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겨울에서 봄이 되는 시기라던가, 여름에서 가을이 오는 시기에는 항상 ‘바람’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춥던 그 시기를 지난 따뜻함을 담아오는, 혹은 여름 내 뜨겁던 내 얼굴의 열을 식히고 콧 속에 어느 순간 훅 시원함을 가지고 오는 바람 말이다. 그런 바람을 맞고서 계절이 바뀜을 눈치채고 새로운 옷차림을 준비하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기도 한다.
나는 열심히 러닝머신을 뛰는 듯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누군가 창문을 연 듯, 어디서 불어온 바람에 눈을 들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빠의 삶을 살아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놓치 않는 나의 남편, 자신의 삶을 알록달록하게 살아내는 나의 딸,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해내는 나의 엄마. 서른 중반이 되자 보이지 않던 길에서 자신의 빛을 찾아낸 나의 친구들.
그동안 아마도 수많은 계절이 내 옆을 지나갔을 텐데, 러닝머신 위에 있는 동안 그 계절이 나에게 불어준 ‘바람’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문득- 눈을 들어 바람이 오는 쪽을 바라보니 나의 계절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사실 이번 바람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늘 ‘형벌처럼 뛰는 이 곳을 벗어나 나도 새로운 러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는 숨이 짧아 그렇게 뛰지 못하는데, 걷기만 해도 될까?’ 이란 의구심은 날 끈질기게 이 러닝머신에 묶어놓았다.
이런 의구심 중에도 바람은 날 계속 때렸고, 생각 구름을 만들어냈다. 내가 뛰어온 길을 돌이켜보니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수준의 고통, 내가 잘 할 수 있는 수준의 일 들만 찾아다녀왔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그동안 징얼거린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물론 아직 이 같은 곳을 뛰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것이 아니었다. 30대 중반의 내가 이렇게 재미없는 삶을 살줄 알았다면 아마 스무살을 갓 넘었던 그때의 나로선 ‘죽어버리는 게 더 낫겠어’ 라고 했을 것이다.
물론 러닝머신을 뛰는 동안 얻게 된 경험과 스킬. 그리고 캐쉬워크 마냥 돈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 삶에 취해 나를 잃게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정말 ‘너 무슨 일 하고 싶어?’ 라는 말에 ‘글쎄- 회사가 정해주는거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이 삶이 내가 사는 삶인 것이라는게 새삼 놀랍다.
이 러닝머신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사실 이것보다 나은 곳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은 곳’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기준은 두가지 인데, 첫번째는 어디에서 이런 보상(Mostly 돈)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내가 이 회사를 다닌다고 했을 때 남들이 날 ‘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자세히 보면 진짜 ‘나’는 없다. “내가 왜 이 일을 더 해야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내’가 없다. 하다못해 “이 일을 하면 내가 행복한가?” 라는 생각조차-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문제점이 보였다. 나는 내 삶을 ‘내맘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어야 나는 덜 울고,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러닝머신에서 내려가는 방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실 “뛰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 러닝머신 옆은 낭떠러지와 같아서 뛰어내리는 순간 나의 일부 혹은 많은 부분이 부서질 것이다. 다시 내가 내 모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한번은 해야하는 일이다. 질질 끌려다니 듯 사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그나마 회사라도 다니면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날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지난 3년의 나를 던져내야겠다.
Drop myself to build it again. 그 모습이 내가 원치 않던 모습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끈기 있게 마흔 살의 나를 그려보고 또 그 나의 삶을 만들어 가자.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