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사이가 어색해진 건 오래지 않았다. 십대 때 마음 아프게 외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혼을 하여, 23살 꽃다운 나이에 나를 낳은 우리 엄마.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엄마에게 나는 친구이자 기쁨이 되는 어떤 특별한 존재다.
지난 글에 딸기 사건이 있기 전까지 엄마는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한 사람이었다. 부족하지 않게 사랑받으며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절실하게 엄마의 손길을 찾던 그 순간, 거절됐다고 생각하니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다. 어릴 때의 깊은 두려움, 그 무엇이 건드려진 것만 같았다.
박선아 글. 김재환 그림의 '안녕 나의 엄마'라는 그림책을 보았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 굳이 나의 상황에 대입해서 읽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특별한 모녀의 사랑이야기로 덮어두고 싶었다.
글을 쓴 박선아 작가에게 "책이 나오고 난 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거나 하진 않나요?"라고 물었던 것 같다.
자주 싸우는 현실 모녀일 뿐이라는 작가님의 말에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책에 '나의 엄마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 딸이어서 너무 힘들어.‘라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결혼하고 육아로 수렁에 빠져들어가고 있어도, 나를 지지할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엄마에게 힘들다고 할 때면, ‘우리도 다 그러고 살았어.‘라고 했다.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엄마도 느낀 적이 있었을 텐데...그래도 엄마 역할은 해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왜 못하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옛날 엄마들은 아이들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맨날 청소도 했어. 나는 청소가 너무 힘든데.‘라는 말을 했다. 돌아온 엄마의 '요즘 애들은 집안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까탈스럽기는 엄청 까탈스럽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힘이 빠졌다. 다들 그러고 살았다는 데, 지금도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나는 힘들어하는지, 이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엄마는 동생의 아픔에는 유난하게 반응했다. 동생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의 서운함은 감추라고 했다. 불편해도 좀 참으라고 했다. 이해하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했다. 편안했으면 했고, 웃었으면 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누나로서가 아닌, 같은 형제로서가 아닌, 엄마를 역할을 하며 동생을 대했다. 부자연스럽고 부담되는 관계를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하기 싫다고 했다. 엄마를 가장 기쁘게 할 그 일을 난 하지 못했다. 같은 자식인데 왜 다르게 대하느냐며 따졌다. 착한 딸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부담 되고, 짐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어느 날, 엄마의 서랍 속에서 엄마포기각서라는 엄마의 글을 발견했다, 어릴 때부터 무서워하던, 엄마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걸 절감했다. 어른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다는 것은 여전히 불안한 일이다. 특히 피를 나눈 가족과의 관계에서, 생명의 근원이 잘리는 기분이었다. 내 존재가 버려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림책 스테이라는 모임 시간에 엄마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딸이 엄마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엄마도 딸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은 그림책처럼 ‘엄마,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라고 묻고 싶지만, 엄마가 정말 아픈 이야기를 하면 감당하기 힘들까봐 묻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착한 딸 역할을 하며, 엄마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는 나를 볼 것 같아 외면했다.
어릴 때 내가 엄마에게 주었던 그 순수한 사랑을 이제와서 돌려받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주었던 조건없는 사랑을 나에게도 달라고 투정하는 것일까. 엄마에게서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서 왜 나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지 않는지 떼를 쓰고 있다.
사랑스런 딸이 되지 못했지만 엄마가 그립다. 엄마가 계실 때 품에 한 번 안겨 보고 싶다. 엄마에게 부담스럽고 짐이 되는 딸이 아니라, 가슴을 맞대고, 서로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고 싶다. 엄마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엄마가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