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 밀리터리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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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 얘기를 하려 한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노래 이야기도. 우리나라에 수입된 독일 영화는 상당히 드물다. 더구나 전쟁 영화는 더욱 드물다. 이웃 일본에는 독일인이 가장 좋아했던 에이스, 마르셀리의 영화 ‘아프리카의 별’이나, 동부 전선 최고의 비밀 모략부대를 다룬 ‘브란덴부르그 사단’등이 있었는데. 우린 80년 초인가? 그때 한 편이 들어온다. 그것도 걸작으로 통하는 전쟁 영화.
‘특전 U-보트’
독일에서의 원 제목은 ‘다스 -보트(Das -Boot)’
*출처: goldposter.com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은 영화인데, 한국에서도 상영이 됐으니 잘 만든 영화임이 분명하다. 당시 신문에서도 좋은 평을 아끼지 않았다.
‘볼 만한 외화가 들어와, 영상의 잔치가 벌어질 전망이다.’
‘독일군도 인간이었다. 우리와 똑같은...’
‘독일의 입장에서 본 전쟁 영화 U-보트’
포스터의 카피에도 이렇게 돼 있다.
‘돌진하라! U-보트!’
‘거센 파도를 헤치고 지옥의 한 복판을...’
*출처: national archives
그렇다. 이 영화, 한국에선 보기 드문 독일 영화였으며 잘 만든 영화였다. U-보트 부대에 근무한 적도 있다는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대작 전쟁 영화. 그리고 그 후 한참 세월이 지난 뒤, 우리나라에서 다시 상영된다. 독일 영화가 드문 나라에서 두 번 씩이나 상영됐으니 진짜 걸작이라는 반증.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상적인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민간인 상선을 격침하고, 불바다 속에서 살겠다며 구명보트를 타고 나오는 생존자들. 그러나 그들을 배에 태울 순 없다. U-보트 속에선 인간적 괴로움 속에, 이렇게 되뇐다.
“이건, 전쟁이야, 전쟁이라고...”
*이건 전쟁이라고... 전쟁... 출처: deviantart.net
영국 구축함의 폭뢰 공격으로, 심해로 들어 가 거의 침몰 직전에 이를 때. 그 강건하고 멘탈 최고인 독일 U-보트 승무원 중에서도 정신적 중압감을 못 이겨 머리가 돌아(?)버리는 자가 나온다. 참다못한 함장은 그를 죽이기 위해 권총을 발작적으로 빼든다. 그리고 망설인다.
*특전 U-보트에서의 함장. 출처: blogspot.com
요즘의 한국 영화나 예전 홍콩 영화에선 꼭 이마에다 권총을 들이댄다(그것도 양쪽에서;;). 그리고 클로즈 업. 그러나 이 순간 권총은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화면의 한 쪽 구석에 보일 뿐(필자는 이 연출, 구도에 감탄했었다.). 그럼에도 그 권총이 모든 상황을 압도하고, 모든 걸 말해 준다.
머리가 돈 부하를 죽여 버리려는 마음과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승무원들의 공포와 처지. 많은 수의 U-보트들은 가라앉았고 승무원들은 영원히 돌아오질 않았다.
*출처: wallpapaerfolder.com
이렇듯 흉포한 바다의 늑대 떼 같았던 U-보트도 실상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감으로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은 환경에서 생존코 있었던 것이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도 이런 걸 나타내려 한 듯 하다.
“우리도 한계에 있었다. 물에 빠진 쥐새끼들이었으니까.”
사실이 그렇다. 그들의 전과에만 포인트를 둘 뿐, 그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 갔는지를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그래서 영화는 그런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그런데 진짜 인상적 장면이 있다. 항구를 떠날 때 U-보트 내 모든 독일 승무원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 오픈된 바다로 U-보트가 나가는데, 그 노래는 화면에 그득 찰 정도로 이어져 들려온다.
그러나 ‘U-Boot Lied’라는 독일 잠수함 부대 노래가 아니다. 영국 노래를 부른다. 영국 병사들의 몇십 년 동안 부르는 노래. 1차 대전 때부터 불렀기 때문이다.
