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놈이 무시무시하다.
"미사일도 피한다고?"
그렇다. 사이드와인더를 피한다. 물론 지금의 AIM-9M이나 L형이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분명 사이드와인더를 떨쳐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중전 시 이놈을 기총으로 맞추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준기의 눈금과 사이즈가 안 맞았기 때문이다.
안 맞는 이유가 뭐냐고? 기체가 워낙 작기 때문이다. 당시 상대 전투기 ‘조준기 조절 워크’의 최저(最低)가 25피트(7.6미터)인데, 이놈의 양 날개 길이가 그것보다 작으니, 기총을 연달아 쏴봐야, 오버 샷!
아직 무장이 안된 첫 번째 프로토타입(원형) ‘밋지’. 이보다 작은 전투기가 있으면 나와 보라해. 사진출처: http://avia.pro
하지만 작다고 해서 이놈을 깔보면, 큰일 난다. 그대로 격추당할 수 있으니.. 전투기로써 가질 건 다 가졌다. 상당히 날랜데다, 상승력 죽여주고, 무엇보다 펀치력이 매서웠다. 공기 취입구 양 편에, 30밀리 포를 달고 다닌다. 제대로만 쏘면, 단지 2~3방으로, 상대 전투기를 공중분해시키는 타격 파워, 그래서 이 전투기에게 이런 별명이 붙는다.
"세이버 슬레이어(Slayer, 도살자)"
전투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별명인지 감이 올 것이다. 세이버라는 이름 때문. 바로 그 한국전쟁 때의 전설, F-86 세이버 아니던가? 라이벌이었던 소련제 미그 15를 10대 1 이상의 킬레이쇼로 격추한 공중전의 마스터. 20세기 후반쯤에 가서 에어 슈페리얼 파이터, 즉 ‘공중 우세 전투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원조가 바로 세이버다.
‘나는 다른 거 없어, 무조건 전투기만 잡으니까!’
이게 바로 세이버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런 전투기를 얼마나 압도했으면, ‘킬러’도 아니고 ‘세이버 슬레이어’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슬레이어면 '도살자' 아니던가? 그렇다고 이 작은놈, 세이버 하고만 싸운 게 아니다. 자기는 아음속이면서, 겁대가리도 없이 마하 2급 하고도 싸웠다.
F-86 세이버 전투기, 공중전에서 최고인 걸작기다. 사진출처: talkingproud.us
마하 2라면 시속 2천 킬로미터를 한참 넘어선다. 무지하게 빠른 전투기, 그런데 아음속이라는건 음속 아래쪽이라는 의미, 시속 1천 킬로 조금 넘어설까? 이놈이 바로 그런 아음속기였다. 허나 이 작은 녀석은 마하 2의 F-104 스타 파이터가 쏜 사이드와인더로부터 벗어났고, 그 유명한 프랑스의 델타익 미라주 3도 겁내지 않았으며, 자국 전투기 미그 21과의 모의 공중전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그래서 이놈과 싸웠던 적국은, 아예 이런 명령을 내렸다.
“저 작은 놈하곤 저공에서 절대 붙지 마라!”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토시)이 조선 출병 수군에게 내렸다던 명령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순신과는 절대 붙지 마라. 그런데... 이런 전투기가 진짜 있었다는 건가? 정말로 하늘을 설치며 다녔고? 정말로 존재했다.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컴뱃 프룹(combat proof)이다.
컴뱃 플룹이란 거, 무기 시스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닌가? 실제 전투현장에서의 증명. 그것도 당대의 최신 전투기, 아니면 시대에 조금 뒤쳐졌다 해도, 전혀 무시할 수 없었던 명 전투기를 상대로 한 증명. 그리고 이 전투기는 무려 450여 대가 만들어졌다(그 중 1백대는 전투 훈련기다).
무려 450대!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미그 21이나 팬텀, F-16등의 워낙에 베스트셀러들만 봐 와서 그렇지, 제트기 역사엔 그 이하로 만들어진 것도 부지기수니까, 이 전투기의 이름은 바로 "낫트(GNAT)"라는 전투기다.
