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 내가 나를 깨뜨린 이유

Ep 2. 하루 끝에 날 기다리고 있는 죄책감

by 밤 Warm

오늘은 사장님 보고가 있는 날이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네 번의 리뷰와 수정 작업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전하고 싶은 말을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단어와 배치, 그림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쉴새 없이 수정했다.

마지막 최종본을 프린트를 하여 팀장님 손에 쥐여드렸고, 이어달리기를 하듯 팀장님은 프린트물을 돌돌 말아 바톤처럼 잡고 회의실로 뛰었다.


한 시간 후, 보고는 잘 끝났다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었고, 또 다음 Milestone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이 글을 쓰려고 테이블에 앉자마자 어깨 위에 죄책감이 모래주머니처럼 쌓여 날 짓눌렀다.


죄책감을 좀 덜어내려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러 들어가 물을 맞는데, 갑자기 내가 잘못했던 혹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러웠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팝! 하고 떠오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거나, 아오씨! 하고 한탄을 내뱉는다. 속에선 또 시작이다.
“좀 더 잘할 걸, 좀 더 효율적으로 할 걸. 빠르게 할 걸.”
“아 근데 틀리지 말 걸. 좀 더 꼼꼼할 걸 그랬나.”
“오늘 너무 화를 냈나? 아니, 어떤 순간엔 또 너무 물러터졌지.”
미친 사람처럼 이래도 틀렸고 저래도 틀렸다며 온갖 일로 나를 책망한다.


이렇다보니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무서웠다.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것 같아 이불 밖에 나가기가 싫었고, 눈을 감고 자려면 오늘 한 실수와 내가 남에게 준 상처들이 더 선명해졌다.


내 스스로에게 유독 박한 나는 늘 나를 업신여겼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때로는 억울했겠다 싶을 정도다. 잘하면 ‘뽀록’이고, 못하면 ‘니가 그렇지’였다.

내가 키우는 식물에게도 그러지 않는데,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글러먹은 씨앗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물론 나에게 관대한 순간도 분명히 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완벽주의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자만함이 아닌, 그냥 내가 짊어지고 있는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죄책감이란 사슬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너무 무겁다. 어느 정도의 무게여야 모래주머니 마냥 날 강하게 하는데, 이렇게 무거운 사슬은 도무지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게 한다.


그래서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도 너무 어렵다. 지금도 글을 쓰려고 빈 페이지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이걸 또 완벽하게,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만큼 잘 써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더 그렇다.


그래도 쓴다. 그렇게 이 사슬을 벗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걸친 이 사슬을 결국 내가 얹은 것이니까, 벗겨내는 것도 내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글러먹은 이 씨앗을 이제 햇빛도 잘 드는 곳에 다시 심고, 물도 줘서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겠다.
하다보면 꽃이 되든, 덩굴이 되든, 혹은 그냥 잡초 하나로 남든,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모양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모양이든 그 모양을 찾게 되면 내가 날 조금은 더 쉽게 인정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어떤 모양인지도 난 잘 모르는 것 같다. 돌이켜보니 비난만 했지, 정말 그렇다. 그래서 이제 요리조리 돌려보며 찬찬히 살펴보려 한다.
혹시라도 (정말 우연히-)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앞으로의 몇 편이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로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오,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도 괜찮네.’ 라는 마음이 든다면 밤에 쓴 내 글은 그 의미를 먹고 자랄 것 같다.

자 그럼 나는 이제 이 ‘글러먹을 씨앗’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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