*출처: youtube / 클릭하면 동영상 감상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쥴리 앤드류스 주연의 전쟁 영화, '달링 릴리', 밀애(密愛)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제1차 대전을 무대로 독일 스파이이며 무희인 쥴리 앤드루스와 영국 파일럿 록 허드슨의 사랑을 그린 영화 ‘달링 릴리’에 나오는 티페랄리. 출처: youtube / 클릭하면 동영상 감상이 가능합니다.
지금 지옥의 바다로 나가는 U-보트. 필자가 보기엔 전쟁 초기부터 대량 건조된 U-7C형이다. 8백 톤 조금 더 되는 비교적 작은 잠수함. 초기의 U-보트 전설은 바로 이 타입이 만들어냈다.
*이른바 독일 잠수함 부대에게 ‘그 좋았고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2차 대전 초기에 활약한 U-7C 모형. 출처: revell.com
승무원은 44명, 그런데 여기에 1명이 더 플러스된다. 아마 종군기자였던가? 선내 스피커에선 그들의 힘을 북돋아 주려는 듯 계속해서 나치의 선무 방송 같은 게 흘러나온다. 워낙 옛날에 봤고, 또 대사가 독일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나, 아마 이런 것이리라.
“대영제국의 목숨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저들의 바닷길은 거의 다 끊어져간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크릭스마린(독일 해군)이여, 나가서 대영제국을 침몰시키자!”
그때 함장은 이런 표정이다.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대사로 하면.
“히 보링 미 (아이~ 저 새끼들 지겨워 죽겠네).”
그리고 입을 연다.
“야, 다른 거 듣자고.”
다른 건 바로 그 ‘티페랄리’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온다.(앞부분 성악가 풍은, 맨 처음 이 노래를 취입한 아일랜드 인 존 맥코맥 목소리다.) 처음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승무원들.
‘아니 웬 영국 노래?’
“우리가 로열 네이비(영국 해군)야?”
그러다 이내 웃으며 따라 부른다. 엔진 실에서 배터리 실에서 어뢰 실에서, 조리 실에서 모두가 따라 부른다. 신이 나서 따라 부른다.
*독일 오리지널 판 다스 유-보트. 출처: youtube / 클릭하면 동영상 감상이 가능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선임 하나가, 승무원들에게 뭐라고 외친다. 독일어라 해석이 안 되나 한 가지 아는 게 있으니, 그건 '하이마트'. 그들 말로 '고향' 아닌가? 아마도 이런 뜻일거다.
“우리 살아서 다시 고향에 가자!”
대부분이 죽는다. 어처구니없이 죽는다(스포일러가 될까, 상황과 장소는 비밀). 함장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이 배만의 운명은 아니다. 제2차 대전 때의 대다수 U-보트의 운명이다. 전쟁 총 기간 중 1126척이 바다로 나갔으나, 돌아온 것은 겨우 3백 여 척. 그래서 27000명이 불귀의 객이 된 게 바로 이 U-보트 전쟁이다.
어느 승무원이 지은 시처럼.
‘장미꽃도 무덤도 없이...’
‘오직 있는 거라곤 파도의 포말.’
그런데 27000명은 적게 잡아 준 거라는 얘기도 있다. 40000명이 넘었을 거라는 최근 통계.
*돌아오지 않는 U-보트 중 하나, U-2511. 출처: thechive.wordpress.com
이 영화 'Das U-Boot'에 나오는 그들도(이 영화 속 잠수함은 실존했다고 한다.), 그 숫자에 포함된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동부 전선에서 스러져 간 독일 보명이나 척탄병, SS대원들과는 또 다르다.
사람의 영혼이야, 누군들 귀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바다 속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싸우는 U-보트 대원이다. 장교이거나 하사관급 이하 승무원이거나, 멘탈과 피지컬에 있어서 최고이며, 거기에 기계 덩어리인 잠수함을 부리는 데 있어서, 대부분이 다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 그런 그들이 하이마트(고향)에는 가보지도 못 하고 죽어간 것이다.
그리고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다스-보트’는 충실히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한 번은 꼭 봐 둘 필요가 있는 영화, 들어 볼 필요가 있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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