낫트의 3면도. 동체 측면 공기 취입구에 구멍이 몇 개 보이는데, 기관포의 연기 배출구다. 사진출처: aviationsmilitaires.net
핀란드 공군의 낫트 전투기다. 12대를 도입 1개 전투 비행대를 운용했다. 사진출처: users.kymp.net
홀랜드? 그리고 낫트? 아니, 낫트라는 이름도 생경한데, 홀랜드는 또 뭐야? 제2차 대전 직전부터 1959년까지 존재했던 작은 항공기 회사다. 그 회사가 합병되어 사라지기 전에 만든 유일한 전투기가 낫트고...
그런데 이 낫트의 의미도 범상치(?) 않다. 우리말로 하면 ‘각다귀’다. 모기처럼 생겼으나, 피는 빨지 않는 놈. 그러나 결코 좋은 곤충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잘 안 쓰이나, 이런 말이 있는 걸 보면.. '각다귀처럼 뜯어먹는 놈' 아니면 '각다귀판(서로서로 뜯어먹는 개판이라는 의미다.)'.
나 우습게 보지마! 낫트 바로 요 녀석이 각다귀다. 흔히 '모기'라고 하면 우리 정서에선 보잘 것 없게 들리지만, 모스키토(모기)라는 훌륭한 전술 폭격기가 존재했고, 가투소가 박지성을 모기로 표현한걸 보면 서방 정서는 확실히 우리와는 좀 다른 듯하다. 사진출처: wikipedia.org
그래도 그렇지, 이름이 이게 뭐야? 전투기라면 폼나고 멋진 이름이 쌔고 쌘데. 요 근래만 봐도 랩터(살육자)에다가 라이트닝2(번개 2세), 이글(독수리), 또 걸프전의 밤손님, F117 스텔스 전투기의 공식 명칭은 심야의 솔개, 나이트 호크인대. 활주로에서 불리는 애칭은 ‘워블리 고블린(쓸 데 없이 야밤에 돌아다니는 유령)’이었다. 워블리 고블린, 스텔스 전투기 입장에선 정말 그럴듯한 이름 아닌가?
요즘 유럽 쪽으로 가면, 강풍이 흔하다. 타이푼(태풍)이나 토네이도(돌개바람), 라팔(프랑스 어로 역시 돌개바람) 등, 스웨덴은 랜스(창기병), 드라켄(용), 빅겐(벼락) 등, 나름대로 상당히 폼나는 이름이다. 그리고 빅겐의 후계기는 그리펜. 완전 살벌한 괴수다. 얼굴은 독수리인데 몸통이 사자인 상상의 괴수니까.
상상 속 괴수 그리펜(gripen)이다. 물론 그리펜은 스웨덴식 이름이고, 영국에선 그리핀(griffin)이라 한다. 사진출처: wikimedia.org
그리고 하나 곁들이는 퀴즈.
수호이 SU-27의 패밀리 중 하나인 다목적 전투기 SU-37 이름은? ‘터미네이터’다.
SU-37 터미네이터. 사진출처: wikimedia.org
헌데 각다귀라고? 세상에서 가장 시시껍지 하며 쪼잔한 전투기 이름 아닌가? 그러나 그 이름에는 설계자의 전투기를 향한 필로소피가 들어가 있다. 당시의 모든 전투기 흐름에 정반대의 길을 가고자 한 전투기 철학, 전투기 사상.
영국인 엄친아(?) ‘테디 페터(Teddy Petter)’란 사람이 설계한 전투기다.
1950년에 시작됐던 한국 전쟁. 우리에겐 동족상잔으로 기억되는 끔찍한 시기였으나, 항공계에선 이 시기를 일대 전환점으로 보기도 한다. 우선 프로펠러 전략 폭격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일본을 초토화시켰던 공포의 4발 폭격기 B29는 소련제 미그 제트기의 출현으로, 알루미늄으로 만든 관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전락했으며, 시대가 조금 늦었다 싶은 직선익 전투기들, 다시 말해 F-80, F-84 썬더 제트와 영국의 미티어 역시, 미그 15한테 몹시 나도 역부족이었다.
