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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불바다, 북한 공군이 가장 강했을 때 - 4부

평양 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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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에 어둠이 깔려있다. 먼동이 트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활주로에선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귀에 익숙한 J-79 터보 제트 엔진이다. 그렇다면 팬텀이다! F-4 팬텀이 활주로를 달린다.


"뜬다."


*팬텀이 뜬다! 사진출처: itelegraph.co.uk



대구 근처 기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엔진 소리가 좀 다르다. 이건 F-105 썬더치프의 J-75 엔진. 애프터 버너를 켜면 무려 13톤이나 출력이 나오니(팬텀의 J-79가 7.4톤), 당시 미 공군에서 가장 큰 엔진이다. 바로 그 헤비급 전투기가 뜬다.



*썬더치프 ‘벼락 대장’이 뜬다! 출처: pcaviator.com.au



얼마 전 베트남에서 다른 어떤 기종보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고, 그래서 장렬한 폭격 전을 전개했던 바로 그 전투기.


미루나무 사건으로 갑작스레 한반도로 들어왔는데, 또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출격 명령이다. 마하 2의 고속에다 대량의 폭탄 탑재. 평양 폭격에는 이보다 마땅한 게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렬한 폭격전? 그렇다. 벼락 대장은 베트남 전 내내, 장렬한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미국에서 395대가 동남아로 날아가, 334대가 작전 중에 격추됐다면.. 장렬하단 그 표현으로 부족하지 않은가?



*베트남 북위 18도선 어느 강에 걸린 어느 다리, 고사포가 작렬하는데 2대의 썬더치프가 다리를 끊고 급격히 퇴피 중이다. 출처: feightstudios.com



한국 공군의 타이거도 간다!



수원 아래쪽의 한 비행장. 이곳도 마찬가지다. 정비원들을 비롯해 기지 사람 모두가, 팽팽한 긴장감 속, 활주로에 나와 서 있다. 1년 전에 새로 도입된 도입 되어, 그 기체가 엔진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신형인 F-5E 타이거다.


엔진에서 불꽃이 일더니, 활주로를 택싱하던 기체는 이내 달리기 시작한다. 두 날개에 충분한 양력이 얹히자, 랜딩기어가 들어간다. 날개 끝단에 보이는 사이드와인더, 어둠 속이라도 매우 전투적으로 보인다.



*타이거가 간다. 출처: atwiki.jp



오늘 출격하는 건 모두 6대. 비행대 창설이 1년밖에 안 된 데다, 전체적인 대수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75년에 첫 전투비행대가 만들어졌다.). 그 6대 중 1대의 타이거. 이태균 공군 소령의 기체다. 비행 상태가 안정되자, 소령은 몸을 돌려, 아직 어둠에 쌓여있는 기체 뒤 쪽을 본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비행장이다. 정비원들과 기지 요원들은 지금도 활주로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을 터.


다시 그 너머를 본다. 그곳 어딘가, 아파트 단지에 두 아기와 함께 잠 못 이루며 자기를 생각하는 아내가 있을 것이다.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고 또 빌며. 파일럿들의 아내는 매양, 아파트 현관을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이게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들을 한다지. 그런데 오늘은 더욱이 안 그럴까? 진짜 전쟁이 터졌고, 남편은 그 전쟁의 광풍 속에 출격한다.


그러나 그는 오늘 돌아온다. 오늘뿐만 아니다. 이후로도 언제나 돌아올 것이다. 기체에 구멍이 숭숭 나도,

엔진 2개가 모두 절단 나도, 다시금 활주로를 밟을 것이다. 지금 가는 곳이 지옥의 하늘이라 해도...



동해의 핵 항모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 출처: cfs7.blog.daum.net



완만하게 지그재그 항해를 하던 미 핵 항모 전단. 그 가운데의 핵 항모 엔터프라이즈가, 멀리 위치한 북한 쪽으로 앞머리를 돌린다. 북한 잠수함에 대한 경계에 충실한 게 지금 까지라면, 이제부터는 다르다.


"Moment of Truth!",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으니까. H-Hour(공격전개시간)가 초읽기다. 그리고 이제 막 이륙 채비를 마친 신형기. F-14 톰캣이다.



