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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Mar 21. 2024

INFP 글쓰기 리더로 살아남기


  ‘대략적인 가이드만 있고, 자세하게 원하는 사항은 만나서 의논하자.’라는 말로 모임을 시작했다. 이 공지 글이 글쓰기 모임을 하는 내내 정해진 성격이자 방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년간, 큰 테두리만 에둘러 던지고 ‘원하는 건’, ‘만나서’, ‘자세하게’ 나누는 일이 2년간 지속되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리더로 함께 하며 가끔 올림픽 성화 봉송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한 사람이 성화를 들고 뛰다 어느 시점에서 다른 이에게 배톤을 넘겨주는 장면처럼 누군가 열심히 쓰다가 지치는 듯하면 다른 이가 이어받곤 했다. 순서는 없다. 어느 시점에 영감을 받은 사람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다. 자연스레 다음 주자가 되는 거다.


  함께 모여서 글을 쓰는 동안 늘 큰 그림만 제시했다. 나아갈 방향, 상세한 방법도 본인이 설정해야 마음이 움직이는 구성원들이었다. 각자 글을 쓰자고 하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00일 동안 같이 매일 글을 쓰자고 했더니 한 사람만 썼다. 이유는 모두 타당했다. 일이 바빠서, 글을 쓸 마음이 잡히지 않아서, 잘 쓰려고 하는 부담감 때문에 못 썼다는 거다. 이유는 모두 정당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 수긍했다. 나 또한 영감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일 쓰지 못했기에 할 말은 없다. 


  바쁘게 살아가며 다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INFP인 구성원들은 어떤 이유든 공감하며 계획이 변동되거나 약속이 바뀌는 것이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것 같았는데, 리더라는 책임감에 모임이 계속 미뤄지면 조바심이 일었다. 


  한 번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출간의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가 있어 도전해 보자고 제안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으로 들어오도록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과 목차를 내고 승인이 떨어져야 글을 쓸 수 있고, 작가를 찾는 편집자들이 눈여겨보는 플랫폼이라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등용문이기도 하다. 

  

“내 글은 브런치 스타일이 아니고 블로그에 써야 합니다.”


“그것까지 해야 합니까?” 


  뭔가 도움이 되고 의미가 남는 모임이 되도록 하고 싶었지만, 구성원 모두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 뭔가를 통제해야 불안이 덜할 것 같은 마음이 일어났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모임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가끔 고구마가 위장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것처럼 몸도 늘어지곤 했다. 자율적으로 맡기니 어떤 때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 같고, 무엇을 하자고 하면 한 번에 OK 하는 경우가 없었다. 안 하려나 보다 체념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횃불 들고 와 뛰기 시작했다. 종잡기가 어려운 Feeling과 개성 강한 각자의 철학이 모임의 진행 방향과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지 위기감이 들었다.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돌아가면서 리더를 하자고 하고 나도 마음대로 해볼까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목표보다 사람을 선택하고 믿기로 했다. 내가 지펴 주는 불 대신, 본인의 때가 차오르면 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가는 사람들이었다. 언제까지나 그들의 삶의 주인은 그들이다. 각자 개성은 강하지만 악의 없고 타인에 마음 씀을 세심하게 기억하며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나의 글쓰기 친구들. 원하는 방향과 속도대로 각자가 원하는 꿈의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갈 것을 믿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인지, 서로 횃불을 주고받고 하더니 브런치 작가가 되겠다고 스스로 목차도 꾸리고 합격 통지만 내게 날렸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브런치 작가가 되어 열심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글을 퇴고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5명 모두가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었다. 


  멤버들과 지내며 모임의 목적에 딱 알맞게 속하지는 못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사람이 좋다고 두루뭉술 따라가지도 못하고, 잘 가다가도 어딘가 나와는 약간 다른 방향이 모이면 고민하다 급발진하여 중지를 외치기도 하는 나. 미안하거나 화가 난 마음은 잘 해결하지 못하고 부대낌이 남아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때도 있었다.


  모임에서 내가 맡아 했던 역할들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모임 비를 관리하는 일(나의 덜렁거림을 보완해 줄), 일정과 장소를 정하는 일(호기심이 많아 다들 바쁘다), 카페 글과 게시판을 관리하는 일, 꾸준히 글을 쓰며 페이스 메이커를 하는 담당. 다들 나보다 훨씬 잘했다. 맡겨두기만 하고 점검은 할 필요 없이 스스로 잘했다. 심지어 공동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경험 있는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나에게 역할을 주었다. 


  불이 타오르면 시작은 잘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끝마무리가 흐지부지해지기 쉬운 우리들. 이 모임에 멤버들의 책이 나오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나갈 때까지 나는 여기에 남아있을 예정이다. 무엇을 위해 멤버들을 끼워 맞추거나, 거창한 목표를 위한 대상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속도에 맞게,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도록 기다려주며 자리를 지키는 리더가 되고 싶다. 단, 하고 싶을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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