미그 15는 후퇴익이었으면서 빨랐다. 이때 미그 15의 대항마가 나타난다. 똑같은 후퇴익의 F-86 세이버다. 그야말로 타임리 히트! 때맞춰 나타난 세이버는 '미그 앨리(개마고원과 평안북도, 함경북도 상공. 미그기가 출몰하는 골목)'의 승자가 될 때까지 결코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다. 게다가 압도적이기까지 했다.
킬 레이쇼는 거의 10대 19(과장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나, 어쨌든 압도적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블러디한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 쏘 두 나라는 복기를 해본다. 우리 전투기 성능과 활약 여부, 그리고 전투기 사상은 어땠는가 하고... 소련은 매우 만족한다. 미 공군의 거대한 하늘의 요새 B-29 폭격기를 손쉽게 격추시켰고, 서방측 전투기와 호각으로 싸워, 서방에 대한 열등감을 불식시켰기 때문이다(세이버에게 그들은 그렇게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미국도 만족한다. 세이버는 분명 공중 우세를 확보했으며, 그 외에 대지 공격을 나섰던 다른 전투기들도 꽤 잘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좀 더 빠른 전투기, 좀 더 강한 전투기를 만들기 위한 하늘의 레이스.
이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게 있었다. 기체가 점점 커지고 무거워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엔진 발달의 산물이기도 한데, 초기의 그 힘없고, 고장이 잘 나는 엔진에서, 힘 좋고 튼튼한 엔진들이 나타났으니, 기체가 점점 커져도 되고, 무게가 계속해서 증가해도, 엔진의 파워가 너끈히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커지는 게 있었다.
기체의 가격. 적당히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천문학적으로 올라갔다. 크고 무거워지면 당연히 큰 엔진이 있어야 되고, 또 큰 엔진의 연속적 추력을 위해선 연료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체 속에는 또 대용량의 연료 탱크가 다시 자리 잡고, 그렇게 되니, 기체는 다시 커지는 순환을 반복하고...
그래서 제2차 대전이 끝난 지 10년밖에 안 됐는데도, 이때의 전투기들 무게는 대전 당시의 4발 중폭격기 이상 나가는 것도 나오곤 했다. 이때 이 현상을 보며 고개를 젓는 사람이 있었다.
테디 페터다. 20세기 초 영국이란 나라의 엄친아처럼 생겼는데, 사실이 그렇다. 캠브리지 대학을 다녔고, 26세라는 젊은 나이에는 아버지 항공회사에서 전무가 된 천재 설계자. 그래서 몇몇 회사 사람들은 재수(?) 없다며 회사를 나가기도 했으나... 그는 결코 부모 백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휠 윈드 전투기, 라이샌더 지상협동기 등을 비롯, 특히 그가 설계한 ‘캔베라’ 폭격기는 항공사에 남는 걸작이다. 사진출처: nationalcoldwarexhibition.org
“그건 아니지.”
당시 40대 초반의 테디 페터였다. 영국 최초의 제트 폭격기였으며, 걸작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한, '캔베라' 설계자. 그리고 그는 이런 마음을 먹는다. 전투기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야심 찬 마음.
“아주 가볍고 작은 전투기를 만들면 어떨까? 기존 전투기 1대 만드는 돈으로, 3~4대를 만들고, 기존 전투기 1대의 맨 아워(man hour)로 4~5대를 만드는 초경량 기체."
허나 여기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 중요했다.
“성능은 똑같아야 한다. 하늘에서 싸우면 절대 꿀리지 않아야 한다.”
