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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Oct 07. 2021

가족과의 친밀감을 원했는데 시어머니가 생겼다.

나는 배우자에게 무엇을 의존했는가? 그래서 어떤 댓가를 치르고 있는가.



  내 나이 26살, 남편과 결혼을 했다. 25살에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으니 지금 시대에는 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셈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상황을 떠올려보면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을 타지로 가고, 결혼 1년 전까지 외국을 떠돌다가 돌아왔을 때, 가족의 품이 필요했다. 그런데 원가족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원가족 안에서 편안하게 쉬거나 기댈 수 있을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이미 가족과 떨어져 산 지도 오래 되었고, 집에 있는 동안 가끔씩이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때 느끼던 깊은 분노가 싫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로 간 뒤에, 내가 쓰던 방은 동생이 사용했다. 집에 돌아가면 내 공간이 없다는 것도 한 몫했다. 집에만 내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주하는 어디도 나의 공간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기숙사가 싫어서 대학 때는 자취를 했으나 룸메이트가 있었고, 집은 늘 옮기거나 떨어져야 할 곳으로 여겨졌다. 대학 때 중국-> 러시아 -> 영국 곳곳으로 계속 거주지가 옮겨 다녔으니 어디도 내가 집이라고 생각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영국에 있을 때, 나를 어릴 때부터 봤던 과외선생님이 여행을 오셨다. 선생님과 나는 유럽 여행을 함께 다녔는데, 매번 'Sorr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내가 무척 불안정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존재가 어딘가에 정착하기에 불안해했던 것을 느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선생님은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그때 나는 원가족과 함께 하는 것보다 새로운 나의 가족을 꾸려야 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지금의 남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는 교제한 지 5-6년 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가족 안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가족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남자친구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문제가 되는 갈등요소가 있었는데도, 그게 나를 힘들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그걸 깊이 생각해볼만한 마음의 여지가 없었다. 남편은 원가족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었고, 어른을 공경하는 효자였다. 그게 나의 발목을 잡을 줄 알고 있었을까. 

  내가 남편에게 제공 받고 싶었던 건,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리고 그걸 얻지 못해서 오랫동안 투쟁하고 싸웠다. 내가 남편에게 들고 간 건, 남자를 무능력하고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이렇게 상반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진짜 그렇다.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을 보면서 나는 늘 도와줘야하고 기도해줘야 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무의식중에 학습했다. 그래서 내 남편은 그것과는 달리 나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나는 뭐든 지 챙겨줘야 하고 뭐를 맡겨도 불안해하고 성에 안 차는 눈으로 보고 있다. 엄마보다 못한 것은 엄마는 긍휼하게 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엄청 불만을 가지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재정, 육아, 차량청소, 공과금납부, 가족경조사, 집청소, 집 안에 소모품 갈기, 대인 관계 등 남편이 신경을 쓰거나 체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 몸 위에 남편의 몸무게만큼 얹고 있는 것 같아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편을 선택할 때 나는 직업도 안 보고 외모도 안 보았던 것 같다.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시아버지와 결혼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술도,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이 우리 아빠와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는 결혼할 때 종종 부모를 원한다. 원하는 부모의 모습이 강력할수록 나는 아이가 되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는 배우자를 친구로 전환을 시킬 때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고 있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것 때문에 또 화를 내고 더! 더! 를 외치지 말아야지. 남편도 수고했고 나도 수고했다. 이제는 서로 인정하는 부부로 살고 싶다. 아직까지도 배우자에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원한다면, 나 역시 상대에게 어머니의 역할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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