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름들에 대하여
당신을 부르는 이름은 몇 개인가?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과장님, 와이프, 엄마, 친구, 딸, 손녀, 언니… 이 이름들은 정말 다 ‘나’를 부르는 걸까. 이 중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과장으로서의 나는 Working Day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나름 쾌활하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다. 찡얼거리면서도 해야할 일은 하고, 시간을 갈아넣어서라도 자신의 업무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든 확보하려한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늘 다리를 달달 떨며 불안하기 핸드폰으로 시간을 체킹한다. 35분.. 40분.. 45분… 7시.. “(아.. 진짜 가야되는데..) 팀장님..!” “아! 벌써 시간이 이러네? 얼른 가봐요.” 내가 초벌했던 보고서는 밤이 지나면 다른 아이디어로 대체되어 있다
엄마라는 이름은 이제 내 이름만큼이나 나의 근원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따뜻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화가 많은 사람이다. 아이를 위해서는 다 하고 싶지만, 현실과의 괴리에 늘 고민한다. 프로 수발러와 아이를 낳은 퀸- 그 사이쯤 어디에서 아이를 위한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사랑을 받는다. “엄마 싫어!” 라는 말에 그 이름은 무너진다.
와이프, 가장 복잡한 이름이다. 여자친구에서 와이프가 되면서 권리보다는 의무가 더 많아졌다. 와이프인 나는 예전만큼 짜증을 내거나 울 수 없다. 그렇지만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고 한 사람에 대한 애증이 요동치는 이름이다.
다들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 갈팡질팡 살아가고 있고, 스스로는 정-말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 삶이라고 생각하며 답답해한다. 9년차 전략기획 부서에 있는 과장으로 사는 순간에는 엄마하면 진짜 잘하겠다 싶고, 잠에 들지 못하는 아이의 엉덩이를 30분째 토닥이고 있다보면 보고서 쓰는게 더 쉬울 것 같다. 바보 같은 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고, 그 어떤 것도 내 옷이 아닌 것 같아 답답함이 옥죄어온다.
일주일에 4일은 집이 엉망이다. 기계적으로 생각없이 집안일을 하지만 가끔 울컥해서 남편한테도 짜증을 부린다. 나는 내 삶을 못사는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아이 아빠면서 왜 나랑은 다른 삶을 살까 하며 몽니를 부릴 때도 있다. 날 도와주려고 집에 오는 친정엄마한테도 화를 내고, 가끔은 걱정되어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도 신경질적으로 “내가 알아서 할게” 한다. 점점 사이코패스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삶을 최선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일이 점점 바쁘질 때에는 나름대로 술을 줄이고 새벽 운동을 하며, 아이를 더 부드럽게 깨울 수 있는 나 자신을 준비했다. 주말에는 아이와 더 찐-하게 놀아주고 낮잠 대신 더 긴 잠을 푹 잘 수 있게 도왔다. 내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려고 했고, 내 기분 Management도 더 많이 신경썼다. 난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내 삶을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과의 불화가 잦아졌다. 나를 탓하는 그 모든 말이 너무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나는 극심한 자기 부정을 겪기 시작했다.
나와 가까운 모든 사람이 참다참다 말하는 정도면 내가 진짜 쓰레기 인건 아닐까. 사실 나 진짜 좋은 엄마도 뭐도 그 무엇도 아닌거 아니야?
생각들이 뭉게뭉게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들이 스모그처럼 뿌옇게 내 뇌 어딘가에 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내 판단을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섰는데, 그 얼굴이 내 얼굴이 맞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눈물이 왜 날까 생각하다보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근데 그렇게 울다가 나오면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또 살았다.
과장님, 엄마, 와이프, 딸, 손녀, 친구, 집사…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름 중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무언가를 버무리면 나인걸까. 아니면 모종의 내가 더 있는데 내가 그걸 발견도 못한채로 살아가고 있는건가. 근데 만약 내가 나의 모습을 싫어하면 어떡하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씹던 껌처럼, 떼어내려 할수록 더 기분 나쁘게 끈끈이를 남겨버리는 이 질문에 살기 위한 답을 내야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 질문에 질질 끌려다니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살 것인가.
시시프스의 형벌처럼 나는 희망기와 절망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지진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 끝없는 형벌을 누군가(?) 무엇인가(?)가 멈추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누가 하겠나. 나겠지. 나여야만 하겠지.
누가 지어준 그런 이름 말고, 내가 나를 부르는 근사한 이름 하나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