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아이의 기억 속 나는 어떤 사람일까?
들어가기 싫어 축 처진 아이의 어깨를 애써 눈 밖으로 두며, 나는 괜히 더 힘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잘 다녀와 �! 오늘도 재밌게 지내고!”
눈에 그 어깨가 남았지만, 머리를 가로 저어 지워내며 오피스로 올라와서 또 일을 시작했다. 점심이 지나고 기다리던 어린이집 알림장의 알림이 떴다.
‘오! 오늘은 무슨 재밌는 일을 했으려나 ㅎㅎ’ 하면서 빠르게 버튼을 누르고 선생님이 정성껏 기록해준 아이의 하루를 읽어 내려갔다. 누구랑 무엇을 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뭘 먹었고 어떤 표현을 했는지, 정말 하루가 가득 담긴 애정 어린 알림장이었다.
그 알림장 말미에 별 표와 함께 써있는 글을 보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 아이의 손톱, 발톱이 조금 길어서 놀이 시 불편해요. 집에서 다듬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뒷목으로 밀려들어와 어깨가 뻐근해졌다.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더라. 물론 전업주부였다고 해도 덤벙거리는 성격이 어디가겠냐만, 그래도 손톱/발톱에 관한 알림은 다른 알림보다도 늘 힘들고 슬펐다.
나의 아이는 아직 손톱이 길어서 놀이가 불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의사표현을 하기엔 어렸고, 엄마인 나는 그래서 아이의 손톱/발톱을 자주 들여다보았어야 하는데, 내 시간과 힘이 부족해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선생님이 친절하게 아이에게 손톱 때문에 불편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을 그 순간과 아이가 느꼈을 모종의 부끄러움이 너무 미안했다. (나의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것을 다른 아이보다 더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를 낳고 9개월만에 현장에 복귀한 나는 나의 비어버린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가 없는 그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친구로 채우고 있었다.
꼭 붙어있던 시간을 지나 서로가 없는 시간에서 우리는 다른 기억을 만들었다.
나는 내가 제일 복잡한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직장에서도 날 증명해야했고, 집도 어느정도는 깨끗하게 유지해야했고, 아이도 길러내야했으니 말이다. (물론 남편도 어마어마하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땐 정말 미안하게도 다 알아주지 못했지만-) 퇴근하고 아이를 씻기고, 억지로 눕히고 재운 다음에 일하는 날도 정말 많았다. 육퇴 후 쌓인 일을 해야하는 긴 밤을 생각하며, 쉬이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지르는 날이 일만큼이나 두껍게 쌓여갔다.
“엄마.. 나~” 자라고 눕혀둔 아이가 벌써 세번째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왔다. 머릿속에서 약간 어떤 끈이 끊어진 것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왜 이래! 안 잘거야? 엄마가 지금 자야 내일 어린이집 가면서도 짜증 안 낸다고 했어 안 했어! 너 왜 이렇게 밤엔 자기 싫다고 화내고, 아침엔 일어나기 싫다고 화내! 너는 왜 맨날 엄마한테 화만 내! 왜!!!” 놀란 아이는 울면서 내게 말했다. “화 내지마 엄마 엉엉엉. 나는 혼자 자는게 너무 무섭단 말이야… 그리고 잠도 안 오는데 깜깜해서 너무 무서워 엉엉”
아… 내가 진짜 뭐하는거지.
왜 일하는 걸까. 뭐 때문에. 애는 왜 낳았을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까.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안고서 흔들흔들 거리며 나는 수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했고, 음-음- 조용하고 차분한 자장가 소리와는 다르게 내 머릿속과 마음은 엉망진창이었다.
복직하고 삼년을 어찌저찌 버텨왔지만, 나는 늘 회사원으로서도 엄마로서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아이도 커야하니까 조금 더 일찍 철드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이게 맞나. 아이와 다투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다투고, 울고, 그러는 것이 맞을까. 나는 언제 이 아이에게 Full-time으로서 부모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근데 그건 지금이어야하는 건 아닐까..
아이는 잠에 들었지만 나는 잠들지 못하고 4시까지 뒤척였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또 일어나기 힘들어했고, 지칠대로 지친 나는 아이를 들쳐 메고 등원했는데, 아이가 들어가기전에 “엄마 어제 내가 울어서 미안해. 안 자서 미안해”라고 하면서 안아주고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눈이 벌게져서 오피스에 올라왔다.
처음 아이를 안은 날의 아이를 보듬으면 맡을 수 있는 냄새와 손에 감겨온 촉감이 생각났다. 내 사랑하는 아이. 나의 아이. 내가 정말 살아가는 이유.
나의 아이는 이 시간을 과연 어떻게 기억할까. 그 기억 속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가 기억하는 나는 늘 등을 돌린 모습일까. 혹은 늘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일까. 그게 내가 나의 삶의 이유를 대하는 태도인 것이 맞을까.
그래서 처음으로 이 첨예한 밸런스를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선택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발자국 더 아이에게로 가보는 것으로. 아이 옆에 같이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나무와 꽃을 만져보고, 흙을 던지며 놀아보려고. 아이의 눈에 내 등이 아니라 얼굴을 조금 더 담아낼 수 있도록. 이 방법이 맞을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해봐야 알겠지. 밸붕의 상황이 새로운 길을 찾을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