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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Jul 20. 2024

나는 우울할 때 재미진 것들을 찾아 1

클래식음악 힐링에세이_하이든 “농담” 현악사중주 4악장


우리 집에는 귀여운 늦둥이가 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태어난 내 여동생이다. 늘 늦둥이가 있다고 하면서 나는 덧붙이는 말이 있다. Happy accident였다고! 계획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불쑥 찾아온 기쁨이었다. 하는 모든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내 동생은 재미있는 사람을 엄청 좋아한다. 작년,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선생님이 해주시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며, 손에 잡히는 작은 노트를 가져가, 웃긴 에피소드를 휘갈겨 쓰며 받아 적어왔다. 수학 선생님은 그 소문을 듣고 “누가 내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며ㅎㅎ?”라고 수업시간에 언급하기도 해서, 고개를 숙이며 숨었다고 한다.



어느덧 내년에 수험생이 되는 동생은 잠자는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매일 늦게 자는 동생과 달리 내가 먼저 잠이 들지만, 같이 자게 되는 날은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언니 재미있는 이야기 해줘!”



늘 나에게 “언니는 재밌는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사랑해”라고 말하는 이 똥강아지가, 저번주에는 삼일 내내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괴롭혔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해? 재밌는 이야기 콜렉터세요?”라고 물어보니, 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재밌는 이야기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별말이 아니었지만, 그다음 날도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은 참 좋아했지만, 그걸 기억하려고 노력하거나, 마음에 남겨두지 않고 흘려보냈던 것 같다. 왜지?

즐거우면 너무 가볍다고 잘못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진지하지 않으면 잘못 살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일상의 즐거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었다. 진지함과 즐거움은 정반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지함이 되려, 나의 걱정과 불안을 이상하게 키우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일상에서 주변사람들과 작은 유머, 재치, 장난이 얼마나 웃음을 가져다주는지를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아 참 감사하다.






피아노로 예술중학교를 준비하기로 결정한 후, 엄마는 클래식 CD를 이것저것 사주셨다. 집에서 엄마와 점심을 먹을 때마다 거실 텔레비전에 연결된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하루는 음악을 틀었는데, 음악이 잘 안 들렸다. 뭐지 고장 났나. 아무리 볼륨을 올려도 계속 소리가 안나길래 스피커에 귀를 대었다. 작게 다 장조(C Major)의 화음들이 펼쳐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들리긴 들리는데 왜 잘 안 들리지 하는 순간 쾅!! 화음이 쿵 들렸다.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 뒤로 청력이 안 좋아져서 사오정이 된 건가..) 나를 너무나도 놀라게 한 이 곡은, 하이든의 놀람교향곡 2악장이었다.



Haydn Symphony no.94 “Surprise” 2nd mov - Berliner Philharmoniker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을 설명할 때 늘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 “Great sense of humor!” 재치 있고 장난기가 많은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준 고전시대 작곡가이다. 그 이전시대인, 바로크시대와 달리, 하이든은 규칙적인 마디수를 사용해, 조직적인 질서(Regulated organized)를 가져왔다. 쉽게 말하면, 작은 음악 덩어리들이 짝수로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이든의 농담 현악사중주- 아래의 악보를 보면 2마디, 2마디, 4마디의 작은 덩어리가 8마디의 한 프레이즈(phrase)로 구성된다. 이런 식의 구조가 반복되어 질서가 만들어지면, 곡은 아주 투명하고, 균형 잡힌 음악으로 다가온다.




Haydn String Quartet Op.33 No.2 4th mov mm 1-8





이 프레이즈는 곡에서 계속 반복되며 곡을 끌고 간다. 또 하이든은 론도형식, ABACA의 구조를 선택해, 이 통통 튀는 이 8마디의 선율은 A형식에서 계속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 멜로디가 머릿속에 박히며, 반복되는 질서에 익숙해져 간다.



하지만 거꾸로, 질서가 깨진다면 어떻게 될까? 곡을 처음 듣는 관객은 어리둥절하게 될 것이다. 재치쟁이 하이든은 관객의 기대를 뒤틀어 버리며 재미를 선사한다. 갑자기 빠른 템포 presto에서 느린 템포(Adagio)가 등장한다. 1차 당황 다시 원래의 템포로 돌아오지만, 2마디 후 정적, 다시 2마디 후 정적, 4마디의 덩어리도 2마디씩 나뉘어 등장한다. 아 끝났나 할 때쯤, 다시 맨 처음 덩어리가 등장한 뒤 연주자들은 벌떡 일어난다.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농담의 마지막 악장이다. 17분이 넘게 연주가 되는 마지막 악장이 이렇게 끝나면 얼마나 관객들은 당황스러울까? 말 그대로 ‘농담’같이 곡이 끝난다.




Haydn Op.33 No.2 Joke 4th mov - Attacca Quartet

(2분 18초부터 마지막 A section이 등장하니, 그 부분부터 들어주세요!)






곡을 끌고 가는 프레이즈를 마지막에 이용해, 중간중간 긴 쉼(GP: General Pause)를 이용해 끝인지 시작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심지어 곡이 끝날 때, 종지가 있는 프레이즈의 끝부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맨 처음 모티브를 사용해 종지(Cadence)도 없다! 이러한 재치 덕분일까. 이 곡은 작곡된 후 금방 영국에서 “The Joke”라는 이름은 얻어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음악에서도 느껴지는 하이든의 유머는, 하이든을 일상에서도 재치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지휘자 하이든은 파파하이든(Papa Haydn)이라고 불렸다. 사실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조직이기 때문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멤버사이에 수직적인 질서와 벽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격 좋은 하이든은 멤버들과 장난도 치고, 오히려 멤버들도 하이든에게 거리낌 없이 장난을 쳤다고 한다. 후에 베토벤의 친구가 되는 영국인 조지 스마트 (George Smart)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하이든에게 장난을 쳤다. 스마트는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하루는 드러머가 오지 않자, 자신이 드럼을 치겠다고 나섰다. 드럼에 경험이 없었던 스마트는 계속 실수를 했지만, 하이든은 리허설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스마트에게 예의 바르게 다가와서, 핀잔대신, 재치 있게 말했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연주하지 않아-”라고 하며 올바른 방법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나라마다 연주하는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하이든의 재치에 스마트는 맞받아쳤다고 한다.  “아 그러면 이 독일방법으로 영국에서도 연주할게! “



다음 주에도 이어서 하이든의 재치로, 문제를 해결한 에피소드와 곡을 가져오겠습니다! 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도 늘 작은 웃음들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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