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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Mar 06. 2024

인프피 엄마 생존기

기저귀부터 확인해요!


 인프피 (INFP)-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각적이며 즉흥적인 인간 유형이라고 한다.

 내 경험을 빌어 말하자면, 사회생활에 그다지 적극적이지도 않고 이성보다는 감을 믿으며 사실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인간이자 계획보다는 충동적인 성격을 말한다. 그런 나에게 결혼은 그 자체로 기적적인 일이었고 큰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다.


 ISTJ 유형인 남편과 결혼할 수 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의 다소 모자라 보이고 독특한 행동에도 지적하는 말대신 나를 안아주는 따스한 마음 덕분이었다. 또 세상의 누군가와 우리(나와 그)를 비교하지 않는 안정감, 자기만의 기준점이 있다는 점에서 깊이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의 내적 세계를 바꾸려 하지 않는 그, 현실적이지만 헌신적인 그에게 끌렸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홀딱 빠진 채로 그와 결혼한 나는 한참 뒤에야 J형 친구들과 우리의 결혼에 큰 차이를 발견했다. 바로 목표가 없었던 결혼이다.


 친구들에게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었고, 앞으로 얼마 정도의 재산을 모으거나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저 우리 둘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루 여긴 우리에겐 계획이 없었다. 서로의 존재가 중요한 우리이기에 목표 없음이 주는 편안함이 여전히 좋긴 하다. 서로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다툴 이유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평화주의자인 infp는 행복했다.


하지만 곧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가 된 나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처음부터 무한한 사랑의 존재였던 딸들의 탄생은 나에게 ‘엄마’라는 책임감.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굉장한 무게감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해 준다.


 소심한 INFP 엄마인 나에겐 조리원 동기가 없다. 한 마루를 쓰고 식당을 함께 하는 자연친화형 조리원에서 2주를 보냈건만 내가 아는 조리원 동기는 없다.

추레한 몰골과 매일 모유수유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진 나와 동기들에게 꼬치꼬치 무언가를 묻거나 함께 수다를 나누는 일이 나에게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밥 먹고 나면 서둘러 개인실로 들어가던 우리 동기들에게도 내향적인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퇴소 후에야 많은 이들이 조리원 동기 모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던 것부터 INFP 엄마들의 범상치 않은 시작이지 않았을까?




산후조리원을 졸업하면서 새로 생긴 난제는 아이와 나의 의사소통의 부재였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과 있으면,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눈치를 엄청 보는 스타일이었던 나는 주로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잘 살피는 편이었다. 그런데 100일이 되기 전에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이렇다 할 수 있는 행동과 말이 없기에,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퇴원 전, 신생아실 간호사님께서 하신 말씀만 겨우 남아 있었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확인하시고, 그래도 울면 먹을 것을 주세요. 그래도 울면 열을 재보세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은 초보 엄마 아빠인 우리가 저지른 실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난 첫째를 돌보면서 입원 내내 소변통을 꼽고 누워있던 나는 모유수유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분유를 종종 먹이곤 했는데 간호사님이 처음에는 2시간에 20미리를 먹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먹이기를 이틀. 아이가 자주 울자, 담당 간호사님께 여쭤보았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 둘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이가 울면 분유량을 늘리셔야지요! “


그 말에 당황하며 분유량을 늘리기 시작했지만 어디까지 어떻게 늘려야 할지가 감이 오지 않아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모습을 생생히 지켜본 간호사님이 우리를 걱정하며 남긴 말씀이겠다 싶다.


이런 좋은 조언을 받아 집에 와서도, 나는 막상 아이가 울면 당황하기 일쑤였다.


특히, 아이가 왜 울지? 어디가 아픈가? 싶어서 허둥댔다. 아이를 안아주면 불안감이 사라질까 싶어서, 늘 아이를 안아주는 일이 제일 먼저였다. 아이에게 안아주는 일은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지만 막상 안아주고 나면 다음에는 무엇을 어찌할지 자꾸 망설였다.


반면, ISTJ성향인 남편은 1. 기저귀, 2. 분유, 3. 열 재기의 규칙을 아주 잘 지키고 있었다.


”여보, 기저귀 확인했어?”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남편에게 배우게 된 나는 여전히 홀로 있으면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최소한 3개를 해보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1. 기저귀 2. 분유, 3. 열재기


약간의 우선순위이자 루틴이 생기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불안감이 높은 편이었던 나의 육아의 첫 시작은 루틴을 아는 것이었다.


가끔은 이 루틴을 뛰어넘어, 아이가 발진이 나서 울거나 이가 나며 간지러워 힘들어 우는 것 등등의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처음 루틴을 실행하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 불안감을 느끼는 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지금은 13년이나 지난 나의 육아를 돌아보니, 그 육아의 어려움은 결국 나의 성격 특성에서 오는 어려움이기도 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잘 살아준 나에게, 매일매일 식사를 차리고 일을 하며 집안을 정리하는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어려움을 느끼는 인프피 엄마가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아요, 당신의 불안은 당연한 거랍니다.  꼭 안아주는 그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기저귀부터 천천히 살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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