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양병원

형의 발, 동생의 밤

by 따뜻한시선


깡- 깡-

병동의 복도 끝, 커다란 창 아래 놓인 라디에이터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정호는 라디에이터 위로 축축한 손바닥을 폈다.

그리고 창 밖으로 광양만의 잿빛 겨울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닷바람이 창을 울리며 차가운 입김을 창틀 사이로 불어넣었다.

차가운 기운에 정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는 뒤돌아 수술실을 바라보았다.

두호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세 시간이 넘었다.

정호는 수술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병동 복도 끝을 수십 번 오갔다.



툭- 툭-

수술의는 세 번째 철심을 두호의 오른쪽 발등에 박고 있었다.

두호는 젖은 손바닥을 환복에 닦고 다시 주먹을 쥐었다.

수술의는 발등에 반쯤 박힌 철심을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였다.

잠시 멈춰 철심을 약간 아래로 당겨 잡고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둔탁한 진동은 두호의 마비된 하반신을 타고 올라왔다.

두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철심은 발목과 뒤꿈치에 박힌 것들과 엇갈려 자리를 잡았다.

의사는 피부 밖으로 튀어나온 철심 끝을 하나씩 검지로 살짝 흔들어 보았다.

그리고 절단해 펴 놓은 발등뼈 위에 덧댄 철판에 철심들을 고정했다.

금속나사가 철판을 뚫고 발등뼈에 회전하며 박힐 때마다

두호의 몸이 으스스 떨렸다.






“신문 봤어? 88 올림픽 치르더니 내년부터 해외에 자유롭게 갈 수 있다고 하네.”

“뭐, 있는 사람들 이야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차피 상관도 없잖아.”


간호사들의 대화가 리셉션 데스크를 넘어 들려왔다.

두호는 생애 처음으로 엑스레이를 찍은 뒤,

대기실에서 의사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권 통제 시대 종식, 해외여행 족쇄 풀렸다.”

테이블에 펼쳐진 신문의 굵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족쇄….”

두호는 읊조리며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의 팔보다도 얇고 앙상한 다리가 청바지 아래로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터운 청바지에 빗자루 막대를 꽂아 놓은 것 같았다.

그는 21년 동안 이 족쇄를 끌어왔다.






“일단 오른쪽 다리 길이가 짧은 것보다 문제는 족부구족이야.

그러니까 오른쪽 발이 손으로 치면 손을 반쯤… 오므린 채 굳어 있어.”


두호는 굽은 발등뼈를 따라 반구를 그리는 의사의 손가락 끝을 눈동자로 좇았다.

라이트박스 위에서 그의 뼈는 검은 바탕 위에 하얗게 떠 있었다.

굽은 발등뼈는 생물교과서에서 처음 본 기이한 화석 같았다.


“네가 잘 알겠지만 발등이 혹처럼 튀어나와 있어 신발을 신기 힘들 거야.

무엇보다 발바닥이 아닌 오른쪽 발날로 땅을 지지하고 있어 오랜 걷지 못할 거야.”


“수술은 두 번에 나눠서 하는데, 1차는 발을 펴는 수술이고,

2차는 왼쪽에 비해 짧은 다리뼈를 잘라 늘리는 수술이야.

1차는 회복까지 6주 정도지만, 2차는 1년 이상 생각해야 해.”


“젊어서 회복은 빠를 테지만, 비용이…

일단 발만 수술해 펴도 많이 편해질 거야.”






“정호야, 어머니 보험금이 이천만 원 정도 나왔어. 천만 원은 너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7년 뒤 네가 20살이 되면 찾을 수 있게 적금으로 넣어둘 거야.

외삼촌이 은행을 소개해주기로 했어.”


두호는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정호는 천만 원이 얼마 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남은 돈으로 다리 수술을 받으려고 해.”

“수술하면 형 다리 다 낫는 거예요?”


정호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큰 미소가 떠올랐다.

두호는 말없이 동생을 안았다.






다그닥- 다그닥-

두호의 달리는 모습은 말과 같았다.

오른발로 지지하며 왼발로 외발 뜀박질을 크게 한다.

착지한 왼발로 다시 작은 뜀박질을 하며, 동시에 오른 다리를 앞으로 보낸다.

막대 같은 오른 다리를 지렛대 삼아, 왼발로 외발 뜀박질을 다시 크게 한다.


정호는 대여섯 살까지, 중학생이던 두호의 오른 다리에 매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형이 등교할 때면 정호는 형의 다리를 안고 매달린 채, 방문까지 끌려가며 즐거워했다.

두호는 이때만큼은 제 다리에 매달린 정호의 무게를 느끼면서도, 평소보다 가볍게 발을 옮겼다.


말처럼 달리는 두호를 정호가 따라잡을 나이가 되기 전까지

두호는 발의 고통을 참아가며, 정호와 달리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겨울밤, 아랫동네 슈퍼에서 호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다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면

두호는 으레 ‘귀신이다!’라며 외치고, 정호보다 먼저 뛰어 올라갔다.

그러면 정호는 ‘으앙’ 울며 형을 좇아갔지만, 형은 저만치 먼저 올라가 버렸다.

정호는 말처럼 달리는 형을 시야에서 놓치면, 뒤에서 귀신이 낚아챌까

바닥도 보지 않고 내달렸다.


두호도 정호가 너무 무서움에 떨지 않도록, 정호를 완전히 따돌리지는 않았다.

두호는 갈래길 골목등 아래에서 정호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호빵봉지를 손에 꼭 쥐고 자신에게 안기는 동생을,

두호는 꼭 안아주었다.






