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사랑이 곁들여진)
“오고 싶어서요.”
왜 미국에 오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B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B는 미국에 오고 싶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고, 다시 한국에 들어갔지만 살아보니 자신에게 맞는 곳이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즈음 결혼을 했고, 생각을 해보니 남편을 통해 나가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다고 생각했다.
“오빠, 박사 프로그램 지원해봐. 가자는거 아니고, 그냥. 아직도 오빠가 잘 먹히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 즈음 커리어 고민이 있던 B의 남편은 덥썩 그 미끼를 물었고, 지금의 이 도시에 박사로 와서 포스트닥까지 한 뒤 직장을 잡았다고 했다.
너무나 명료한 목표의식과 간단한 이유. 그러나 뒤따라오는 실행력은 그들의 삶을 바꾸고 또 새로운 문을 열기에 충분했다.
“밤Warm씨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대요? 미국에 남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지 한 달 째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미국에서의 구직활동 여부이다. 지금 서부 상황은 정치, 경제 등 메가 트렌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요동치는 통에 노동시장 마저 불안정해서 그런가, 두명 이상 모인 곳에선 늘 나오는 주제다.
“아 저희는 돌아가려고요. 아예 생각자체를 안해봤어요”
“왜요? 미국은 기회의 땅이에요. 물론 자기를 계속 증명해야하지만요.”
“글쎄요. 꼭 미국에서 해야한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던가,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 나를 책망했다.
‘거짓말.’
미국 뿐 아니라 지구 어디서도 내가 지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조금 민망하니, 이정도로 체면치레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체면치레에 급급한 것보다 B의 확신에 찬 그 말과 과거에 더 마음이 갔다. 역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가장 강한 동기이자 늘 에너지를 공급하는 공급원이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니까. 나의 여정은 지금 그것을 찾아가는데 있고.
B의 삶을 들어보니 특이점은 이것이었다. 삶의 장소가 분명하다는 것.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전 미국에서 하고 싶었어요.”
나도 어디 꼭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까? 사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거주지를 경험했던 터라, 이제는 꼭 어딜 살면 좋겠다 보다는 어디라도 상관없다가 되었는데, 새삼 생각해볼만한가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도시는 홍콩이었다.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살고 싶은 곳. 현란한 네온사인과 이면의 어둡고 차가운 곳까지. 아시아도 아닌, 그렇다고 유럽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곳. 그곳에서 할 일없이 2층 버스를 타고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으니, 정말 좋았던 곳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홍콩에 남고 싶었을까. 그땐 명사형으로 증권가 애널리스트, 돈 많이 버는 증권가 사람. 정도였던 것 같은데- 다시 홍콩에 가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고 싶을까.
지금은 그곳에 간다면, 내 시간을 남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낮동안 내가 버는 돈과 받은 에너지로, 밤에는 혹은 필요한 시간에는 다른 사람에게 지식도 나누고, 돈도 나누는 그런 삶.
그러다 지치면 하이킹도 하고, 카약도 타고, 러닝도 하면서 내 몸에 덕지덕지 붙은 스트레스를 땀과 함께 떨궈내고, 다시 일터로 가서 나눌 준비를 하는.
오- 자세히 생각하고 써보니 이 모습은 홍콩 뿐 아니라 이건 내가 살고 싶은 모습 중 하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는 상태.
이것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네. 형이상학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말이지만, 이걸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조각으로 찾아갈 수 있겠지.
그런데 진짜, 이런 형이상학적인 것은 어떻게 눈에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내가 2년차 때 진행한 세미나가 생각났다. 팀장님은 한 직무를 2년동안 일했으면 가능할 것이라며, 내게 나의 직무를 설명하고 또 미래에 어떻게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세미나를 열어보라고 하셨다. 그 때 이론적으로 직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나에게 직무가 갖는 의미를 포함해서 일했던 경험과 앞으로 기대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어 몸부림 쳤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벤다이어그램으로 그것을 설명했다.
-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
- 내가 하고 싶은 것
- 내가 잘 하는 것
이 세가지의 합집합이 점점 커지는 것이 나의 목표. 그리고 외부 환경의 변화로 기대하는 바가 작아진다거나, 내가 잘 하는 것이 더 이상 필요없어진다거나 하는 위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거의 상수로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부분도 변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도 이 방식으로 그릴 수 있다.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내가 하고 싶은 것/내가 잘하는 것,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서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고, 그 영역이 커다라면 최고겠지.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 때는 원 안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너무 잘 알았고, 지금은 그냥 다짜고짜 가운데 합집합이 커지길 바란다는 것이려나. 그래서 나는 늘 누군가를 마주하고, 그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으로 나는 나를 반추하고 조각들을 모아가며 이 세가지의 원을 채워보려고 한다. 이번엔 이 원에 들어갈 무엇 뿐 아니라 주제가 될 수 있는 후보를 찾아낸 것 같아서 소소한 기쁨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런데 이제 사랑이 곁들여진. 나는 그렇게 살고 싶고, 그 방향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간다. 그리고 B만큼이나 확실한 방법을 찾아 해본다.
여기까지 오면 “도대체 이 사람은 뭐 그냥 자기 일기를 이렇게 쓰냐-“ 라던가 “그냥 혼자 애처로운척 에세이 쓰는 척, 감성테라피 하는 것 아냐?” 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면목없다. 그러나 두서없는 이 글은 어두운 동굴에서 어떤 성냥 하나라도 찾으려는 심정의 더듬거리는 절박하고 애처로운 손길로 이해해주시라. 이렇게 열심히 더듬거리고 쓸다보면 하나는 걸리지 않을까- 그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사처럼 (나이가 들통나기 일보직전..) 그 성냥으로 붙인 촛불이 그 옆의 촛불을 밝히고, 그렇게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
* 9/7-8일 중 보셨어야하는 글을 지금에서야 전달하게 되어 죄송해요. 막상 앉아서 쓰려니 무서움의 연속입니다. 아직도 저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써야한다는 생각을 앞서 노트북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고 쉽게 무력해집니다. 무엇인가를 그냥 해버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여실히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해보고, 또 하면서 더 잘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특별히 평소보다도 더 두서 없는 글이네요. 그래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고 글로 쓰니 그 것이 진짜 숨이 불어넣어진 듯하여 글을 보는 제 표정이 결연해졌습니다. 다음 글은 토요일-일요일 사이 작업 예정이고, 일요일 늦은 밤 올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