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내가 내 조각을 찾는 방법

Ep 4. 내 그림의 가장 빛나는 조각

by 밤 Warm

세 번의 알림이 울린 후,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오늘 아침에도 회색 하늘에 안개 같은 옅은 구름이 가득 꼈다. 신선한 공기를 온 몸에 채울 생각이었는데 회색 하늘을 보자 약간 찌뿌둥해졌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매일 개운한 기분보단 찌뿌둥한 기분이다. 새로운 곳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주는 설렘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나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날 찾는게 어렵다는 마음에 눈알이 뻑뻑한 기분이다.


열심히 찾아봐도 지지부진하단 생각이 드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어 한국에서의 내 주변 사람들을 생각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훌쩍 10km을 뛰고 출근한다. +5~6시간의 엄청난 야근을 일주일에 세네번씩하는데도 끄떡없다. 심지어 야근 후 명상/요가하고 또 주식 공부까지..! 운동은 또 할게 왜이리 많은지, 요가/골프/러닝/테니스.. 몇 개 씩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서울에 집도 사고, 결혼하고, 애도 낳고, 그 아이가 살 집까지 준비하겠다며 체력, 정신력, 재력, 능력 모든 스탯을 최고로 만드려는 노력은 정말 옆에서 봐도 믿기지 않는 에너지다. 경이롭다. 그 정도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안한 셈이긴하다. 징얼거리기도 어렵지.


이 곳에 도착해 바라보는 사람들도 열심히 산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 부지런히 자신과 가족들이 먹어야하는 아침/점심을 챙기고 회사에 간다. 8-9시간의 업무가 끝나면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악기를 연습한다. 혹은 책을 읽거나 글을 짓는다. 꾸준하게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한다. 그들의 목표는 대체로 과거의 자신일 경우가 많다. 시간을 부지런히 들여 자기가 해왔던 일들을 꾸준히 하고 강도를 높혀가며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내는 것에 골몰한다.


한국의 열심과 미국의 열심을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더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한국의 열심을 살아왔고, 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자꾸 나의 값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나의 가치를 쓸모에서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그런 열심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인데, 너무 열심을 좇아가는 것에 열심을 냈다. 그래서 잠깐 쉬어가는 이 시간도 불안하다. 아마 미친듯한 속도로 뛰던 그 관성이겠지.


그래서 이 시골구석 미국의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날카롭게 갈아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고행하듯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뛰는 사람을. 단번에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순 없지만 언젠가는 꼭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자신이 좋아하고 일궈내는 그 기술과 영역에서 자신에게는 프로페셔널함을 기대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술과 영역을 신뢰하며 아귀가 맞는 협업을 해낸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애니메이션 스러운지!


하나만 열심히 하는 그 사람들을 보니, 내 팔목과 발목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모래주머니 같은 그 무게들이 느껴졌다. 욕심이 이렇게 많은 나는 이 무게들을 달고 못 뛰면 굴러서라도 살아왔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많이 다치게했다. (엄마 미안. 남편 미안.)


막연히 생각했지만, 내가 목표했던 것을 다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사실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막연히 더 밀어붙여야한다는 생각을 내려두었다). 그래서 나도 내가 갈고 닦을 그 무기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깜빡깜빡 새 문서1의 커서가 깜빡인다. 괜스레 아이폰을 들여다보니 시간이 1분 지났다. 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는데 민망하다. 연필을 쥐고 끄적이는 손이 헛물을 켠다. 내가 갈고 닦을 무기를 찾는 중이다.


생각 끝에 어릴적부터 꾸준하지 못해도 돌이켜보면 늘 나와 함께했던 두 가지 무기가 생각났다. 그 둘을 내가 백프로 좋아하고 즐긴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참 다행이다.


첫번째는 글쓰고 말하기. 난 글을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는 편이다. 단어와 수사를 사랑하고, 예민한 만큼 천천히 골라가며 정확한 단어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맞는, 말 잘 맞는 친구와 있으면 밤새- 이야기해도 그다음날 또 할 이야기가 있다. 내가 겪은 것을 타인에게 전하는 것도 좋아하고, 특히 내가 경험한 것 중 좋은 것 (물건, 장소, 어떤 경험!)을 나누고 추천하는 것을, 그리고 그 추천을 들은 친구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너무 좋아한다.


두번째는 타인과의 관계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고도 친근하게 이야기하고 관계를 쌓는 것도 잘한다. 어떤 사람과도 저녁자리에서 끊기지 않고 기분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심지어 즐기는 터라 긴장하지도 않는다. Pure 나의 행복한 영역인셈이다. 그렇지만 잘 지내고 싶은 만큼 타인의 관계에 예민하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사람의 변화나 관계의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눈치가 빠른 편이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은 편이다 :D)


너무 많이 찾을 것도 없이, 딱 생각난 이 두 가지 무기(?)를 갈아봐야겠다. 어떻게? 내 주변을 마음껏 관찰하고, 그것을 글로, 노래로, 시로, 무엇이든 써서 남겨두려한다. (지금 이것 포함 더 많은 것을!) 그러다보면 나 스스로 마음도 더 잘 정리하며 다독여주는 힘도 생기고, 회사에서도 개인적인 삶에서도 기회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코끝도 찌르르하게 울리고, 눈물과 함께 묵은 감정을 쓸어내려가는데 도움을 주거나, 다른 회사에는 열리지 않는 새로운 기회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될지도 �! 친절과 해박함이 촘촘하게 얽힌 스토리는 많은 것을 고구마처럼 캐낼 수 있으니까.


예전엔 이런 생각이 들면 글 잘 쓰는 법을 먼저 공부해야겠다며, 유튜브/구글을 뒤졌을텐데, 지금은 무식하리만큼 무작정해보려고 한다. 예전엔 무작정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무식이 낳는 판타스틱한 결과를 보며 무식도 재능이지 싶다.


그래서 나는 꾸준하게 무식하게 나는 글 짓는 하루를 쌓아갈 것이다. 잘 하는 것을 잘 갈고 닦아 내 그림의 가장 센터에 예쁘게 반짝일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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