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 휴고 볼프 - Auch Kleine Dinge
한동안 글이 참 안 쓰였다. 곡과 글 주제를 정한 뒤, 글을 쓰는 노력을 몇 번이나 했는지. 책상 앞에 다시 앉고 앉아도 참 써지지 않았다. 써지지 않는 글은 스트레스를 받게 했고, 결국 학기 중이어서 바빠서 그런가 보다 하고 미루었다.
학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여유롭게 일주일을 보냈다. 아침 운동 후, 좋아하는 아이스 라테를 들고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집으로 걸어갔다. 나무들로 가리어진 그늘에 눈이 감기고 걸음이 느리어졌다. 순간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2년 전부터 친구들끼리 하루에 감사한 일들을 세 개씩 적어서 올리기로 했다. 자기 전, 하루를 되짚어보며 감사한 일들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들었고, 버티며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뿐 아니었다. 다들 생각보다 감사한 일을 생각해 내기 어려워했다. 우리는 정말 작은 일부터 감사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탄 일, 맛있는 음식을 먹은 일,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렸는데 화면이 깨지지 않은 일, 좋은 날씨를 만끽한 일 등 정말 소소한 일부터 적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버티며 산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했던 일상들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보이지. 감사할 줄 아는 건강한 습관은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 점차 바래졌다. 감사 일기를 쓰기도 전에 씻고 침대에 바로 누워 유튜브를 보다 잠들어버렸고, 눈이 뻑뻑한 채로 아침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지 않으니, 글이 안 써지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삶에 끌려다니고 있는데, 어찌 진심으로 감사함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도 뭐 어쩌랴. 좋은 습관을 잃었다면, 다시 찾으면 되지! 지금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하루를 되짚어보며 작은 감사한 일을 찾아보면 되지. 바쁘고, 마음이 힘들 때는 내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붙잡기가 힘들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 때가 다가오는 것을 대비해, 마음이 여유로울 때 마음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 일기는 내 삶에 대한 태도를 건강하게 잡을 수 있는 좋은 습관이니, 다시 노력해 봐야겠다!
Auch Kleine Dinge (아주 작은 것들도)
작은 것들조차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어요.
작은 것도 소중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아요, 우리가 진주로 장식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진주는 아주 작지만, 비싸게 팔려요.
올리브 열매가 얼마나 작은지 생각해 보아요.
하지만 우리는 올리브의 맛 때문에, 올리브를 찾게 되지요.
장미가 얼마나 작은지 생각해 보아요.
이미 아시다시피, 장미의 향기는 참 사랑스러워요.
시인 폴 하이제
번역 박가영
오스트리아 작곡가, 휴고 볼프 (Hugo Wolf 1860-1903)는 카멜레온 같은 작곡가이다. 후기 낭만파 시대에 독일 예술가곡(Lied)을 더 확장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깔의 곡을 작곡했는데, 심오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곡부터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곡까지 작곡했다. 오늘 소개하는 곡은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이다.
이탈리아 시인 폴 하이제의 시들을 골라 작곡한 이탈리안 연가곡집(Italienisches Liederbuch)의 첫 시작 곡이다. 이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이탈리아의 선명한 햇빛과 고소한 올리브와 향기로운 장미 냄새를 맡는 듯 여러 감각들이 느껴진다. 밝은 라장조의 화음을 피아노가 펼쳐지며, 스타카토로 조심스럽게 상승하면서 성악가를 초대하듯이 곡은 시작한다.
https://youtu.be/ywzR7qKx6P4?si=V4FaesikW49Bwbz-
소프라노 다이아나 담라우 그리고 오랜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의 음악은 정말 반짝반짝 빛난다. 피아노의 전주가 연주되고 있을 때,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담라우와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은 이미 행복함과 감사함이 넘치는 듯하다.
이탈리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고 맛있는 올리브처럼, 내 일상의 올리브는 무엇일까.
따뜻한 햇살, 선선한 바람, 아이스 라테, 투덕거려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 수 있는 가족들, 나의 웃음을 책임져주는 좋은 친구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나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님들이 아닐까?
아 정말 감사하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