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시간을 벌기 위해 몸을 쓰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머리맡의 시계로 빠르게 손을 뻗어 알람을 껐다.
라이트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베니어합판 너머로 코 고는 소리가 넘어왔다.
문틈 사이로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들이쳐
길게 내 방을 가르고 있었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이 무한대를 바라보던 눈이
서서히 한 평 남짓한 천장의 윤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목이 간지러워 침을 삼켰다.
갑자기 건조한 기침이 나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벽너머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누운 채 손을 뻗어 문고리 옆의 스위치를 켰다.
깜박이며 켜지는 형광등 빛에 눈이 따갑다.
팔뚝으로 잠시 두 눈을 덮었다.
눈을 감았는데도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잔상이 계속되었다.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조심스레 기지개를 켰다.
팔을 다 펴기 전에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손끝에 문이 닿기를 가늠했다.
문에 손등을 잠시 기대었다.
문은 속이 텅 빈 나무문이었다.
방의 폭은 문의 크기와 거의 같았다.
팔을 벌려 손바닥을 양쪽 벽에 짚었다.
왼쪽은 고시원 건물의 단단한 시멘트 외벽이었다.
가시지 않은 3월 초의 냉기가 손바닥의 혈관을 따라 몸으로 퍼졌다.
하나, 둘!
마음속으로 구령을 외치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책상 모서리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형광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책상 아래로 뻗은 발끝을 바라보았다.
발가락을 오므렸다 다시 쫙 폈다.
발목을 쭉 펴서 발끝을 벽에 대었다가 반대로 구부렸다.
책상 아래로 다리를 넣고 누우면
문쪽으로는 머리 하나, 책상 쪽으로는 발 하나 정도의 여유가 있다.
분명 내 몸보다 큰 방인데, 눈을 뜰 때마다 구겨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허리를 곧추 세우며 팔을 뒤로 벌려 가슴을 켰다.
늘어나는 척추를 따라 근육통이 사지로 퍼져나갔다.
손가락에 이렇게 많은 잔근육들이 있었던가?
손을 오므리니 수많은 작은 통증들이 합쳐져 서서히 무뎌졌다.
마디마다 모래알이 박힌 것 같은 뻑뻑함에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어제 일이 좀 무리였나?
1995년 2월 13일,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그날 밤.
가방하나를 한쪽 어깨에 메고 여수에서 서울행 마지막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새벽 일찍 도착했을 때, 8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쥐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대로변 큰 입시학원들 뒤로 고시원을 찾아 골목길을 배회했다.
정말 운이 좋게 그 이른 아침에 월 8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
복도 끝에 있는 창이 없는 제일 작은 방이었다.
덕분에 골목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고시원료를 치르고 나니 몇 천 원 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를 제공해 주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단출한 짐을 정리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막 지은 고소한 밥냄새가 빈속을 자극했다.
싱크대 위, 업소용 밥통의 숨구멍에서 희미하게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식기건조대에는 여러 모양의 색이 다른 그릇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아래 키 작은 냉장고의 우웅하는 낮은 울음에 수저들에 맺힌 형광빛이 떨렸다.
가운데 4인용 식탁과 각기 다른 4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밥그릇과 수저를 사용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운 의문이 들었지만,
미처 밥그릇과 수저는 이삿짐 목록에 넣을 생각도 못해 실례를 무릅쓰기로 했다.
밥통의 커다란 뚜껑을 여니 따뜻한 수증기가 얼굴을 잠시 덮었다.
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식탁에 두었다.
냉장고 안의 김치통에서 김치를 덜어 접시에 담았다.
하얀 배추에 굵은 고춧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밥은 고소했고 김치는 맵지 않고 간이 알맞게 짰다.
마지막 밥한술을 떠서 접시에 남은 김치양념에 비벼 먹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고시원을 나섰다.
골목길은 학원으로 빠르게 향하는 학생들로 활기가 돌았다.
‘알바구함’이 붙은 가게가 보이면 다가가 시간과 급여를 확인했다.
전봇대에 붙은 구인 전단지를 확인하고 전화번호가 적힌 문어발을 떼어 챙겼다.