수술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정호는 수술실 앞으로 뛰어갔다.


바퀴가 달린 침대가 천천히 나왔다.

알코올과 낯선 약품 냄새가 퍼졌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먼저 보인 형의 오른발은 공중에 낮게 매달려 있었다.

붕대에 감싸인 발에는 쇠막대들이 박혀 있었다.

발목을 묶은 끈은 침대에 설치된 높은 봉에 걸려 있었다.

두꺼운 베개가 종아리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쇠막대가 뚫고 나온 자리마다 하얀 붕대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두호는 턱을 약간 든 채 이를 꽉 물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며, 커터칼로 뼈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다.


정호는 눈을 크게 뜬 채, 두호의 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정호야.”

두호는 입을 살짝 벌려 낮게 정호를 불렀다.

정호와 눈이 마주치자, 눈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 괜찮아.”

두호의 목소리는 작은 숨소리 같았다.


“네. 형.”

정호는 입을 반쯤 벌린 채, 표정 없이 대답했다.

그제야 형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폈다.

손은 앞으로 맞잡은 채, 어깨를 움츠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환자 병실로 옮길 거예요. 따라오세요.”

간호사가 정호를 보며 말했다.






병실은 가운데 출입문 맞은편에 창이 있었고,

양쪽으로 각각 세 명의 환자가 서로 발을 맞댄 구조였다.


두호의 침대는 안쪽 창가 옆이었다.

정호는 가운데 통로를 지나며 환자들을 흘깃 보았다.

발에 쇠막대가 몇 개씩 꽂혀 있거나,

다리둘레에 원형 금속 고리틀이 겹겹이 둘러져 있었다.


간호사들이 두호를 이동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겼다.

다리를 다시 매달고, 베개로 종아리를 받쳤다.

알코올과 약품 냄새가 다시 희미하게 올라왔다.

정적 속에서 환자들의 엇갈린 신음만 옅게 퍼졌다.


“의사 선생님이 곧 올 거예요. 잠시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이동 침대를 끌고 나가며 말했다.


정호는 형의 침대 아래 간이침대에 앉아 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형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두호도 살며시 손에 힘을 주어 정호 손을 쥐었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통증 주사를 맞아도 당분간 통증이 심할 거예요.”

의사는 매달린 두호의 다리 높이를 약간 낮추며 말했다.


“보호자는 어디 있어요?”

의사가 두호에게 물었다.


“흐으, 동생이랑… 흐으, 둘이 왔습니다.”

두호는 신음 사이로 겨우 말을 뱉었다.


“음… 그래요? 어른이 있어야 할 텐데… 몇 살이니?”

의사는 정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열세 살… 아니, 열네 살입니다. 이제 곧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음, 그럼 이제 어른이네.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

의사는 정호의 머리를 쓰다듬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새벽 두 시에 또 주사 맞을 거예요.”

간호사가 두호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정호 손을 꽉쥐던 두호의 손이 느슨해졌다.

이를 악문 채 뱉던 가쁜 신음도 잦아들었다.


정호는 두호의 이마에 맺혀 흐르는 땀을 가만히 닦아내다,

이를 악다문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수 비행장 너머 황새봉 뒤로 검붉은 빛이 가라앉고 있었다.

정호는 힘이 빠진 형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어둠이 세상을 평등하게 덮고 있었다.






깡- 깡-

고요한 새벽, 복도의 라디에이터가 울기 시작했다.

두호의 몸이 쇠 울음소리에 맞춰 파르르 떨었다.


두호의 통증은 다시 찾아왔다.

이가 빠진 낡은 톱으로 뼈를 긁는 고통이었다.


흐읍. 흐흡.

두호의 입에서는 호흡 끝에 신음이 짧게 매달렸다.

그는 매달린 오른 다리의 허벅지를 꽉 쥐어 잡았다.


반복적인 날카로운 고통 사이에

해체된 발등뼈를 손아귀로 꾸욱 쥐어 누르는

묵직한 고통이 불규칙적으로 찾아왔다.


으으… 아… 으음…

악다문 이 사이로 두호의 흐느낌이 튀어나왔다.

묵직한 고통 올 때마다 사지는 부르르 떨렸다.


정호는 놀라 간이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괜찮아요?”


두호는 신음을 삼키며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창에 서린 달빛에 젖은 두호의 얼굴이 반짝였다.

두호는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정호는 두호의 땀을 닦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형의 손등에 그의 손을 가만히 얹었다.

형이 손을 뒤집어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이제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간호사가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은 뒤 나가며 말했다.


흐음… 흐음…

두호의 거친 호흡이 점점 잦아들었다.

통증이 서서히 멀어지며 두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두호는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잠든 형의 젖은 손이

자신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힘을 주고 있었다.

정호는 다른 한 손을 붕대에 감긴 형의 오른발에 조심히 대었다.


“누군가 있다면 제 소원은 하나예요. 형의 다리를 낫게 해 주세요.”

정호는 기도하듯 속삭이며

형의 다리 맡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겨울바람이 창틀을 긁었다.

창틀은 가냘프지만 높은 소리로 울었다.

맺힌 물방울들이 흘러내렸다.






아침해가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두호는 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정호를 바라보았다.

동생의 한 손은 여전히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따뜻한 아침빛이 정호의 머리칼과 귓불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눈가에는 마른 눈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내… 동생…. 정호야…. “

두호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뼈를 깎는 고통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의 눈에서,

까닭 모를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두호는 정호의 따뜻한 작은 손을 쥔 채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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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날들의 온기 – 산 37번지] 연재를 다시 이어갑니다.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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