능력은 같은데, 작고 가벼운 전투기.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기체 가격이 싸진다. 또 유지비가 적게 들면서 가동률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작고 단순한 전투기는 아무래도 고장이 덜 난다. 당시 식민지에서 갓 독립한 신생국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런 전투기를 좋아할 것이다. 또 그중에 선 자기네가 직접 만들겠다는 국가도 나올지도 모른다. 저급의 공장 기계로도, 만들 수 있게 할 테니.
또 하나 페터가 노리는 게 있었다. 계속해서 국방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영국 공군. 그러나 자기가 구상하는 전투기는, 매우 적은 예산으로도 대량 구입할 수 있다. 그렇다면 GO!
페터는 그 꿈을 실현에 옮긴다. 아직 단 1대의 전투기도 만든 적 없었던 홀랜드라는 작은 회사,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설계에 들어간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 크고 무거운 전투기를 만들고 싶어 만드나? 싸움질 제대로 하는 기체를 만들려면,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고, 아이디어가 절실했다. 다행히 테디가 그런 설계자였다.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 기체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 무게를 적게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채택된다. 사격 조준 레이더는 자이로스코프 용의 간단한 걸로 달고, 작동되는 부분도 대부분 기계식이며 플랩은 달지 않았다. 또 바퀴가 나올 때의 덮개가 그대로 에어 브레이크가 되게 하는 등, 한 가지 장치로 두 가지 기능을 갖게 하기도 했다.
드디어 1955년의 한여름, 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활주로에, 소형기 1대가 자태를 나타낸다. 그 기체의 이름은 아직 낫트가 아니었다. ‘무지 작은놈’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밋지(Midge)였다.
밋지에 연료를 주입하고 있다. 그런데 날개 옆에 서 있는 남자와 기체 위 남자를 보면, 이 전투기가 얼마나 작은지 실감이 난다. 사진출처:bharat-rakshak.com
드디어 꽁무니에 붙은 엔진에서 불이 품어 나오고, 밋지의 몸이 꿈틀댄다.
택싱의 시작!
“고오오---”
뒤이어 활주로를 달리는가 싶더니, 용약 하늘로 뛰어오른다. 불굴의 소형 싸움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불굴이라는 이름. 필자가 마음대로 붙인 게 아니다. 처음엔 밋지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나, 낫트(각다귀)로, 나중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불굴, 불패, 또는 누구한테도 정복되지 않는 자, 라는 의미의 ‘아지트’로 정식 개명되기 때문이다.
헌데 이 전투기, 얼마나 작은가? 낫트라는 이름으로 정식 채용되었을 때의 제원은. 날개 양쪽 폭이 6.7미터. 앞 뒤 전체 길이는 9미터. 제2차 대전 때 전투기에 비해도 한 맛이 작다. 당시의 프로펠러 전투기들 날개 길이는 보통 12미터였고, 앞 뒤 전체 길이는 10미터였으니까.
그렇다면 무게는?
전투기는 사이즈 못 지 않게 무게가 중요하다. 전투기에는 이런 상식이 있으니까.
“전투기의 무게가 곧 가격이다.”
전투기의 무게 1킬로, 1킬로는 그게 바로 돈이라는 얘기다. 낫트의 무게는 그럼 얼마나 될까? 특히 자중(自重) 쪽으로의 무게. 전투기 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나와야 하는 게 있다. 순전한 전투기 자체 무게. 일체의 연료나 기관포의 실탄, 폭탄 등을 달지 않은, 공장에서 굴러 나올 때의 순수 무게.
맙소사!
2.1톤이다.
지금의 우리 공군 F4E 팬텀과 비교하면? 14톤이 팬텀의 자중이다. 이 녀석은 정말로 엄청나게 가볍다. 팬텀의 7분지 1의 무게! 팬텀은 대형 전투기잖아? 좀 작은 것들과 비교하면? F16C가 8.2톤이고, 현존하는 전투기 중, 가장 가볍다는 우리 공군의 F5E 타이거. 우리 공군 파일럿들이 하도 작고 홀쭉해 ‘와리바시’라 부르기도 한다는 타이거는 그래도 4.2톤이다. 낫트의 따블.
