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웜띵 Oct 30. 2022

ㅅ 과 ㅇ 사이

엄마와 딸 사이


  우리 엄마의 눈썹은 씨 큰 과일 위에서 ‘ㅅ’ 자가 되곤 한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 옆에 서서 아보카도와 망고를 손질했다. 기다란 쪽으로 칼집을 넣어 아보카도를 한 바퀴 돌린 뒤 탁구공 만한 씨를 분리하고, 망고는 길쭉하게 삼 등분하여 씨에 붙은 과육까지 알뜰하게 떼어내 접시에 담아 두었다. 곧 엄마의 단골 멘트가 들려왔다. “넌 별걸 다 한다!” 별 거 아닌데 대단한 일을 한 듯 되는 엄마의 말. 내게는 동그래진 엄마의 입 모양처럼 꼭 ‘ㅇ’ 자를 닮은, 마음 한구석을 시큰하게 만드는, ‘별일’들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즈음 인터넷 쇼핑이 한창 활성화되던 때였다. 하루는, 한 포털사이트 오른편에 떠 있는 배너를 타고 들어가 둥근 카라의 핫핑크색 코트를 주문하려 했다. 엄마 카드로 결제해야 했기 때문에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 엄마를 모니터 앞으로 불렀다. 귀여운 걸로 잘 골랐다며 요즘은 이런 데서 사냐며 별일이라는 말과 함께 옷 사는 걸 허락해주셨다. 구매를 마치고 창을 닫으려는데, 엄마가 엄마 것도 찾아봐달라고 하셨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엄마 건 엄마가 찾아보면 안 되냐고 숙제해야 한다고 대꾸하자, 엄마는 알겠다며 마저 청소기를 미셨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내 방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내미셨다. 화면 속에는 알록달록한 요가복 여러 개가 있었다. 결제창 빈칸에 카드 번호를 입력하면서 엄마를 향해 꾸물거리는 나의 미간도 같이 눌러 넣으려 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와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내 앞엔 진짜 별일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잘 빨아 잘 털어 널어도 빳빳하게 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셔츠, 적힌 대로 해봐도 늘 2프로 부족한 맛의 에그 마요 샌드위치와 김밥. 심지어 그냥 밥에 물 넣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흰 죽조차 내가 한 건 허연 멀겋기만 했다. 엄마가 해준 건 본죽 저리 가라였는데, 참 이상했다.


빨래가 잘되지 않을 때, 밥이 잘 지어지지 않을 때 엄마에게 SOS를 쳤다. “아~ 그건 울샴푸로 빨아야지. 건조기 돌리지 말고 뉘어서 말려봐.” “아~ 그랬구나. 카레가 왜 국처럼 됐을까? 엄만 그냥 푹 끓이거든? 물 양을 좀 줄여봐.” 엄마는 나의 볼멘소리에도 차분하게 원인을 파악하시고 대책을 마련해주셨다. 물론 사회생활이나 육아가 내 맘과 같지 않은 날에도 어김없이 엄마는 내게 든든한 인생, 육아 선배님이 되어 주셨다. 집에서 살림하시다가도, 친구분들과 모임 중이셔도, 주무시다가도 엄마는 언제나 지체 없이 휴대폰 너머로 와주셨다. ‘ㅅ’ 자가 된 딸의 눈썹과 동그랗게 오므려 투덜대기 시작하는 딸의 ‘ㅇ’ 자 입술을 달래주러.


엄마는 종종 전화를 끊으면서 이런 말씀을 덧붙이곤 하셨다.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가 했던 고민들을 하고 있느냐고. 서른 넘은 딸이 보내는 ㅅ과 ㅇ 사이에서 엄마는 어쩌면, 어리기만 했던 딸에 대한 그리움과 장성한 딸에 대한 응원을 동시에 보내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잘 깎아둔 망고와 아보카도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부탁에 바쁘다는 말로, 귀찮아서 그렇다는 말로 얼버무렸던, 오래 묵혀온 엄마를 향한 무언가가 조금 뚜렷해지는 기분이었다.


딸의 말에 무조건 찬기부터 들고 보는 엄마와 달리 일단 퇴짜 놓을 준비부터 하고 엄마 이야기를 듣던 내 모습.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바보 같은 마음. 요즘 것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도 늙어간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은 오기 같은 것들. 엄마에겐 별일인 것들을 내가 간단히 해낼 때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무언가는 이런 것들이었을 테다.


나는 엄마가 보내는 ㅅ과 ㅇ 사이에서, 엄마에게 받고 있는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엄마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될 언젠가에 대한 버거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데 왜 혼자 못하시고 자꾸 시키냐는 딸의 짜증을 들으면서, 엄마는 자신이 더이상 젊은 엄마가 아님을 다시금 깨달아야 했던 날이 있으셨을 거다. 나 같이 차가운 딸을 만난 탓에 그런 순간이 앞당겨진 거면 어쩌나 싶다. 이런 죄책감을 두고 우리 엄마는 별것도 아닌 걸로 걱정한다며 내 어깨를 털어주실 테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쌓아온 죄책감을 더 무겁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한다. 엄마가 나에 대해 아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충분히 살갑게 표현해드리고 싶다.


‘역시 우리 엄마 김밥이야! 매일 먹고 싶은 맛!‘

‘우와, 엄마는 만돌린으로 연주도 할 줄 아셨네!’


아 그전에,

일단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사과부터.


“엄마,

먹기 좋게 잘라 껍질을 뒤집어 깐 망고를 보면서

내 자식이 좋아하는 공룡은 떠올릴 줄 알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꽃은 한 송이도 떠올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망고를 안킬로사우르스 말고, 무슨 꽃으로 바꿔 부를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