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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의 SU-24 펜서, 1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47 :: H-6의 정체, 5번째 이야기



*펜서는 아니다. 걸프 전 때 영국의 공격기 토네이도. 먹성이 특별나 보이는데, 그래서 기체 이름은 미그 잇터(미그기 먹는 놈). 출처: blogspot.com



걸프전이 터졌을 때다. 그때 전 세계 사람들은 바그다드 밤하늘로 올라가는 대공포의 궤적과 함께, 또 하나, 놀라운 화면을 TV로 접한다.



*출처: cnn.com



영국 파일럿들의 몰골이다. 이젝션시트로 탈출할 때의 부상인지, 잡힐 때 얻어맞아 그런지, 눈이 퉁퉁 붓고 피 멍든 얼굴의 파일럿들이 보였기 때문.



*출처: chroniclelive.co.uk



당대 최고의 저공 공격기, 토네이도 IDV형 기체의 파일럿들이었다. 영국은 이때 모두 6대를 잃는다. 그 외에 이태리 공군도 1대를 잃게 되나, 어찌 됐건 영국으로선 상당한 쇼크였다. "어떻게 토네이도 6대가 돌아오질 못 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키운 파일럿들이 2명씩이나 타고 있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수 십 년 된 베테랑 공격기 '버캐니어'까지 출동시키는데(이거 유명하진 않아도 대단한 걸작기다)... 결국 걸프전은 다국적군의 완승으로 끝난다. 현대전에 있어서, 하늘에서의 공격이 얼마나 중요한 가도 증명하고.


그러나 한 가지, 찝찝한 쪽이 있으니 그것은 영국 공군이었다. 비싼 공격기 토네이도를 여러 대 잃었으니까. 옛날과 달리 현대의 전투기나 공격기들은, 그야말로 돈 덩어리다.


그 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최신식 테크놀로지를 한껏 집어넣어 만든 최첨단의 파이팅 머신 아닌가? 또 그걸 구사하는 파일럿들도 돈 덩어리고. 헌데 개전 초반부터 한 달 반 사이에 6대를 잃었다. 쌍발 엔진에 앞 뒤로 파일럿이 두명이나 앉는, 일명 복좌 기체이니 돌아오지 않는 파일럿 숫자는 자연히 ‘더블’. 물론 포로가 되어 살아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토네이도의 피해는 걸프전에서 옥의 티였다.



*Somewhere in the Desert... 출처: pinimg.com



이야기를 걸프전(1991년)에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4년.



7년 전, 아프간의 하늘



아프간이다. 나지막한 산봉우리에 쌓인 눈이, 이제 겨우 녹기 시작하는 4월. 소련군 최고 지휘본부는, 지금 극도의 흥분 상태다. “바로 이때야! 이걸 놓치면 안 돼!”


그리고 제2차 대전 이후, 사상 최대의 폭격작전을 발동한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 게릴라 부대원, 무려 3500여 명이 ‘판지샤르’ 계곡에 모여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 그래서 대량의 데쌍트(낙하산 부대)를 헬리콥터로 투입하는데, 그전에 가동할 수 있는 제트 폭격기들을 모두 동원, 일대를 초토화시키기로!


당시 동원할 수 있는 대형 제트 폭격기들은 3종류가 있었다. 중국의 굉격기 H-6K의 전신인 투폴레프(TU)-16 뱃져.



*TU-16 뱃져 출처: daumcdn.net



그 뒤에 나온 초음속 폭격기 TU-22M 백파이어



*TU-22M 백파이어. 출처: pinimg.com



그리고 신형기도 참가한다. 미국의 괴물 전투기였던 F111 아드바크와 비슷한 능력의, 전천후 침투 폭격기. 수호이(SU)-24 펜서다. 이때가 또 펜서의 첫 데뷔 전이었다.