그럼 당시 개발이 되거나, 개발이 완료된 전투기와 비교해 보자. 먼저 미국의 센츄리 시리즈 F-100 슈퍼 세이버에서부터 F-106 델타 다트까지의 평균 자중은 10톤. 그렇다면 전투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은? 역시나 출력이 작다. 그것도 달랑 2톤이니까(영국제 오르페우스 엔진이다).
하늘을 나는 ‘밋지’. 조종석의 파일럿을 보면, 거의 뭐 자가용 차 수준이다. 사진출처: letletlet-warplanes.com
그런데도 이 꼬맹이, 마하 1에 가까운 속도로 낸다. 물론 초음속은 낼 수 없으나, 당시로선 큰 문제가 아니었다(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래서 요즘 전투기들은 오히려 속도가 줄어드는 경향도 보인다). 물론 빠르면 좋다. 여차하면 그냥 달아날 수도 있는 등 유리한 게 많으니까.
하지만 격투전에 있어서 마하 2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람이 탄 기계가 그런 속도를 내며, 격렬히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사람의 몸은 기계만큼 강하지 않다. 급강하 폭격기 스투카가 내리꽂을 때 멋있는 거 같지만, 파일럿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뜩해지며 기절 직전까지 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중전은 아음속이나 천음속, 즉 초음속을 막 통과하던가 그 직전의 속도 영역에서 벌어질 때가 많다.
특히 낫트가 좋아하는 저공 영역에선, 고초음속이 더 어렵다. 공기저항으로 인해 기체가 뜨거워지며, 기름 소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서 구형의 아음속 미그 17이, 미 공군의 마하 2급 F-105 썬더치프를 잡을 수 있었고, F-4 팬텀한테도 덤벼 들었던 게 바로 이런 이유다.
그 대신 낫트는 고공에서의 싸움은 피해야 한다. 그곳에서 싸우면 힘이 달린다. 고공은 큰 엔진과 함께, 초음속 전투기들의 홈그라운드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상승력 쪽으로 가면? 전투기에 있어서 속도만큼 중요한 게 상승력이니까. 낫트는 의외로 이것도 좋았다. 분당 7천 미터로 올라가니까. 엔진의 힘이 달랑 2톤 밖에 안 되는데,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상승력!
그리고 진짜가 있다. 양 옆에 달린 30밀리 기관포! 제대로 겨냥해 제대로 맞추면 상대한테 주는 충격 에너지는 엄청나다. 1방만 때려도 대형의 덤프트럭이 달려와 부딪히는 듯한 충격을, 상대 전투기에 준다고 하니까. 그래서 어느 항공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감탄 반, 혹평 반으로.
“기관포 2정에다, 날개만 단 전투기.”
허나, 영국 공군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니, 그게 무슨 전투기야?”
날개와 기관포만 있는 날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굿 뉴스가 들어온다. 정부의 조달청은 그 반대로 생각한 것이다. 계속해 국방비가 쪼그라들고 있는 시점에, 가성비가 좋은 전투기라고. 그래서 첫 주문은 6대. 지금까지의 모든 개발비는 홀랜드 사가 충당했기에, 몹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굿 뉴스는 또 들어온다. 외국에서의 주문이다. 당시 공산권으로 분류가 되지만, 소련과 대립각을 세우던 유고슬라비아(지금의 세르비아)가, 이 작은 싸움꾼에 필이 꽂혔기 때문.
“일단 2대를 팔아라. 테스트해서 좋으면, 그때부터 왕창 도입할 테니까.”
두 번째는 핀란드였다. 핀란드는 아예 12대를 도입해 버려, 1개 전투 비행대를 만든다.
