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잘하고 있는데 왜 그만두고 싶을까?
“정말 고생했어. 이번 프로젝트 일등공신이네! 너무 잘했어!”
“벌써? 애 돌보기도 바쁠텐데 이건 도대체 언제 했어? 쉬엄쉬엄해. 근데 대단하다 진짜.”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시는데, 빨리 영어 장표 좀 찍어줘. 영어는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잘하잖아”
9년동안 일하면서 들은 칭찬들이 꽤 있다. ‘빠르게 배우고, 힘든 상황에서도 에너제틱하고,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고, 누구와도 쉽게 대화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Communication Skill을 가졌다’ 고 한다. 그런데 왜 집에 돌아오는 길엔 죄책감으로 고개를 떨구고 터벅이는 순간들이 더 많았을까.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졌을 때의 기분처럼 뭔가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진심이 아닐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냥 듣기 좋은 말 한 번 들었다고 생각하자 그 칭찬들은 그대로 내 귀를 지나가 쓰레기통에 박혔다.
낮은 자존감이라고 말하기에는 억울하다. 결국 기록으로 남는 연말 평가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허대며 그런건 다 정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샐 정도로 일해도 동일한 내 평가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늘 이유는 있었다. 나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하다못해 더 늦게까지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그렇지만 회사 생활에서 사람들의 칭찬을 내가 확인하고 확신할만한 그 무언가가 없었던 것은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엄마로서의 모든 것을 모른채 하고 내가 잘한다는 것을 증명해야하는 그 판에 뛰어들 수 없었다. 세 살된 나의 딸은 너무 어렸고, 나의 품을 파고 들어야 편한 얼굴로 잠에 들 수 있었다.
밤마다 남편이랑 아이랑 셋이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남편에게 말했다.
“난 회사에서 잘하는게 없어. 그리고 내가 팀장이어도 내가 싫을 것 같아. 근데 또 좋은 엄마냐? 그것도 아니야. 내가 잘하는게 뭐야? 진짜 다 그만두고 싶어.”
말하다보면 설움이 북받쳐서 엉엉 울었다.
나는 불안했다.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할수록 지쳐갔다. 매일 의구심이 확신을 잡아먹으며 제 몸집을 불려가는 통에 무언가 하나를 할 때도 곱절은 힘들게 되었다.
그림 하나를 그릴 때에도 시작할 엄두가 잘 안났다. 조그마한 지적에도 누군가 내 얼굴에 페인트볼을 던진 양 일순간 시뻘게 지기도 했다. 이를 앙 다무는 습관이 생겼다. 내 입안 볼쪽엔 그 앙 다문 습관덕에 세로 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내 안에서 나는 더 이상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았다. 뿌옇게 먼지 낀 거울에 희미하게 내가 비춰도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잘하고 있다는데 왜 그만두고 싶을까. 잘하고 있는게 맞는걸까.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는 걸까.
아마 이 물음표에 대한 느낌표는 나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양이 느낌표가 아닐 수도 있고. 그래도 내 안의 거울을 닦아내기 위해선 꼭 필요한 느낌표가 아닐까? 다시 거울 안의 철없이 말갛게 웃던 내 얼굴을 찾고 싶다. 그래서 이번엔 이 물음표를 들고 짝지을 느낌표를 찾아간다. 겨우 한 걸음 내딛고 또 앉게되더라도, 원하던 모양의 느낌표를 못 찾더라도,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