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그야말로 믿고 키우는 장녀였다. 동네 아줌마들은 공부도 곧 잘하고 예의바른 나를 ‘착한 아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부모님은 안쓰럽고 늘 챙겨드려야 하는 대상이었다. 할아버지의 도박으로 제주로 쫓겨 온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고, 외할아버지의 외도로 외할머니가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는 돌봄을 받지 못하고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외삼촌이 아이 좀 봐달라고 제주로 불렀다가 입 하나 줄이겠다고 나의 큰아버지와 합작을 해 정략결혼이나 다름없이 급히 결혼을 시켰다. 군밤장수 처녀와 번개탄 장수 총각의 만남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숟가락만 가지고 살림을 시작했다. 성실한 것을 무기로, 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성품을 방패 삼은 두 사람은 꾸어줄 망정 꾸지는 않는 사업을 이어나갔다.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는 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럽고 뿌듯한 딸이었다.
성실하면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중학교 시험 성적과는 달리, 고등학교는 나정도의 수준으로는 어림없었다. 게다가 제주에 처음 생긴 인문계 특목고에 진학했고, 도내 중학교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등수의 아이들만 모였다. 교사, 공무원 집 아이들은 기본이고, 당시 내 주변에 만나본 적도 없는 의사나 교수의 아들 딸들이 다 모여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기대 속에 자란 아이들이라 그런지 특별히 모가 난 아이들도 없었다. 친구들과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공부는 점점 뒤처지고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방학이면 외국에 연수를 다녀오고, 서울 고액 기숙학원에 살다 오는 친구들이었다. 그땐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그게 뭔지 몰라서 부러운 마음도 없었다. 선생님도 가능성 있는 아이들, 부모가 학교에 자주 오는 아이들을 은근히 차별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 대상에서 예외가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입시사정을 하는데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정시로 가야하는 지 수시로 가야하는 지 정도의 전략도 혼자서 알아보는 게 어려웠다. 턱없이 정보가 부족한데 도와주려는 이도 적었다. 공부도 지친데. 주말이 되어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온 엄마에게 막무가내로 짜증을 부렸다. 듣고 있던 엄마는 자기의 무능력함에 나보다 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죄책감이 밀려와 더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다. 근래에 나는 상담을 공부하고 자기 분석을 하며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무지하게 화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힘을 실어주거나, 방향을 찾아주는 이가 있었더라면. 혼자서 헤쳐 나가는 건 나에게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해 시작도 하기 전에 제 풀에 지치고 말았다. 결혼을 한 뒤에도 일이 있으면 나서서 방법을 찾아보기는 커녕 뒷짐지고 병풍처럼 서 있는 남편을 보며 얼마나 분노했던가.
만 24살에 아이를 가지며 정말 잘 키우고 싶었다. 잘 키운다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나의 결핍에 비롯된 것으로 원하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기위해 나는 자연출산을 했고, 유기농 음식을 먹였으며, 2년에 가까운 모유수유를 하며 애착육아를 고집했다. 지나치게 교육에 대해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밝은 성품과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고작 발레를 데려다주면서도 그런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내가 힘들면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자녀의 원함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내 신념이 나를 지배한 것은 아닐까.
짧은 찰나에 지나간 생각이지만 나도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봤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줘서 본인은 직장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기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주입된 육아의 올곧은 가치를 주장했지만, 딸의 미래와 직업을 위해 지원을 해주는 친정 어머니를 가진 사람은 어떤 복을 타고 난 걸까. 부모의 지원군으로 살았던 나, 그리고 더 이상 그걸 감당할 겨를 없을 때 나락으로 떨어진 나를 보는 어머니는 그 마음만으로도 괴로웠다.
‘너는 엄마인 내가 이렇게 다 해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짜증이야.’라는 어제의 화는 어쩌면 나의 어린 아이가 내 딸에게 소리쳤던 말을 아닐까. 딸 아이에게만 사과를 했는데, 오늘은 여전히 어린 나라는 아이에게도 따뜻한 품을 허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