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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Dec 09. 2024

실로암

아버지와 남편의 매치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오전 주일 예배 찬양을 부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왜 이 찬양을 좋아했을까. 가만히 가사를 곱씹어보면, 다른 찬양과 다른 분위기가 있다. 어둡고 캄캄한 밤이 시각적으로 느껴질 만큼 묘사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제주로 와서 살았다. 먹고살기가 어려워 산 길을 걸어 다니며 나무를 하러 다녔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길을 나서서 나무를 하러 가는 길은 얼마나 고달프고 추웠을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아버지는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맨 정신에는 절대 표현할 수 없어 술을 한 잔 할 때면 노래도 신나게 부르고 흥겨워했다.


아빠와 남편은 감정적인 모습이 닮았다.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는 남편, 서운하면 삐지는 모습도 비슷하다. 생각지 못한 이마고 매치에 놀란다. 이마고 매치는 무의식적인 뇌의 작용으로 본인이 알든 모르든 부모와 비슷한 특성이 있는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하빌 헬렌 박사님의 이마고 부부치료 이론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주님 맘 속에 사랑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가 부모님이 귀찮아지기 시작한 나이 때의 일이다. 술을 한 잔 드시고 열 시쯤 귀가한 아버지가 생일이라며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밤늦게 아이들을 귀찮게 한다며 아버지에게 싫은 내색을 했다.  아버지는 혼자 기어이 슈퍼에 가서 초코파이와 커다란 양초를 사가지고 와서는 생일 축하를 해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관점에서 아버지를 보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성가신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어 그 남자를 떠올려보니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싶은 ’ 존재‘였다.(엄마는 실용주의자적인 사람이라 사소한 것에 공들이는 일을 귀찮아한다.) 


찬양을 들으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딸이라고 안 된다고 하는 것, 못 해준다고 하는 것 없이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지원해 주시던 아버지가 시간이 갈수록 보고 싶다. 그리운 아버지 대신 주방에 서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뒤에서 꼭 끌어안아보았다. 아버지가 이해되니 남편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에게 영원한 사랑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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