*수많은 톰캣 비행대 중 가장 인기 있는, 제84 비행대의 졸리 라저, '해적' 출처: military-today.com



해군기의 명문 그러먼 사(社)가, 세상의 모든 앞 선 기술만 모아 만들었다는 퍼펙트 전투기. 그래서 아일랜드(함교)의 지휘관들이나, 갑판 위의 여러 크루들도 이 기체에 대해 자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갖고 다니는 미사일, 피닉스만 해도, 그게 말이 되는가? 200킬로를 날아가, 적기를 격추시킨다니... 맙소사... 그리고 그게 6발?



*Wolf Pack(늑대 떼)이 지금 피닉스, 초 장거리 미사일을 쏘고 있다. Wolf Pack은 제1전투 비행대 별명으로, 엔터프라이즈를 모함(母艦)으로 한다. 76년에 전쟁이 터졌다면, 분명 이런 장면이 벌어졌을 것. 출처: seaforces.org



더군다나 한꺼번에 모두 발사되어도, 같은 목표를 착각하는 일 없이 따로따로 자기 걸 캐치한다고. 베트남 전 초기 때 그 형편없던 미사일에 비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 바로 그 톰캣의 엔진이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근데 이게 그냥 Growling 아니다.


터보 펜 엔진. 이전까지 어떤 함상기도 갖지 못하던 신형 엔진. 엔진 분출 화염을 받아내는 4각형의 블라스트 펜스. 파워가 오르고 계속 오르고 있다. 기체가 한 번 움찔하더니 그대로 달린다. 갑판의 캐터펄트가 20톤이 되는 기체를 그대로 잡아당긴 것이다. 그리고 뜬다!



*사나운 숫고양이 외출. 출처: fiddlersgreen.net



이번엔 프라울러다. 전자전 공격기.



*날개 끝에 대 레이더 미사일을 단 EA-6B 프라울러. 미사일 기지 사냥꾼이다. 출처: markstyling.com



본대가 공격하러 갈 때, 이게 먼저 가,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터준다는 건 적의 전파에 혼란을 주고, 공격 루트에 방해되는 미사일과 레이더 기지 등을 미리 지워 버리는 것. 뒤이어 주력 공격기가 보인다. A-7 코르세어 2.




*항모의 강타자, 코르세어 2. 출처: helmo.gr



정말 뛰어난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 땐 많은 활약을 하지 못 했다.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곧 벌어질 북한 폭격 전은 그렇지 않다. 팬텀에 비견되는 폭탄 탑재량과 팬텀에 앞서는 투하 정확도. 진짜 해적(코르세어)들의 전성기를 만들 참이다.



*공포의 해적, A-7 코르세어 2. 출처: i.ytimg.com



서해 상공



한국 공군과 미 공군의 혼성 팩(pack), 이 떼거리 수 십 여대. 서해 쪽으로 나와, 황해도 장산곶을 크게 우회해 올라간다. 타이거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공군의 타이거 F-5E 편대. 출처: afbase.com



당연히 타겟은 평양. 조종석의 이윤표 소령. 계속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좌우를 둘러본다. 파일럿의 기본은 어찌 됐던 끊임없이 돌아보는 거. 예전에 봤던 이스라엘 공군 취재 기사에서, 그들 대기실 벽에 붙은 걸 본 적이 있다. 히브리 글자인데, 영어로 번역된 것은.


"항상 살펴라!"


그렇다. 그 단순한 모토가 이스라엘과 아랍 공군 간, 어마어마한 격차의 시작일 수 있다. 그래서 계기판을 들여다보면서도, 소령은 끊임없이 전후좌우, 위와 아래를 살핀다. 황해도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미그기가 없을까 해서다.


허나 아직까지 그런 징후는 없다. 계속해서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북한을 향해 늠름히 비행을 계속하는 기체들. 특히 아래쪽 미 공군의 스트라이크 팀. 폭탄은 물론이고, 공대지 미사일인 월 아이도 잔뜩 달고 묵묵히 비행 중이다. 미 공군 F-105 썬더치프들.



