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이 작다고 느껴질 때, 외국어 공부를 해_리스트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 프란츠 리스트

by 가영

내 세상이 너무 작다고 느껴질 때, 나는 제2외국어 공부를 한다. 두 가지 즉각적인 효과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다시금 뼈저리게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제2외국어를 사용하는 내 모습에서,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지며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2020년 가을, 코로나로 인해 미국 유학 생활 중,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음악 전공 특성상 연습, 친구들과의 리허설, 선생님들께 배우는 레슨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온라인수업은 그 시간은 텅 비워버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어차피 프랑스어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으니, 프랑스어 시험 DELF를 보자 결심했다. 미국 교수님들은 외국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컸다. 클래식은 유럽에서 시작한 음악이니, 적어도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다들 생각해, 학교 커리큘럼에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나는 반주과 전공으로 성악가들과 일을 하고 싶어, 세 언어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더 크게 다가왔다 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나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건 엄청난 인내를 요구한다. 마치 ‘세상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하니?’ 라며 후드려 맞는 기분이었다. 알파벳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세상은 이리 크고 알아야 할 거는 많다는 것을 실감했단다. 프랑스어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서, 가족들을 괴롭히며 나의 성격은 아주 초예민해졌다. 책상 사이로 공부를 같이하던 내 귀염둥이 동생은 이렇게 난폭한 성격과 짜증 난 모습은 처음 본다며, 제발 프랑스어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다. 시험을 보러 가는 아침에는 스무 살 후반의 딸내미는 엄마에게 전화해, 버스가 안 오니 시험을 안 보러 가면 안 되겠냐며 찡찡대기도 했다.



(성격을 버릴 수도 있지만..) 초급단계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겸손함과 인내심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그 사실은 짜증을 유발한다. 이 짜증은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하지만 바로 그 감정을 이겨낼 때 비로소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어느 정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중급 단계가 되면, 더 큰 선물이 찾아왔다. 언어가 자유로워질수록, 그 문화에 익숙해지고, 나도 전혀 몰랐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영어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를 쓸 때의 내가, 한국어를 쓸 때와는 다른 감정과 행동을 보인다는 걸 느꼈다. 영어를 쓸 때의 나는 덜 조심스럽고, 덜 눈치를 보고, 더 솔직해진다. 미국의 문화도 큰 몫을 하겠지만, 내가 자유롭고 남 신경을 안 쓰는 걸 이리 편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는 나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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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삶은 여러 언어를 배우는 여정을 보여준다. 헝가리 태생의 헝가리 작곡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부모님 모두 헝가리어를 못 썼고, 어린 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었던 당시 헝가리에서는 대부분 독일어, 특히 사회 하층 계층에서 사용되는 빈 방언이 주로 사용되었다.



어린 시절 리스트는 피아노 신동으로 유럽 전역에서 공연을 하며, 헝가리에서 있던 시간보다, 프랑스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프랑스어를 가장 편하게 사용했고, 프랑스어와 문화를 금방 익혔다고 한다. 실제로 어머니와의 편지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했지만, 어머니도 점점 프랑스어를 읽게 되면서 편지는 점차 프랑스어로 바뀌었다.



하지만 1842년 바이마르의 궁정악단 (카펠마이스터)이 되면서, 독일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늘렸다. 슈만이나 바그너 등 동료들과의 편지도 독일어로 주고받았다. (237, footnote 39). 프랑스어와 독일어 외에도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도 능숙한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헝가리어를 몰랐던 리스트는 웃픈 상황도 겪었다. 당시, 헝가리 민족주의 운동이 점점 커지면서, 리스트는 헝가리에서 순회 연주회를 많이 열었다. 1840년 1월 4일 헝가리 국립극장에서 열린 연주회 후, 민족주의 상징이 담긴 ‘헝가리 명예의 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리스트는 헝가리어를 몰랐기 때문에 수상 소감을 프랑스어로 해야만 했다. 학자들은 이 사건 이후 리스트가 헝가리에 대한 관심, 특히 헝가리어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짐작한다. 특히, 1870년대, 그의 나이 60세에 매년 3분의 1 가량을 부다페스트에서 보내며 헝가리어를 배우고자 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언어에 대한 노력과 여러 문화권에서의 삶 덕분이었을까. 리스트는 단지 음악적으로 뛰어난 작곡가를 넘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코스모폴리탄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






짜증과 함께 무거운 발걸음으로 갔던 프랑스어 시험에서 나는 51점으로 간신히 합격했고, 나에게 웃긴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 후 미적미적되던 공부 습관은 요새 다시 불이 붙게 되어 오래된 프랑스어 공부노트를 최근 다시 꺼내어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는 영어 이외에도, 언젠가 프랑스어로도 생각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그 문화 속에 있는 나를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한 번,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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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언어와 관련된 리스트 음악 추천_ 헝가리, 프랑스, 독일, 이탈리


헝가리_

Hungarian Rhapsody No. 2 in C-sharp minor, S.244/2 | 헝가리 무곡 2번: 애니메이션과 클래식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톰과 제리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어찌 이리 음악과 잘 표현해 냈는지. 피아노 솔로곡으로도 있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버전도 있다.

https://youtu.be/QpEfHVFilRc?si=5Y5eDpXdlOZpAFLh


프랑스_

Oh! quand je dors, S.282| 아, 내가 잠들었을 때: 리스트는 장발장(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와 긴밀한 관계였다. 그는 파리에서 9살 많은 위고의 집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위고의 시를 바탕으로 여러 아름다운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Oh! quand je dors ("아, 내가 잠들었을 때")는 리스트의 가장 널리 알려진 프랑스 멜로디 중 하나다.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 위에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은 꼭 들어볼 만하다!

https://youtu.be/_p_WSTSsDp0?si=AWRLKeXeIhKkGtmA




독일_

Die Loreley| 로렐라이:

리스트는 하인리히 하이네와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하이네는 리스트의 팬덤 현상을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말로 처음 표현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이네의 시를 바탕으로 한 리스트의 가곡 중에서도 로렐라이는 정말 아름답다. 전설적 여인을 그린 하이네의 시가 리스트의 음악 속에서 한층 더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로 살아난다.

https://youtu.be/cg7ycBBZUkM?si=ETGpCXqkaCtMMC8M


이탈리아_

3 Sonetti del Petrarca, S.270 | 3개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르네상스 시인 페트라르카가 평생 사랑한 여인 라우라에게 바친 시편을 토대로 리스트가 작곡한 Petrarch Sonnets는 가곡으로도, 피아노 솔로 버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서정적 선율과 극적인 음악적 장치들로, 리스트의 시적 감성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특히, 첫 번째곡 강추!


https://youtu.be/uTEsWeEOLow?si=j0hMbXvZgjB0-5Mf




참조문헌

Cormac, Joanne. “Liszt, Language, and Identity.” 19th-Century Music 36, no. 3 (2013): 231–47. https://doi.org/10.1525/ncm.2013.36.3.231.


Williams, Adrian, and Franz Liszt. Portrait of Liszt. London: Oxford: Clarendon Pres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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