*수호이 펜서의 3면도. 날개가 뒤로 접혀진 상태다. 펜서는 나토 측 명칭으로 펜싱 선수라는 뜻. 출처: pinimg.com



비행대 기지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데, 거기서 넘어온다. 우즈벡의 테르메스 기지.



*출처: xinhuanet.com



이후, 전쟁 끝날 때까지 중요한 폭격에 자주 참가하는데, 당시는 지상에서 쏘는 공포의 견착식 미사일 스팅거와 레드아이가 난무할 때. 그런데 이 펜서의 피해는 단 1대도 없었다고 한다.



펜서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피격률 제로! 반면 어떤 작전에선 반군 게릴라를 1700명에서 3000여 명 가량을 해치웠다고(바로 그 판지샤르 계곡에서의 합동 작전인 듯) 소련군의 공식 발표도 나온다. 엄청난 전과다. 물론 아프간이라는 데가 원래 전과 확인이 어렵고, 전쟁과 전과의 특성상 과장이라는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 손해는 축소하고, 적의 피해는 과장하고. 따라서 서방측에선 이 전과를 쳐주지 않는다. 뻥이라는 것.


그러나 한 가지는 예외로 둔다. "1대의 펜서도 격추된 게 없다"라는 발표.


아니 7년 후에 벌어진 걸프전. 토네이도는 전쟁 초반, 7대가 격추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프간 하늘을 몇 년 씩이나 누빈 게 말짱해? 이유가 있었다.

고공에서만 작전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투 공간이다



두 기체는 전투하는 고도가 달랐다. 토네이도는 위험한 저공. 펜서는 안전빵인 고공. 영국 공군은 제2차 대전 때부터 저공 공격에 이름을 날렸다. "RAF(영국 공군)만큼, 잘 하는 친구들 없어."


노르망디 전선, '롬멜'에게 중상을 입힌 것도, RAF의 그런 솜씨. 따라서 영국은 전쟁 후, '재규어(Jaguar)'라는 독특한 '초음속 제트 공격기'를 만든다. 엄밀히 따질 때, 다른 나라엔 없는 기체다.


저공으로 날아 가, 적 예봉의 바로 뒤쪽을 치는 공격기니까. 그래서 그런가? 걸프전 때 그들은 저공 공격 파트, 특히 이라크의 런어웨이(활주로)를 맡는다. 알다시피 비행장 공격은 가장 위험한 임무. 전쟁이 터질 때 누가 봐도 타깃 1순위이니. 항상 중(重) 방어로 보호되기 때문이다. 숱한 대공포와 미사일.



*14.5밀리 4연장의 대공 화기. 1문(門) 당 발사속도가 분당 600발이니, 단순 계산상으로 4문 합쳐 2400발 수준. 출처: alamy.com



*소련제 SAM-2 미사일. 출처: kjclub.com



토네이도들이 그런 곳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당연히 6대가 떨어질 수밖에.그런데 아프간에서의 수호이 펜서는? 정반대였다. 대공화기나 견착식 미사일이 올라오지 못하는 높은 고도. 거기가 작전 고도였으니까. 1만 5천 피트(5천 미터) 아래로, 안 내려간다.


대공화기한테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게 있다. 곱하기 100을 하곤, 뒤에다 M를 갖다 붙일 때, 그게 사정거리가 된다는 공식. 어느 정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으나, 대부분이 그렇다. 예를 들어 20밀리면 2000미터 정도가 사정거리. 30밀리면 대충 3000미터.


대한민국 육군의 단거리 자주대공포 비호의 사정거리를 찾아보면 3킬로로 나온다. 30밀리 쌍발이니까. 따라서 아프간의 대부분 대공화기들, 12.7밀리, 14.5 밀리, 23밀리 등은 아무리 발사 속도가 빨라도 펜서가 있는 고도에는 어림도 없다.