*베트남 전 F-105. 전투기로 태어났으나 한창 시절을 고사 포탄과 지대공 미사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보낸, 장렬하면서도 불운한 헤비급 전투기. 출처: wikimedia.org



그리고 이 헤비급보다 먼저 가는 게 있다. 진짜 용감한 파일럿들이 타는 기체. 비행시간으로 1분 정도 앞서간, 야생의 오소리라는 뜻의 ‘와일드 위즐’기들. 해군의 전자 공격기 ‘프라울러’의 공군 판이다.


당연히 이 오소리들은 선두로 나가면서, 해군의 프라울러 처럼 적의 전파를 재밍(JAMMING, 교란)하고 더 나아가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기지 색출, 부순다. 임무에 딱 맞는 미사일을 갖고 다니기 때문. 레이더 전파가 나오는 곳으로 무조건 날아가, 들이박는 슈라이크 미사일.


그리고 이런 일들을 미 공군에선 암호명을 부여했다. ‘Iron Hand', 그들이 슈라이크를 쏘면 강철의 주먹이 된다. 그런데 이들은 전투기가 아니다. 장르가 공격 쪽이다. 따라서 보디가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 공군의 F-4E 팬텀이 호위를 한다. E형은 다른 팬텀과 달리 발칸 포를 달았으니까.



*팬텀 중 유일한 기관포 장착 타입 F-4E, 샤크 마우스 앞의 약간 튀어나온 데가 포구. 출처: flickr.com



그 뒤를 따라가는 건, 한국 공군의 F-5E 타이거들! 그리고 또 한 대가 있다. 보이지 않게 따라오는 맨 뒤의 기체. 사진 정찰기다. 당시는 정찰 위성들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베트남 때도 그렇고, 정찰기는 팩의 일부분으로 꼭 참가하게 되어있다. 폭격이 제대로 됐는지,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어떤 목표가 살아남았는지, 기록하고 분석을 해야 하니까. 이게 바로 평양을 치기 위해 들어가는 스트라익 팀이다. 전자전기와 공격기, 전투기, 정찰기로 이뤄진 팀이며 팩.



대적자(對敵者) 북한은?



그렇다면 북한 공군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다. 기체에는 연료를 가득 채우고, 기관포에는 실탄을 집어놓고 숨죽이며 대기 중이다. 그런데 그들의 실제 전투력은 어떤가? 전투기들의 위협도는 어떠하고?



*미그 21, 빠르고 잽싸고 날카롭다. 출처: ibtimes.com



그들 공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두 가지 특징을 잡는다. 하나는 전투기 대수가 많다는 거.



퀀티티(Quantity)의 공군.



세상사도 그렇지만, 전쟁의 역사도 결국 이 두 개의 Q. Quality와 Quantity로 나뉜다. 퀄리티는 신통치 않더라도, 그야말로 퀀티티의 공군이 북한이다. 질(質)보다 양(量)을 중시해, 대수가 많다.



*물량의 공군. 출처: aeroflight.co.uk



당시 전쟁 예비 물자로 보관 중일 수도 있던, 한국 전 때의 미그 15로부터. 미그 17. 미그 19. 미그 21. 따라서 캐릭터가 뚜렷하다. 고급스런 맛이 없다는 거.


미그 설계국의 전통인, 작고, 가벼우며, 기체 가격이 저렴하다. 이것은 폭탄 탑재량이 적다든가, 항속력이 짧다든가, 또 항전 장비 등에서 ‘심플’ 쪽으로 연결된다.



*북한의 미그 17 전투기, 한국전 때 미그 15를 개량해, 비행 특성이 좀 나아졌으나, ‘심플’과 ‘저렴’이 뚝뚝 흐른다. 출처: mblogthumb1.net



그런데 이거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우리가 북한 상공으로 들어가 싸울 땐, 절대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한정된 성능이라도, 한정된 에어리어에다 집어넣으면 매우 효과적이 되니까. 여타의 다른 전투 공간과 달리, 하늘에서의 전투는 더욱 그렇다. 작고 가볍고 상승력 좋은 게 유리한 데니.


미그기들은 발이 짧다고? 짧다. 속도를 내기 위해, 엔진 파워를 늘리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자기네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면, 무방하다. 특히 베트남 전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베트남 전 때의 미 해군 팬텀과 월맹 공군 미그 17. 출처: airforce.ru



북한 공군에 대한, 또 다른 두 번째 생각이다. 올드하다는 거. 숫자가 많다 해도, 기체들이 오래되지 않았나?