핀란드의 낫트 전투기. 핀란드가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첫 번째로 택한 제트 전투기인데, 지금이야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게임계를 점령한 앵그리버드와 COC의 고향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당시 소련과의 굴욕적 조약에 의해 60대인가? 그 이상의 전투기는 보유하지 못 하게 되어있었다. 단 기간의 위상 변화, 우리도 할 수 있다. 사진출처: combatreform.org
세 번째가 진짜 대박이었다. 아시아 쪽 거인 인도였다. 무려 213대 도입(이중 170대는 인도 국내 생산)! 수백 년에 걸친 영국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어엿한 독립국이 된 인도. 허나 독립이 되며 갈라져 나간 파키스탄이 문제였다. 점점 사이가 안 좋아지는 건 물론이고, 언젠가는 한바탕 싸울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전투기 대수의 급속 확장이 필요했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신생국의 자존심 세우기. 방금 생산한 은색 듀랄류민의 제트기가, 인도 모처의 공장에서 굴러 나와, 하늘로 날아오를 때, 그것만큼 인도 국민들의 프라이드를 세워주는 게 없으니까. 더군다나 가격이 싸고, 따로 고급의 공작기계를 갖추기 않아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않던가?
페터의 꿈은 이뤄진 것이다. 작은 회사, 혼자서 몇 년을 내리, 고생하며 돈 들여 내놓은 전투기가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좋지 만은 않았다. 모국인 영국 공군의 외면이다. 예산이 점점 삭감되면서, 초경량에 초저가의 전투기를 대량 구입할 거라고 기대했으나, 발주 대수 제로! 성능이 좋다는 건 인정하는데, 너무 작다는 것이다.
“덩치 큰 파일럿이 조종석에 들어가면, 움직일 데가 있겠어? 또 비상탈출을 하게 돼, 이젝션 시트가 솟아오를 땐?”
“아마 무릎 관절 나갈 걸.”
영국 공군의 전투 훈련기 낫트 T1, 조종석이 얼마나 비좁은 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안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몸이 솟구쳐 오르는 비상 탈출 시, 무릎이 부딪힐 수 있다는 걱정이 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설마 관절이 부딪히게 설계했을까? 사진출처: airliners.net
또 하나는 그때 막 도입해 편성 중인 전투기 헌터(Hunter)에 상당히 만족했기 때문이다. 조종하기가 편안하고, 비행특성도 좋다, 거기에 30밀리 기관포도 4정. 그러니 낫트에다 눈을 돌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헌터 전투기, 역시 우하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날개 면적도 꽤 크게 보이는데, 이 것으로만 봐도 운동성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출처: m8.i.pbase.com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에 인생유전이라는 게 있듯, 헌터와 낫트, 이 두 전투기의 관계 속에서 그런게 나타난다. 상품(上品)으로 여겨졌던 전투기와, 하품(下品) 취급받던 초소형 각다귀의 유전(流轉). 그리고 22국으로 팔린 베스트셀러와 단지 3개국 만의 그냥 셀러.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쟁터 하늘에서다.
한쪽은 힌두교, 한쪽은 마호멧교. 그것 때문에 갈라진 나라, 인도와 파키스탄. 특히 캐시미르라는 지방 때문에 서로 으르렁대던 두 나라가, 드디어 포화를 교환한다. 1965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이다. 우리나라에선 인. 파 분쟁으로 많이 불리나, 결코 분쟁은 아닌 듯하다.
수 백 대의 제트 전투기가 동원됐으며, 대규모 탱크전, 거기에 항공모함(인도는 비크란트라는 항모를 가졌다)에, 대 잠수함 초계기까지 동원되는데, 이게 전쟁 아니고 뭔가? 그리고 공중전의 시작. 사람들은 인도의 우세를 예상했다. 파키스탄 전투기가 110대인데 비해, 인도는 5백대가 넘으니까. 그리고 그중 주력은 헌터가 120대, 낫트가 80대였다(나머진 공장에서 한참 제작 중).
인도 공군의 낫트 비행대. 사진출처: bharat-rakshak.com
거기에 비해 파키스탄의 주력 전투기는 F-86 세이버였다. 15년 전인 한국전쟁 때 활약한 기체이니, 전투기 기술이 일취월장하던 시대에 좀 뒤쳐진, 당시 구닥다리 전투기.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세이버의 독무대였다. 쉬운 말로 말해 이 올드보이가 하늘을 주름잡고 다니는 것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히어로가 나타난다.
