격기 일류신 등등.



*소련의 야크 전투기. 그중에서도 야크 3이다. 출처: fiddlersgreen.net



이때 도쿄에 있던 미군 사령부. 사령부 내에서 이런 이야기가 돈다. 비행장에 진주한 전투기들 중에서 한국 공군한테 일부분을 이관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이야기.


"북한에 비해, 한국은 전투기가 한 대도 없잖아?"


이런 비교론도 힘을 얻었다. 그래서 주둔 미군 사령부는 검토에 들어간다. 아니 워싱턴이 있는데, 주일 미군 독자적으로 이런 결정을 해? 지금과 같이 전투기가 천문학적 금액을 호가하는 시대가 아니다. 전투기 한 기종 당 1~2만 대씩 만들어졌는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처치 곤란이 되던 그런 시대다(P-38도 거의 1만 대 생산됐다.).


그러니 일본에 있는 전투기를 한국에다 원조해 주는 건, 충분히 미군 사령부 재량권 하에 있던 시대. 그 전투기가 바로 록히드 P-38 라이트닝이었다.



*번개, 라이트닝. 독일이나 일본 파일럿 중에선 '사다리' 전투기라고도 불렸다. 출처: kitcutters.com



원조 숫자도 적지 않았다. 50대! 상당히 많은 대수다. 이 숫자를 한국 공군에다 주자!


물론 이 P-38 라이트닝 50대 이야기, 오피셜로 뜬 건 없다. 1940년 대 말, 주일 미군 사령부의 독단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가 이 사실을 안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마틴 카이딘이라는 미국의 항공 사가가 쓴 책, P-38.


당시 미 육군 항공대(공군이 아직 없었다.)의 고고도 요격기 요청에 의해 개발되고, 비행하는 과정, 그리고 각 타입의 발달과 전투, 그리고 일본 항복 이후, 일본 각 비행장으로 진주한 P-38에 대해 상세히 쓴 책.


여기에 50대 한국 공군 이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뒷부분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P-38의 한국 이관은, 브레이크가 걸리게 된다."


이유가 뭔가?


"한국이 이 전투기를 가지고 있으면, 북한을 도발하고, 그 도발은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잘 못 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 이런 이유로 P-38 이관은 불발이 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몹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만약 50대가 제대로 이관됐다면? 한국 전쟁의 큰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개전 초기, 우리 정부와 군의 대 혼란과 실수, 그리고 참담한 패배 같은 게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이지, 우리 대한민국은 그때 얼마나 멍청한 짓을 많이 했는가? 필자는 그래서 두 가지 각도에서 추측을 해 본다. 하나는 P-38 라이트닝 전투기들이 도입돼, 전쟁 초기 제대로 활약한 경우, 또 하나는 그렇지 못한 경우다. 도입이 됐는데도 망신만 당하는 경우. 



P-38에 대한 두 가지 추측



우선 제대로 활약한 경우다. 라이트닝은 알다시피 쌍발이다. 거의 3천 마력의 힘. 그래서 캐더록 수치를 뛰어넘는 폭탄을 단다. 거기에다, 기수에는 20밀리 기관포, 12.7밀리가 줄줄이 달려있다. 특히 20밀리는 북한 탱크 T-34에 대해, 정면이 아니라면 얼마든 뚫을 수 있는 관통력.



*북한과 소련의 T-34/85 형, 제2차 대전 때 소련 기갑 주력은 T-34/76로, 76.2밀리 포를 장착했으나, 후기부터는 훨씬 더 강한 85밀리 포의 탱크가 나온다. 그것이 바로 사진에 있는 T-34/85 형. 북한은 이걸로 밀고 내려온다. 출처: moderndrawings.jexiste.be



그래서 만약 한국 전쟁 첫날, 북한 공군의 기습 공격에서 이 라이트닝들이 살아남았다면, 탱크 침공로가 뻔한 우리나라 지형 상, 어느 정도 저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것으로 인해 북한 기갑 부대의 서울 침입을 상당히 늦출 수 있고, 늦추게 되면 급박한 서울 포기라던가, 한강 다리를 매정스럽게 끊고 철수하는 등의 비극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고.



*끊어진 한강 다리. 이래 놓고 정부는 줄행랑. 서울 시민들은 오도 가도 못 했다. 물론 북한군 도강 시간을 좀 벌었다고 하지만... 출처: wmk.kr



물론 전세에 의해 서울을 뺏길 수밖에 없다고 쳐도, 한강 방어선에서 꽤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추측, 제대로 활약을 못 했을 경우다. 북한이 기습을 한다면, 첫 번째 목표가 공군 비행장이 된다. 우리 군은 남침에 대한 낌새를 전혀 몰랐다. 따라서 북한의 일류신이나 야크기의 공격에, 속수무책 활주로에서 당했을 확률도 크다. 초장에 P-38들이 다수 격파되는 거다.


하나 더 비관적인 건, P-38 라이트닝의 가동률이다. 이 기체, 정비가 쉬운 편이 아니다. 하늘의 캐딜락이라 하지 않던가? 까다롭다. 또 터보챠지의 액냉식 엔진이라 엔진에 대한 정비도 정비지만, 쌍발 엔진이니 다른 전투기에 비해 2배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정비 경험이나 기술 축적이 거의 없던, 신생 공군 우리 정비병들이, 50대 상당의 P-38을, 언제라도 출격시킬 수 있게 정비했을까?


아마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동률이 바닥을 기지 않았을까? 따라서 P-38이 도입됐다 해도, 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뛰어난 활약을 하기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가 1950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의 일.

실제 우리 공군엔 구식 전투기 1대 조차 없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뒤라,

대량의 전투기들이 폐기처분이 되고,

민간인들한테 불하도 되는 시기인데...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초음속 제트기를 수출한다. KAI 골든이글 같은...



*필리핀에 수출된 전투 공격형 KAI 골든이글. 출처: edfeg.files.wordpress.com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대망의 스텔스형 차기 전투기 KFX사업도 시작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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