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가 되고 말았다

by 따뜻한비


아이를 키우며 친정엄마의 손길이 그리웠다. 20대 중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험난했다. 그때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엄마의 지지와 응원이었다. 구조를 청하는 깃발을 보일락 말락하게 꺼내들었다. 거부되는 조짐에 마음이 얼어붙어 버렸다.


그 후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의심스러웠다. 철없는 동생에게는 지나치게 받아주고 늘 미안해하는 엄마였다. 나는 엄마가 믿고 의지하는 딸이었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결혼 생활이 고달프고 끝이 없는 것 같은 육아로 지칠 때, 물리적인 도움 보다 심리적으로 지탱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뒤로 떨어져도 낭떠러지만 있는 것 같은 그때 나를 잡아 줄 사람이 엄마였으면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이제까지 잘 해왔으며 왜 그래?, '엄마도 힘든데 너까지 왜 그래? 엄마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왔던 내가 딸로서 기대 오자 엄마는 버거워했다. 아빠가 아프셨고, 동생은 여전히 낙엽처럼 흔들거렸던 때. 두 남자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엄마를 이해하는 짐을 다시 짊어지기엔 내가 위태로웠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엄마는 왜 내가 잘할 때만 딸이라고 해? 내가 이렇게 힘든 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가 있어?'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계속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가고 싶고, 함께 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귀찮게 하면 두고 갈 것 같아 두려워하던 나는 멀찍이서 맴돌기만 했다. 어린 나는 착한 행동을 하며 불안을 잠재웠다. 모범적인 아이, 얌전하고 착했던 아이. 굴곡이 휘몰아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나는 더 이상 그때의 착한 딸이 아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더욱더 밀어내었고,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내 모습이 낯설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엄마도 자기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내 자식은 내가 키우겠다며 잘난 척을 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노동을 빌어 나는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있다. 누구처럼 잘나고 능력 있는 딸이었다면, 나를 더 지지해 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친정 엄마와 딸 사이, 어쩌면 가까워서 서로를 더 아프게 했을 지도 모르고,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어떤 날엔 웃음의 근원이었다가 어떤 날엔 서로를 곤두박질치게 하는 애매모호한 두 행성. 이제 우리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서로를 괴롭히는 행동과 생각 패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가는 길이다. 적절한 거리를 찾아 헤매는 시행착오를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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