골목길을 벗어나 대로에 들어서니 건너편에 사육신묘 공원 안내 간판이 보였다.
성박하- 이유유-
성삼문, 박팽년까지는 떠올랐지만
나머지는 기억나지 않아 답답했다.
매가 두려워 외웠던 이름들이었다.
공원을 둘러보고 싶어 사육신묘 입구로 연결된 육교로 향했다.
육교 아래 길에서 허리 높이 정도 아래로 헌책방이 있었다.
원래는 길과 나란한 1층이었는데
육교를 만들며 길을 위로 돋아 반정도 잠겨버린 단층 건물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입구바닥엔 옛길의 보도블록이 남아 있었다.
“팔지 마시고 잠시만 보관해 주세요. 저번처럼 제가 다시 사갈게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고시생이 주인에게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응 알았어. 걱정 말고 가. 묶은 채 그대로 둘게.”
주인이 노끈에 묶인 두꺼운 법학책들을 가게 뒤로 옮겼다.
고시생은 잠시 자신의 책을 바라보더니 가게를 나섰다.
헌책방에는 주로 여러 가지 고시 관련 서적과 문제집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소설과 시집 그리고 실용서 등 잡다한 책들이 모여있었다.
‘소설 500원’이라고 팻말이 붙은 책장 앞으로 갔다.
책등의 제목을 검지로 집으며 읽을만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소설책은 금방 살펴보았고 마음이 가는 책은 없었다.
소설 다음으로 실용서들이 꽂혀 있었다.
하얀 책등에 빨간색의 제목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4시간 수면법’
표지에는 ‘머리가 좋아진다 + 체력이 증진된다 = 경쟁에 이긴다’라는 부제가
역시 빨간색으로 크게 박혀 있는 제목 위에 적혀있었다.
폭풍이 치던 날,
깊은 산속 동굴에서 전설의 고대무술 비급을 발견하는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책은 바로 세상을 헤쳐 나갈 비기처럼 느껴졌다.
쥐고 있는 유일한 재화이자 누구에게나 공평한 재화인 시간을 연마할 술 있는 비술.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4시간만 잘 수 있다면, 20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9시간 일하고, 3시간 정도는 밥 먹고, 씻고, 이동하는 시간,
그럼 8시간 정도는 공부할 수 있다고 어림 잡았다.
“저기야! 곰방 한 번 해볼래? 힘들긴 한데 일당이 좋긴 해.”
인력사무소 사장님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에게 턱짓을 했다.
“여기로 빨리 가. 요 앞에서 239-1번 타면 상대원으로 바로 간다.”
사장님은 거칠게 찢은 종이에 주소와 약도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시간당 나의 가치를 가장 높게 쳐주는 일은 노가다였다.
노량진 근처의 인력사무소에는 일거리도 적었지만,
이제 갓 20살이 된 왜소한 청년에게는 기회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벼룩시장을 뒤지며 전전했던 다른 지역의 사무소 아저씨들을 통해
양재역 근방이 노다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강남아래로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양재역은 신도시 건축현장으로 수도권의 노동을 공급하는 새벽 인력시장의 중심이었다.
그곳은 매일 새벽 인력을 실어 나르는 봉고차들이 내뿜는 매캐한 매연으로 가득했다.
그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거친 사투리들 사이에서,
나는 며칠을 서성인 끝에야 양재의 한 인력사무소에 간신히 끈을 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엔 조금 더 빨리 도착하면 더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작은 평등한 기회가 있었다.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현장이 보였다.
5층 다세대주택의 회색 콘크리트 뼈대가 위태롭게 경사면에 박혀있었다.
텅 빈 골조 사이로 3월 초의 매서운 바람이 회색먼지를 불어댔다.
인부들은 나무를 태우는 드럼통 주위에 모여 몸을 녹이고 있었다.
“곰방 왔어? 이리 와 커피 한 잔해.”
인부 중 한 명이 손짓을 했다.
“아이고 빼빼해서 힘이나 쓰겄냐? 빵도 묵어”
다른 인부 한 명이 드럼통에 손을 쬐며 턱으로 빵을 가리켰다.