연식(年式)이 오래된 전투기들



올드하다는 거, 맞는 이야기다. 정말 오래된 기체들이다. 지금으로 치면 먼 옛날인 6~70년대, 그때 일찌감치 퀀티티의 공군을 만들고 뭐가 빠지도록 유지한 게 저들 아닌가? 


그런데 그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수 백 대나 되는 기체에서 실제 써먹을 수 있는 건, 얼마 안 돼, 가동률에서 형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미그 29 펄크럼과, 미그 23 플로거 등이 있으나, 그건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이게 미루나무 사건 때인 70년대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달라지는 게 아니라, 확 달라진다. 동시에 전투력도 급상승, 가동률도 급상승한다.



*우수한 도그 화이터 미그 21이 뜬다. 출처: im.rediff.com



판문점 미루나무 도끼 만행 사건이 언제인가?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지금 기체 수명이 55년이 됐다면, 여기에서 40년을 빼보자. 15년이다. 쌩쌩할 나이. 충분히 써먹을 만할 때!



*활주로의 미그 17 전투기들, 작으면서 날쌔다. 출처: easternorbat.com



북한 전투기들, 그때는 쓸 만했다.



그러니까 당시 대수가 가장 많았던 미그 17, 미그 19는 '한 물 가기 전'의 가동률도 좋고, 공중 위협도(威脅度)에 있어 괜찮은 기체로 자리매김한다.



*피라미드 주위를 날고 있는 이집트 공군 미그 19. 소련 최초의 초음속 쌍발 전투기로, 북한도 대량 장비 중이다. 파일럿한테 인기는 없다. 그러나 때와 장소만 잘 만나면 터닝 좋고 전투력 좋은 기체로 변하기도 한다. 출처: wikimedia.org



거기에 북한한테 플러스되는 게 또 있다. 비행 훈련 시간이 지금보다 많았을 거라는 것. 소련이 공급해 주는 원유 때문이다. 모스크바는 여러 동구권의 위성국가나, 여타 친 소 국가들에게 Friendly price로 원유를 공급해 줬다. 친구한테 주는 우정 어린 가격. 따라서 북한은 지금보다 전투기 연료에 있어, 여유가 있었었을 테고, 비행 훈련 시간도 많았을 게 틀림없다. 


이런 적이 요격에 나선다. 거기에 방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이 힘을 보탠다. 드디어 평양의 반(反) 항공 사령부에서부터 비상이 걸린다. 북한 각지의 비행장도 마찬가지!


"반 항공이다. 비상! 비상! 미제와 남반부가 온다!"




(평양 불바다. - 5부에서 계속)






김은기의 커피 테이블 토크


*제공: @snaparker



매번 그렇지만 이 불바다 시리즈도, 쓰면서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쓰다 보니, A4 용지로 35장이 넘어가네요. 와우~ 35장. 얼마 전 장르 소설 공모도 70장 전후로 받던데, 35장이면... 아무래도 ‘항공전 아카데미’ 쪽으로 빠져, 그런 거 같습니다. 장수를 줄이려, 디테일 한 걸 일부러 피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글을 나누게 되네요. 되도록 다음 편에 마무리를 하고, 저번에 예고한 대로 ‘북한 기계화 군단 부분’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기계화 군단, 공중 습격인가? 이게 사실, 제목만 그럴듯했지, 실상 쓰려니 그 군단에 대해 특별한 정보도 없고 해서, 제대로 글이 나올까? 하는 걱정으로 이거 괜히 쓴다고 했나? 라는 생각도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구상을 해 보니, 잘 풀릴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그 기계화 군단에선 ‘인텔렉처 뱅퀴드’라는 새로운 형태로 써나가려 합니다. 물론 그 밀리터리와 히스토리의 인텔렉처죠. 군사와 역사 부분에서 ‘지성의 연회’, 뭐 그렇게 되나? 그래서 뱅퀴드까지 합쳐지면, 군사와 역사 부분에 대한 ‘지성의 작은 잔치’ 내지, 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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