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학령기의 아이를 치유하기를 읽고
비록 어떤 아이들은 서툴고 미숙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어떤 아이라도 아름답지 않은 아이는 없다. 그 아이들은 단지 거칠고 아직 미완성인 존재이며,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우리의 존중과 도움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217쪽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책의 학령기 아이를 치유하기 부분을 읽었다. 학령기 때의 나는 특별히 기억날 만한 일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책을 읽다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나는 선생님들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 같지 않고, 나서거나 별 다른 깊은 관계를 맺은 기억이 없다. 그냥 모범적인 조용한 아이었던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 1-5학년 때 선생님은 성함도 가물가물 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생활 기록부에 나의 표정이 어둡다고 적었다. 그 말이 나에게 좀 충격적이었다. 내가 평소의 표정이 어떤지 의식하기 시작했고 억지 미소를 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웃는 얼굴이 되려고 애썼다. 친구들도 가끔 내가 무표정하면 무섭다고 말했다. 나에게 왜 그런 무표정함이 자주 있었을까? 원래 내 얼굴은 좀 어두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마음이 좋지 않으면 표정에서 많이 드러난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예민하고 까칠한 분이었다. 항상 인상을 찡그리고 다니는 특징이 있었다. 3학년 때 인가 그 선생님을 보면서 저 분이 나의 선생님이면 진짜 무섭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4학년 때 담임이 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사회시간에 부장을 맡아서 하라고 했다. 각 교과목마다 부장을 세우고 그 시간에 학습 내용을 챙겨 앞에 나와 퀴즈 같은 걸 냈었다. 잘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내 기대치보다 잘 못한 것 같은 날엔 숨고 싶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좀 더 신경써서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창조성과 독특함보다는 획일성과 암기력에 대해서 보상한다. 전 과목 A학점을 받는 우등생으로 길러진 많은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개발해 보지도 못했다.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뭔가 해야 하고, 성취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보냈다. 얼마나 많은 A학점을 받았는가는 나의 정신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상처받은 그 아이는 여전히 혼자였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215쪽
그러던 어느 날, 과학 시험을 봤다. 문제지는 스스로 채점을 했는지, 아니면 짝꿍과 바꿔서 했던 것 같은데, 아주 작은 실수로 오답을 적었다. 화살표 '>' 표시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로 오답이 갈렸다. 이렇게 작은 실수로 오답처리가 된 것은 굉장히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점을 하다 살짝 그리고 나도 맞았다며 우겼다. 선생님은 반 친구들이 다 있는 앞에서 나를 부르더니 진짜 이렇게 했었냐고 물었다. 친구들 앞이라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고집을 부렸다. 선생님은 내가 적은 답을 다 기억하고 있다며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한 감정이 섞여서 더 우겼다. 선생님은 결국 남으라고 했다. 선생님과 1:1 만남을 두려워하며 결국 맞닥뜨렸는데, 선생님이 답을 다 기억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혼을 내셨다. 그 다음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엄청 울고 좋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뒤로 선생님과의 관계도 안 좋아져서 약간 피해서 다녔다. 스스로도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수를 할까봐, 정직하지 못할까봐 더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정직에 대해 강요하기보다 내 마음이 어땠는지 먼저 물어봐주고 싶다. 선생님을 이기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용납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한 아이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학문적인 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이 자신을 알고, 사랑하고, 가치를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사실 좋은 배움을 위해서는 건강한 자기존중감이 중요하다.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