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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Jan 27. 2024

나는 우울할 때 방황을 해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 슈베르트 - 방랑자


    나는 걱정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mbti 테스트에서 INFP가 나왔다. 내가 INFP라는 사실이 싫어 계속 검사를 했다. 결국, 네 번의 검사동안 변함없이 다 인프피의 결과가 나온 이후 받아들이기로 했다. INFP의 알려진 특징으로는 잡생각이 많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쉽게 우울해진다. 내가 딱 그렇다.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 속에서도 늘 불안감을 느낀다. 그중 가장 큰 마음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느껴지면 나는 우울해진다. 막상 일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삶의 목표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면 길을 잃은 기분이다. 속에 깊게 묻어두었던 의심들이 고개를 든다. 내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노력해서 뭐 하지? 내 노력을 한 시간들이 의미가 있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를 쓰며 사는 거지? 내 삶은 어디로 향하는 거지? 목적지가 있나? 끝이 있기는 할까? 방황하고 방황한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의 가장 대표적인 곡은 밝고 활기찬 '피아노 5중주 송어 D.667'이다. 친구들의 따뜻한 지원을 받고, 놀랍도록 빠른 작곡 속도로, 짧은 인생에서도 다작을 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그 어떤 작곡가보다, 방황했던 작곡가이다. 그의 방황에 추측되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종교적 차이, 직업의 선택, 결혼 등의 아버지와의 여러 갈등이 있었고, 정서적으로 불안했다고 추측된다.

 


    슈베르트의 방황은 가곡을 위한 시 선택에서 잘 보인다. 슈베르트는 600여 개의 독일 가곡을 작곡하며 장르를 확립했다. 그중 반복되는 주제가 있다. '방랑자(wanderer)'이다. 독일어 wandern는 '걷다, 산책하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낭만시기 여러 예술가들에게 육체적으로 걷는다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내면에서 끝없이 탐구를 한다는 의미로 확장이 되었다.



    슈베르트의 방랑에 관한 많은 곡 중, 나의 마음에 가장 크게 와닿는 곡은 '방랑자 Der Wanderer D. 489'이다. 시인 조지 필립 슈미트 폰 뤼벡 (Georg Philipp Schmidt von Lübeck)의 시 '낯선 사람의 저녁 노래(Des Fremdlings Abendlied)'에서 일부분을 가져오고, 슈베르트가 직접 변형해 작곡했다.



    예술가곡 '방랑자 Der Wanderer D. 489'는 슈베르트의 생애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슈베르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여러 드라마에도 등장한 가곡 '마왕 Erlkönig D.328'만이 이 곡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였다.



    처음부터 방랑자라는 제목은 아니었다. 이 시는 세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처음에 잘못 알려진 시인의 이름과 함께 제목이 불행한 사람(der unglückliche)이었고, 후에 뤼벡이 제목을 바꾸며 낯선 사람(der fremdling)이라고 알려졌다. 슈베르트는 작곡을 한 후, 방랑자(der wanderer)라고 이름을 붙였다. 불행한 사람, 낯선 사람 그리고 방랑자. 이 세 가지 이름은 화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들 아닐까. 행복할 수 없고, 어디에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며, 계속 방황하는 방랑자.





    방랑자


나는 산으로부터 왔다.
계곡은 안개가 자욱하고, 바다는 울부짖는다.
나는 조용히 걸었다, 행복하지 않게
그리고 나의 한숨은 항상 묻는다: 어디인가?

여기에 있는 태양은, 나에게 너무 차가워 보인다.
꽃은 시들고, 삶은 오래되고,
그들의 말은 공허한 소리일 뿐,
나는 어디서든 낯선 사람이다.

나의 사랑하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찾고, 의심했지만, 결코 알지 못했다!
나라, 희망이 가득 찬,
나라, 내 장미꽃이 피어나는 나라.

내 친구들이 어디로 걸어가는지,
내 죽음이 다시 살아나는 곳,
내 언어로 이야기하는 나라,
나라야, 너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조용히 걸었다, 행복하지 않게,
그리고 나의 한숨은 항상 묻는다: 어디인가?
희미한 속삭임으로 대답이 들린다.
“그곳, 당신이 있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다!”



