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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Feb 03. 2024

나는 우울할 때 반복적인 일을 하며 멍을 때려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막스 리히터 '잠'

    가끔 멍 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 삶이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현실을 피해버리고 싶다. 멍한 기분이 주는 그 고요함이 좋다. 나는 성격이 엄청 급하다. 급한 성격은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되려 나를 옭아맬 때가 많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들을 마냥 기다려야 할 때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나의 불안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다. 


    삶의 빠른 속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면 나는 아주 소소한 반복적인 일을 한다. 운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 다닌다. 하얀 종이에 여러 네모를 아무 생각 없이 마구 그린다. 조용히 설거지하는 것도 좋아한다. 


    별 의미 없는 반복적인 일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든다. 뭐 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계속되면서 지루함의 단계로 넘어간다. 지겨운데 그만할지 라는 생각을 이겨내고, 계속 지루한 상태를 유지하면 곧 의식을 넘어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다가온다. 바로 그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순간 내 머리는 텅 비어버린다. 적막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는 반복으로 나를 비워줄 수 있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좋아한다.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등장한 예술 사조이다.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모든 요소를 걷어내고 근본에 다가가고자 한다. 주관적인 표현을 중요시하는 추상파의 반발 작용으로 등장하였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을 최소화한다. 최소한의 음악 요소를 반복해, 단순함을 추구한다. 이에 따라 모든 작곡 과정이 투명하다. 그 이후 등장한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의 엄격함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서 조금 더 개인적인 표현을 입히려고 한다. 




    포스트-미니멀리즘 곡 중에, 바쁜 삶을 사는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가 있다. 무려 8시간 반이나 연주가 된다. 곡의 제목은 '잠(Sleep)'이다. 작곡가는 이 곡을 “분주한 세상을 위한 개인적인 자장가이며, 느린 속도의 존재를 위한 선언서”라고 표현했다. 아주 간단한 화성의 진행과 아주 느린 속도로 곡이 이루어져 있다. 3도의  음정으로 반복되는 4분 음표는 마치 심장박동수처럼 일정한 박(pulse)으로 쿵쿵 지속해서 반복된다. 최소한 악기들의 사용으로 아주 얕고 잔잔한 물결 같은 텍스쳐를 보여주는 이 곡은 막스 리히터(Max Richter 1966년-)의 대표적인 곡이다. 그는 독일 태생 영국 작곡가이다.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음악가로 현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https://youtu.be/AwpWZVG5SsQ?si=_Pbre7c0BqFNp0pl

 Max Richter - Dream 3 (in the midst of my life)




    이 곡은 작곡이 된 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이 되었으며, 곡이 연주가 되며, 사람들이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되었다. 2018년 텍사스, SXSW 뮤직 페스티벌(South by southwestern music festival)에서는 150여 개의 침대와 함께 8시간 반 동안 그의 곡이 연주가 되었다. 리히터는 잠이라는 활동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과 함께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Max Richter and the ACME performing Sleep at SXSW, Austin, 2018. Photo: Mike Terry






    우리 삶에 비어있는 시간이 존재하기는 할까? 갓생이라 불리며 생산적인 시간으로 가득 채워야만 하루를 잘 보냈다고 인정해 주는 세상이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다. 



    작년에 돌아가신 미니멀리스트 화가 박서보 선생님(1931-2023)은 스스로를 계속 비어내기 위해 작품활동에 몰두하신다고 하셨다. 반복적인 패턴을 가득 채운 선생님을 작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선생님은 ‘반복’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비워낼 수 있다고 하셨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싶다면, 이 음악과 함께 눈을 감고 일정하게 반복되는 박(pulse)을 느끼며 음악과 함께 멍을 때려보면 어떨까.



참고자료_

https://www.maxrichtermusic.com/albums/sleep/

https://www.npr.org/2018/03/17/589337022/south-x-lullaby-max-richter

https://www.aesence.com/park-seo-bo/

https://www.whitefungus.com/max-richter-sleep-perchance-h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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