*ZSU-23-4. ‘쉴카’라는 대공 자주포. 23밀리 기관포라 3킬로 못 미치는 사정거리를 갖는다. 만약 이걸 탈레반이 사용한다 해도, 펜서 아래에서 논다는 이야기. 출처: blogspot.com



물론 고공 폭격에는 단점이 있다. 폭격 정확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서방측 전문가들은, 그래서 펜서의 폭격 효과를 매우 낮게 평한다. "까마득한 고도에서 그것도 빠른 속도로 패스하면서 떨어뜨리는 폭탄. 그게 제대로 명중해?"


그러나 한반도 허리는 다르다. 지형상 이런 폭격이 통한다. 특히 휴전선 북쪽에 살육 지대를 만들어 놓고, 내리 퍼붓는 폭탄들. 충분히 가능하다. 북한은 부대를 펼쳐서 분산시킬 수 없고, 기갑부대들도 도로만을 따라 기동을 하거나 대기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공군은 미리 전파 재밍을 하고, 챕과 플레어도 잔뜩 뿌려놓는다. 또 미군이 쓰는 ADM-160 몰드(MALD)를 도입했다면, 그것도 날리고. MALD의 D는 디코이(Decoy)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바람잡이’ 내지 ‘미끼’, 이건 또 비싸지도 않다.



*바람잡이 몰드(MALD) 출처: defenceindustrydaily.com



이 놈은 자기가 진짜인양 날아간다. 그래서 신경이 곤두서고 눈에 핏발이 선 북한 레이더와 미사일 포대를 헷갈리게 해, 엉망으로 만든다.



*사기꾼을 둘씩이나 데리고 다니는 F-16 파이팅 팰콘. 맨 안 쪽에 있는데, 지금 날개를 접은 상태다. 출처: kinja-img.com



그러면 5천 미터 상공은, 우리 폭격기들에게 비교적 세이프 존, 안전지대. 그리고 거기서 융단 폭격을 시작한다. 폭탄 창고 대 방출. 북한이 무서워할 게 틀림없다. 자기네의 폼나는 장사정포나 방사포 하곤 차원이 다르니까.


예전에 어느 대학 교수, 군사 안보에 대해 자주 글을 써내곤 했는데, 그 제목 중 하나. '북한군 117만 명, 휴전선 위에 대기하고 있다가, 일거 남침 가능'. 정말 혹여나 그분 글에 팩트가 있다면, 그 위에다 카핏 보밍, 융단 폭격을 해대는 거다.


그러면 '북한군 일거 남침 가능'은 '북한군 일거 몰살 가능'으로도 바뀌지 않을까?



김은기의 커피 테이블 토크


*제공: @snapaker


'H-6K 굉격기 10여 대. 우리 KADIZ 침범!' 이런 뉴스가 나온 뒤, 시작한 게 이 H-6K 시리즈입니다. 중간중간에 괜히 썼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어찌 됐건 최종 번외 편까지 (결국)쓰게 되네요.


그런데 댓글 중 의외로, 적지 않은 내용이 북한 방공망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북한의 그 하드 한 방공망 속에 살아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물론 이 기체. ‘올드 타이머’로서 격추 위험성이 많습니다. 폭탄 탑재량은 엄청나나, 기체가 크고, 느린 데다, 또 요즘의 고급 공격기처럼, 지형을 따라가는 저공비행도 어렵죠. 제 정신이라면 평양 같은데 못 보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필자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챕과 플레어를 잔뜩 뿌린 뒤, 5천 미터 고도에서의 폭탄 릴리즈. 그러니까 휴전선 북쪽 ‘하늘의 장사정포’ 내지 ‘하늘의 폭탄창고’ 거기선 그게 충분히 먹히니까.


겸사겸사 댓글에 대한 답글의 의미도 될 겸, 이미 썼다가 놔둔 펜서에 대한 글을 부랴부랴 다시 찾고, 거기에 토네이도로 살과 뼈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이렇게 붙였고요.


'아프간의 SU-24 펜서. 1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가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스토리 성’이 조금은 약한 듯 한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준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표현과 함께, 어찌 보면 생뚱맞을 수 있던 굉격기 시리즈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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