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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Jul 13. 2024

나는 우울할 때 가면 뒤에 숨어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 포레 - 달빛

나의 오랜 친구가 보스턴에 놀러 왔다. 친구는 나의 미국 유학생활을 처음 보았다. 우리는 학교를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내가 일을 할 때 만나던 학부생 친구들이 지나가며 나에게 인사를 해서 나도 순간 밝게 인사를 했다. 오랜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못 보던 사회생활의 얼굴을 봤다”라고, “억지 미소였냐”라고 물었다. 그런가? 억지 미소였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밖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와 적막한 집에 와서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게 진짜 내 모습일까, 아니면 내 안에 있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일까? 나는 가면을 쓰고 있나?






Pèlerinage à l'île de Cythère 1717 | Pierrot 1718/1719       Musée du Louvre



첫 번째 그림에서는 몽실몽실한 구름, 날아다니는 귀여운 큐피드들,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그림에서는, 모두가 즐겁고 들떠 보인다. 반면 두 번째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깔과 대비되는 차분한 흰색 옷을 입고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인물은 웃는 듯, 우는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대조적인 두 그림은 놀랍게도 한 명의 화가의 작품들이다. 프랑스 로코코의 화가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 1684-1721)이다.



첫 번째 그림은 우아한 연회 (페트 갈랑트 | Fête Galante)라고 불리는 장르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자유롭고 쾌락을 추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귀족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두 번째 그림은 삐에로이다. 우리가 아는 많은 캐릭터들, 예를 들어 삐에로, 할리퀸, 풀치넬라, 스카라무슈는 당시 유럽을 순회하며 연극을 하던 연극단, 코메디아 델아르떼(Commedia dell’arte)로부터 나왔다. 와토는 이 인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와토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두커니 서있는 와토의 삐에로 그림은 왜 이리 슬퍼 보일까?



많은 학자들은 의문이었다. 와토가 이름을 알려진 계기는 페트 갈랑트의 그림들이었지만, 밝고 화사한 그림과 달리, 와토는 우울하고 자기 비하적인 인물이라고 주변 인물들에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와토의 코메디아 델아르떼의 캐릭터, 특히 삐에로는 와토의 초상화가 아닐까라는 평을 받으며, 자신의 우울감을 불행한 삐에로에게 투영했다고도 한다. 약간 구부정한 등, 밝지 않은 눈, 웃는듯하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듯한 미소.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림이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은 와토의 그림이 걸린 루브르 박물관의 라카즈 방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베를렌은 22개의 시를 써, 와토의 그림장르와 같은 이름인, 페트 갈랑트 (Fêtes galantes, 1869)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냈다. 그중 달빛(Clair de Lune)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조용하면서도 내면의 깊은 아래로 닿는 듯하다.


달빛

너의 영혼은 선택된 풍경이다
매혹적인 가면단과 베르가마스크 광대들이 가는 곳
류트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그들의 기괴한 변장 아래 거의 슬프다.

그들은 이루게 된 사랑과 기회의 삶을
단조로 노래하지만,
행복을 믿지 않는 듯 보이며
그들의 노래는 달빛과 어우러진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조용한 달빛 아래에서
새들은 나무들 속에서 꿈을 꾸며,
대리석상들 사이에 우아하게 높이 솟은
분수들은 황홀함으로 흐느껴 운다.


             
시인 폴 베를렌
번역 박가영


시는 매 연마다 대비되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1연에서는, 지금의 기타와 비슷한 류트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겉으로는 흥에 겨운 듯하지만, 그들의 가면 아래에는 슬픔이 숨겨져 있다. 희망찬 삶을 노래하면서도 장조가 아닌 단조로 부르고, 심지어 밝은 내용을 노래하지만 행복을 믿지 않는다는 2연의 구절도 있다. 3연에서는 이 모든 동작들이 감각적인 형용사들, 슬프고도 아름다운 (triste et beau), 황홀함으로 흐느낀다 (Sangloter d’extase)로 묘사된다.



문학에 대한 많은 책을 남긴, 마르셀 샤텔은 말했다. “ 확실히 베를렌의 ‘달빛’은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이자 하나의 장관이지만, 그것은 또한 시인이 꿰뚫어 본 영혼이기도 하다. ‘대리석상들 사이로 우아하게 높이 솟은 분수들’이 ‘황홀감에 흐느껴 우는’것은 이 기이하고 경박하면서도 우울한, 겉으로는 피상적이지만 괴로워하는 이 영혼의 본질적인 측면 중 하나이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베를렌의 시 달빛(clair de lune)을 배경으로 쓰인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드뷔시 피아노 솔로곡인 베르그마스크 조곡의 세 번째 곡이 있다.


드뷔시 - 달빛  조성진_Crediatv



이외에도 드뷔시는 이 시를 가지고 성악곡 2곡을 썼고, 귀스타브 샤르팡티에, 요제프 슐츠, 알퐁스 디펜브로크, 그리고 가브리엘 포레가 이 시를 가지고 성악곡을 썼다.





많은 성악곡들은 피아노의 음악을 기반으로 함께 멜로디가 진행이 된다. 하지만, 이 곡은 아니다. 피아노의 멜로디와 성악가의 멜로디가 따로 흐른다. 마치 밖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과 그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다른 듯, 두 개의 생각이 같은 시간 속 흐르는 듯하다. 내림 나 단조(B flat minor)에서 피아노의 오른손의 슬픈 멜로디가 나오고, 왼손은 마치 류트를 뜯는듯한 화음을 펼쳐 진행된다. 8마디 동안 피아노의 긴 선율이 나오고, 다시 같은 멜로디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선율의 중간에, 성악선율이 갑자기 시작된다. 마치 두 개의 마음이 오버랩되듯, 피아노와 성악은 각각의 시간에서 따로 진행이 된다. 마치 다성음악(polyphony)처럼 두 개의 멜로디가 한 곡에서 진행이 된다. 포레의 달빛이다.



가브리엘 포레- 달빛      소프라노 박혜상,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Crediatv







가끔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내면의 감정 사이에 괴리가 있다. 너무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뭐, 가면 뒤에 숨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회생활을 위한 가면이 있고,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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