파키스탄 공군의 모하멧 아람 소령. 그가 동료 기인 F-86 2대와 F-104 1대와 함께, 기지를 떠나 20킬로 정도 비행했을 때, 갑자기 수신기로부터 고함이 터져 나온다.
“돌아와! 적기들이 기지에 나타났어!”
하람 소령은 즉각 180도 반전, 기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날 하루, 격추 기록 6대. 불쌍한 사냥감들은 모두 헌터였다(최종 스코어는 격추 9대에 격파 2대다).
솜씨가 좀 모자라는 당시의 전쟁화 같은데, 어쨌든 세이버가 인도 공군기를 격추시키고 있다. 사진출처: paffalcons.com
수 백 대가 떼거리로 날아다니던 제2차 대전도 아니고, 대(大) 공군을 가진 강대국들도 아니다. 적기를 만날 확률이 급속히 감소되던 제트 시대, 아시아 상공에서의 공중전. 그런데 아람 소좌는 단 하루 만에, 헌터를 6대나 잡은 것이다. 그래서 세이버는 이런 별명을 얻게 된다.
‘헌터 킬러’
아람 소령도 늠름하게 인터뷰한다.
“그렇다고 헌터 전투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공중 기동성 아주 좋아요."
"문제는 세이버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거지.”
당시의 파키스탄 공군 F-86 세이버를 재현한 플라 모형, 60년대의 전쟁임에도 세이버의 3분지 1은 사이드와인더를 달 수 있었다. 날개 바로 안 쪽 2개의 파일론이 미사일 다는 곳. 사진출처: hsfeatures.com
분명 인도 공군의 낭패였고, 영국 항공 산업의 치욕이기도 했다. 미그 21 빼고는 헌터가 최우수 전투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물을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그 21이 많기나 하나? 그때 달랑 8대!
이때 복수자(復讐者)가 나타난다. 영국을 모국이라고 했을 때, 호커 헌터의 배다른 형제 낫트. 그리고 이 소형 싸움꾼, 전설의 서막이 시작된다. 이 싸움으로 인해 F-86의 도살자, 세이버 슬레이어라는 별명이 붙게 되니까.
캐시미르 상공의 오후. 헌터 전투기 6대와 함께 비행 중인 낫트. 언제 어디서 세이버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그래서 주위를 계속 감시하며 비행하는데, 그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1만 2천 피트 상공의 세이버 2대. 세이버는 단지 2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했다. 아마도 그들의 기체와 양쪽에 달린 6 정의 12.7 밀리는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급강하 습격!'
세이버가 쏜 살 같이 내려 꽂는데, 눈치를 챈 낫트 1대! 재빠르게 회피해 그 경쾌한 기동성으로, 오히려 세이버의 꼬리를 문다. 정말 놀라운 기동성. 그리고 양쪽 30밀리 기관포가 불을 토하고, 분해가 되며 떨어지는 세이버.
그때가 오후 5시였다. 땅거미가 밀려오기 전 저녁 무렵의 승리. 낫트의 첫 번째 승리였고, 세이버의 첫 번째 패배였다. 그러나 이 패턴은 전쟁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세이버는 이상하게도 낫트를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르와라 상공. 당시로서는 최고의 신예기였던 파키스탄의 F-104(2대)와 낫트가 붙었는데, 이때 F-104는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한다. 6년 전인가? 대만해협 공중전에서, 대만 공군이 중국의 미그 17을 무더기로 격추시켰던 바로 그 매직 웨폰.
헌데 낫트는 용이하게 사이드와인더를 회피, 어떤 상처도 입지 않고 다시 달려오는 게 아닌가? 그러자 마하 2의 F-104 파일럿은 질려버렸는지 그대로 도주.