“7시부터 일 시작이니까. 천천히 먹어. 저 두 아저씨랑 오늘 시멘트 곰방하면 된다.
내가 소장이니까 저 아저씨들이 못되게 굴면 나한테 이야기해.”
소장이 웃음을 지으며 검지와 중지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따 형님, 누가 들으면 우리가 괴롭혀서 인부들 그만두는 줄 알겄네.
곰방일이 힘들고 소장도 까다롭고 해서 다들 그만두는 거지.”
드럼통 주위에 있던 인부들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층마다 시멘트를 나눠서 옮길 거야.
그다음에 미장이들이 말한 곳에 포대를 나눠 놓으면 돼.
제일 힘든 5층부터 시작하자.”
입구에는 40kg 시멘트포대가 높게 쌓여 있었다.
1층 현관계단을 오르자 어깨가 짓눌렸다.
2층을 오를 때쯤에 등이 굽어지기 시작했다.
3층을 오를 때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4층에 이르자 허벅지가 터질 듯했고,
5층을 향할 때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포대를 바닥에 내려놓을 땐 얼굴을 타고 내려온 땀에,
시멘트 가루가 달라붙어 굳어가고 있었다.
골조공사만 마친 건물은 난간 하나 없었다.
층계양쪽은 뻥 뚫려 있어 올라갈수록 현기증에 몸이 더욱 경직되었다.
한 번 계단을 오르면 기댈 곳이 없었다.
움직임이 둔해지며 시간도 느리게 흘렀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보며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계단 하나하나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몸은 낮아지는 층수를 겨우 버틸 수 있을 만큼 지쳐갔다.
가장 먼저 힘이 빠진 곳은 손아귀였다.
부드러운 시멘트 가루가 묻은 포대는 잡기가 까다로웠다.
어깨에 들쳐 메기 위해 포대 끝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 그리고 들어 올려 어깨에 멜 때,
층계를 오르며 어깨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는 포대를 잡아끌어 다시 자리를 잡을 때,
무게를 버티며 포대를 내려놓을 때마다 손톱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기 전 모든 층에 시멘트 포대를 옮겼다.
흙맛이 나는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온기가 남은 드럼통 옆에서 드러누워 눈을 잠시 붙이고 나니 기운이 조금 돌아왔다.
오후에는 각 층마다 시멘트포대를 몇 군데 나누어 놓고
미장이들이 쓸 수 있게 시멘트와 모래를 삽으로 섞는 조금은 수월한 작업을 하였다.
오후의 석양이 콘크리트 골조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뻥 뚫린 5층에서 길을 따라 아래를 바라보았다.
비슷하게 생긴 빌라들이 산등성이부터 언덕을 따라 넓게,
저 아래 큰 도로까지 따개비처럼 덮고 있었다.
옥상에는 파란 물통을 모두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었다.
“일 잘하네. 내일도 나와. 다른 일 줄 테니까.”
소장은 나에게 일당을 건넸다.
“악바리네, 악바리야. 중간에 도망갈 줄 알았드만. 허허”
곰방을 같이했던 한 아저씨가 짐을 챙기며 웃었다.
“재수하러 올라왔다며? 독하게 공부해서 좋은 직장 구해. 우리처럼 고생하지 말고.”
다른 아저씨가 내 등의 먼지를 털어주며 말했다.
가파른 길을 내려올 때 발목이 시큰거리고 몸이 약간 떨렸지만,
오늘따라 무거운 일당봉투가 잠바주머니에서 느껴지자 묘한 성취감이 일었다.
하루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날이어서일까?
처음 경험해 본 육체의 한계를 견뎌서일까?
하루의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어서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조금은 수월한 내리막길이니까.
양재역으로 향하는 첫새벽버스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막 여의도를 빠져나와 한강철로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한강대교의 가로등이 아직 어두운 한강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4시간 수면법’을 책가방에 넣었다.
가파른 길을 오르기 전 주먹을 쥐고 허리를 쫙 펴며 언덕 끝을 바라보았다.
손아귀가 꽉 쥐어지지 않았지만
왠지 무언가를 꽉 쥘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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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