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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Jan 20. 2024

나는 우울할 때 고양이와 함께해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사무엘 바버 - 학자와 고양이

    남자 친구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펌킨이라는 이름을 가진 통통한 고양이다. 고양이가 너무 좋아 내가 먼저 마구잡이로 다가가려고 하면 놀라서 사라졌다.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숨어있거나, 나를 무시하며 돌아다녔다. 처음 만난 사람의 지나친 관심이 싫었나 보다. 남자 친구는 먼저 다가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럼, 펌킨이 먼저 다가올 거라고 했다.


     얕은 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눈을 뜨니 펌킨이 빤히 바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이름을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침대로 사뿐히 올라왔다. 내 허벅지를 귀여운 발로 짚고 올라오는데 생각보다 무거워 억-소리가 났다. 꾹꾹 대여섯 발짝을 올라와 내 가슴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아, 이게 바로 식빵 자세라는 건가. 속으로는 신나고 사랑스러워서 소리를 지르며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참았다. 두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살 만져주었다. 펌킨이 눈을 감고 좋아했다. 골골송이라고도 불리는, 그르렁그르렁 소리가 내 심장까지 울렸다. 어찌 이리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있을까.



    





     고양이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오지 않았을까? 8-9세기 저 먼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은 고양이에 대한 귀여운 시를 썼다. 이 시는 가장 유명한 아이리시 시로 알려진 "펭궈 반 (Pangur Bán)"이다. 그 당시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은 예배, 신학, 라틴어, 천문학 공부를 하며 반복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지겨운 수업 시간에 책을 끄적끄적 낙서했다. 이렇게 끼적거리며 하는 낙서를 두들 (Doodle)이라고 한다. 펭궈 반 시는 책의 한 부분에 낙서를 해놓듯이 적혀있다. 수도승들이 매일 예배를 드리고 어려운 신학 공부로 지루함이나 나태함이 밀려들 때 고양이에 대해 생각했나 보다. 고양이에 대한 낙서를 통해 작은 행복을 찾지 않았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사냥하는 고양이와 멍한 눈빛으로 공부하는 수도승의 대조가 보이는 이 시는, 일상의 권태로움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 없이 함께 행복 하자라고  말한다. 고양이의 이름은 펭궈. 펭궈에 대한 뜻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지만, 가득 찬이라고 추측된다. 아마 행복함으로 가득 찬 하얀 고양이이지 않았을까? 하얀 고양이 펭궈는 두리번거리며며 쥐를 잡으며 신나 한다. 반면, 학자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책을 읽으며, 어려운 문제를 잡고 씨름한다. 각자 해야 할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일상에서 함께하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학자와 고양이

펭궈, 하얀 고양이 펭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우리 둘만 함께라면, 학자와 고양이.
우리는 각자의 할 일이 매일 있지;
너는 사냥을 하고, 나는, 공부를 해야지.
너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벽을 쳐다보고;
내 흐리멍덩한 눈은 책을 쳐다봐.
너는 너의 발톱으로 쥐를 잡으면 다시 신이 나지;
나는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신이 나지.
각자의 할 일을 즐기며
서로 방해하지 말자;
권태로움 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 없이
우리는 함께 하자.
펭궈, 하얀 고양이 펭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우리 둘만 함께라면, 학자와 고양이.
                    번역 박가영



                                                        

                                                                                


    이 귀여운 시를 가지고 미국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 (Samuel Barber 1910-1981)는 성악곡을 작곡했다. 바버는 미국 작곡가로, 서정적인 멜로디와 낭만주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20세기 작곡가이다. 가장 잘 알려진 곡은 정말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 (Adagio for Strings)이다. 하지만, 20세기 실험적인 스타일을 점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12음 기법, 반음계와 불협화음의 사용 등 점점 다양한 음악적 색깔 보여준다.


  1952년 아일랜드를 방문 후, 10개의 곡을 써서 은둔자의 노래들 (Hermit Songs, Op.29)을 출판했는데 그중 한 곡이 학자와 고양이이다. 원고에 대한 여러 버전의 시가 있는데, 바버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유명 작가 위스턴 휴 오든(W. H. Auden)W. H. Auden)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영어 제목은 The Monk and his cat이지만, 수도승(Monk) 보다 학자(Scholar)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무엘 바버 Samuel Barber (1910-1981)

 https://www.samuelbarber.fr/english.html#prettyPhoto






    인간과 고양이는 참 다르다. 우리의 하루는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루틴이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반복되는 하루의 총집합이다. 가끔은 반복된 일상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반면, 고양이는 엉뚱하고 생뚱맞은 행동들을 많이 한다. 예상이 전혀 가지 않는다. 이렇게 특이한 동물이 또 있을까? 인간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이런 천방지축 고양이의 행동들을 음악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꾹꾹이를 하는 귀여운 발, 로켓처럼 발사되는 날렵한 점프, 목표물을 찾는 집중한 눈빛, 목표물을 낚아채려는 날카로운 발톱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바버는 다양한 장치로 천방지축 고양이를 음악으로 그려낸다. 왼손의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잔잔한 음형이 곡을 지배한다. 마치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계속 나타나지만, 고양이가 등장할 때마다 이 음형, 박자의 묶음, 그리고 부드러운 터치는 깨진다.


    곡은 여유로운 템포로 시작하지만, 고양이가 피아노 위를 걸어 다니며 장난을 치는 듯한 이상한 화음이 불쑥 등장한다. 불협화음이다. 이 불협화음은 바로 듣기 좋은 협화음으로 해결이 된다.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의 패턴은, 마치 하얀 고양이 펭궈가 앙증맞은 발로 피아노 위를 밟았다가 발을 띄우는 모양을 보여준다.


     8/9나 8/6의 세 개의 8분음표가 한 묶음으로 잔잔한 왼손의 음형을 만든다. 123, 223의 3개씩 묶인 박(pulse)의 그룹이 갑자기 방해받는다. 12, 22, 32로 2개씩 묶이는 패턴이 등장한다. 박의 묶음이 달라지며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내는 헤미올라 기법이다. 갑자기 변형된 묶음은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양이를 보여준다.


    왼손의 올라갔다 내려가는 잔잔한 음형은 항상 레가토, 부드럽게 연결되듯이 쳐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등장하면 다양한 터치들이 등장한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쥐를 잡을 때, 갑자기 짧고 날카로운 화음과 큰 음량이 등장한다. 스타카토로 짧게 음을 뜯는 소리는 마치 고양이가 쥐를 낚아채는 모습 같다. 또, 갑자기 등장하는 쉼표들은 마치 고양이가 목표물에 집중해서 숨을 참고 있는 긴장된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https://youtu.be/Q0VFE_tvJwE?si=hg4ZxAPW3hJAblgr

사무엘 바버 - 학자와 고양이 Samuel Barber - The Monk and his Cat   소프라노 유주연, 피아니스트 박가영

    





   

    

     남자 친구의 고양이 펌킨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 나는 고양이가 없다. 내 삶을 더 잘 책임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고양이를 꼭 키우고 싶다. 장난기 많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내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으면 나를 방해하려고 고양이는 피아노 위로 와 걸어 다니며 이상한 불협화음을 만들겠지. 내가 우울할 때 나와는 다르게 빛나는 눈을 가진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나른하게 같이 낮잠도 자고, 가끔은 앙칼지게 귀여운 발을 내디디 점프도 하겠지. 고양이는 나의 반복되는 일상에 돌을 던지는 귀여운 방해자가 되지 않을까. 고양이와 함께라면, 나의 지루한 일상에 나른한 웃음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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