           -조지 필립 슈미트 폰 뤼벡
                                번역 박가영


https://youtu.be/dlEwuZDK5Qs?si=p-UNGtJSJDpXl1xu

슈베르트-방랑자 D.489 조성진 | 괴르네



    시 속에서 화자는 계속 걸어 다니며 질문을 던진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꿈꾸는 곳은 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방황한다. 이 시의 방황하는 내용을 담듯, 슈베르트는 자유로운 구성으로 곡을 만들었다.



    물속에서 퍼지는 잉크처럼 우울감이 점점 퍼져나가며 곡이 시작된다. 오른손은 1개의 음에서 2개, 3개로 음들이 쌓이며 여러 화음진행을 보여준다. 도#을 중심으로 올림 다 단조(c# minor)로 시작이 되나 싶지만, 올림 다 장조의 화음으로 곡이 시작된다.  성악 부분은 흐르는 멜로디 보다, 마치 말하듯이 진행된다. 곧  마장조 (E Major)로 넘어가서 분위기가 바뀌지만, 시의 구절은 행복하지 않게 걷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다.



    다시 올림 다 단조(c# minor)로 넘어간다. 2절의 선율은 6년 후 피아노 솔로곡인 방랑자 판타지의 주요 멜로디로 사용이 되었다. 마치 그 멜로디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 후 이 선율을 또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2절에서는 차갑고 오래된 풍경을 묘사하며, 결국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1절 마지막 문장과 마찬가지로, 이 마지막 슬픈 문장은 마장조(E Major)에서 그려진다.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며 새로운 리듬의 형태가 등장한다. 또 빨라지며 계속해서 찾는다. 밝은 마장조, 경쾌한 리듬, 빠른 템포로 마치 밝은 희망을 갖고, 화자가 찾는 그 세상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이미 패배감이 섞여잇다. 단순히 밝음을 밝음으로 표현하지 않는 슈베르트의 음악적 장치이다.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음악정 특징은 우리가 예상하는 장조와 단조의 개념을 뒤트는 것이다. 보통 처음에 음악을 접할 때 장조는 밝고 단조는 어둡다고 배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는 밝은 장조가 슬픔을 내재하고 있다. 슈베르트가 1822년 쓴 작은 소설 나의 꿈 (My Dream)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에 대해 노래를 부르려고 했을 때, 그것은 고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통에 대해 노래를 불렀을 때, 그것은 사랑으로 변했습니다."




마치 이 구절처럼, 그에게 장조와 단조는 단순히 밝음의 유무가 아니다. 사랑과 고통이 떼어놓을 수 없듯, 행복과 불행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슈베르트의 전조와 화음진행을 가지고,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마음과 마음'사이에서 움직이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처음에 등장했던 셋잇단음표 음형이 등장하며 다시 읊조린다. '나는 지금 조용히 걷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아.' 세 개의 성부가 같은 음으로 진행이 되는 유니즌이 등장한다. 성악멜로디까지 더해, 이 유니즌은 끝없이 물어보았던 질문의 무게를 더한다. '어디인가. 도대체 어디인가.' 계속된 질문에, 드디어 희미한 속삼임으로 대답이 들려온다.  ‘그곳, 네가 있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다.’ 어디엔가 나의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방황했지만, 들려온 대답이라고 내가 있지 않은 곳에 행복이 있다니. 결국 나는 행복이 있는 곳에 속할 수 없나라는 허망한 깨달음으로 시는 끝난다. 마지막 구절은 들을 때마다 심장에 돌이 쿵 떨어지는 듯하다. 역시 방랑자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만을 꿈꾸는 존재인 것일까.




    하지만 이 마지막 구절에 슈베르트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일까. 슈베르트는 작곡을 본격적으로 한 18살부터, 삶의 끝인 31살의 나이까지, 계속해서 여러 작가의 방황에 대한 시를 가지고 곡을 썼다. 괴테, 뤼벡, 슐레겔, 뮐러, 자이들의 시를 가지고 작곡을 했다. 방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 어디엔가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고.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면, 나는 방황을 한다. 하지만 방황을 해도 괜찮다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방황이란, 불안 속에서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의 작은 발버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주님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넘어가지 않을 거란 믿음을 갖고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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