‘미사일도 피하는 전투기’의 유래가, 바로 이 하르와라 상공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신화를 백 프로 믿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시는 1960년대 중반이고, 지역의 조건도 봐야 하니까. 인도 북서부는 워낙 더운 곳이라 복사열이 많은 곳. 그래서 지금보다 시커(seeker)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사이드와인더가, 낫트 꽁무니에서 나오는 열과 공기 중의 열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낫트의 엔진은 아주 작다. 그만큼 열의 분출이 약하다는 얘기, 거기에 또 낫트가 재빨리 공중기동을 하면, 사이드와인더가 그냥 무익한 가출(家出)이 되는 게 당연할 법도 하다.
사이드와인더를 장착한 미 공군의 F-104 전기형. 사진출처: i-f-s.nl
그리고 6년 뒤에 벌어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때는 초음속의 시대로 마하 2급의 전투기가 다수 투입된다. 양쪽 모두 기를 쓰고 신형기 도입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프랑스의 미라주 3과,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미그 19.
인도는 2백여 대의 미그 21.
물론 낫트 역시 많이 만들어져 2백 대 이상이 참전했지만, 제1차 전쟁 때와는 아무래도 위치가 달라진다. 그때는 에이스였으나, 지금은 미그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낫트는 그 충실성을 잃지 않았다. 전쟁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활약을 하고, 미라주 3이나 미그 19 같은 초음속기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중고도나 저고도 이하에서는 뒤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전쟁이 끝난 뒤, 양 쪽은 이제 다른 전쟁으로 들어간다. 서로가 상대를 대량으로 격추시키고, 자기넨 소수만이 당했다는 식의 자화자찬 전쟁.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었다. 이것은 파키스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작은 싸움꾼 낫트의 활약.
인도 공군이, 다시 1백 대의 낫트를 만들고자 결정을 내렸을 때, 또 한 번 증명이 된다. 능력이 모자랐거나, 그럭저럭 활약을 했다면 누가 대량 발주를 할까? 인도 공군은 이어서 이름도 개명한다. ‘아짓트’였다. 인도 말로 ‘불굴’ ‘또는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자’라는 엄청난 뜻.
낫트와 거의 구별이 가지 않는 ‘아지트’ 그러나 요소요소 개량이 가해졌다. 그중 하나가 날개를 웨트 윙으로 해(연료가 들어가는 날개), 항속력이 늘어난 것. 사진출처: tangmere-museum.org.uk
또 낫트를 2인승으로 고친 연습기도 만들어진다.
아짓트 전투 연습기, 그러나 대량 생산으로는 이르지 못한다. 사진출처: http://bharat-rakshak.com
낫트(이제는 아짓트)는 최종 생산이 끝나고도 꽤 오래 날다가, 1990년대 초에 은퇴를 한다. 오랫동안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전투기의 은퇴였다. 동시에 이것은 인도 공군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점과, 또 설계자 테디 페터의 전투 필로소피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즘의 제트 전투기는 너무 커지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대당 가격이 끝없이 오르며 유지에 애를 먹는 중이다. 나는 이때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작고, 가벼우며 단순한 전투기를 추구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이익을 사용자에게 가져다준다. 기체 가격이 대폭 싸지면서 유지비는 줄어든다. 또 부속품이 적고, 고급 장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으니, 고장 발생 빈도가 낮다. 그런데도 하늘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는 싸움꾼, 나는 그런 놈을 만들 것이다.”
엄친아(?) 테디 페터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아쉽게도 세상 기준을 판단했을 때 그리 행복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자기 회사 홀랜드는 다른 데도 아닌, 호커 사한테 팔려 사라졌기 때문. 영국에서 대량발주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든 헌터를 만든 회사 호커 사, 회사를 떠난 이유도 아마 호커 사 밑에서는 일하기가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파킨슨 병에 걸린 부인,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영국을 떠나 부인의 고향인 스위스, 작은 호텔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세 딸을 키우며 부인을 간호하고, 물론 세상과는 일체 담을 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