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웠던 세상을 끌던 1995년 스무 살의 봄
뻥- 쿵-
둥근 무쇠철판이 폭발음과 함께 공중으로 들렸다.
비틀리듯 솟구쳤다가 가스화로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주말 저녁, 손님들로 가득 찬 닭갈비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행히 폭발은 크지 않았다.
철판 위 볶음밥 재료만이
몇 사람의 옷자락에 조금 튀었을 뿐이었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점장이 허리를 숙였다.
“너 괜찮아? 밸브 확인했어야지.
빨리 얼음물로 얼굴 열부터 식혀.”
점장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닭갈비집 둥근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가스화로가 있었다.
테이블 아래 작은 구멍으로 가스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부에는 막대처럼 생긴 밸브 두 개가 달려 있었다.
가스를 조금 틀고 그 구멍으로 긴 라이터를 넣어 불을 붙이면
‘훅’하고 파란 불이 철판 아래로 번졌다.
닭갈비를 다 먹은 뒤 손님들이 직접 밸브를 잠그기도 했다.
그때 완전히 닫히지 않으면, 불은 꺼져도 가스는 새어
철판 아래에 고여 있었다.
추가로 볶음밥을 주문하면 다시 불을 붙여야 했다.
내 주 업무는 주방 뒤에서 무쇠철판을 닦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말이면 주문이 밀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홀로 나갔다.
마음이 급했고, 홀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불을 붙이기 전 밸브가 완전히 잠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 구멍을 들여다보며 라이터를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철판 아래 고여 있던 가스가 폭발했다.
무쇠철판이 솟구쳤고,
작은 구멍으로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짧지만 강력한 제트엔진의 점화 같았다.
나는 얼굴에 그대로 화염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손님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웅-
텅 빈 운동장의 나팔 스피커 대기음 같은 소리가
귀에서 울리다 천천히 사라졌다.
그제야 낯이 뜨거워졌다.
버스에서 잠이 들어 사육신공원 정거장을 지나쳤다.
다음 정거장인 노량진역의 쾌활한 소음에 눈을 떴다.
수업이 끝나고 몰려나온 수험생들이 소란스럽게 버스에 올라탔다.
이미 뒷문까지 밀고 들어온 학생들 사이를 조심히 비집고 내렸다.
건너편 대성학원의 유리창은 붉은 하늘을 담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건널목은 수험생들로 가득 찼다.
그들이 맨 가방은 한눈에도 무거운 책이 가득 들어 보였다.
나는 작업복이 담겨있는 홀쭉한 백팩을 바짝 당겨 매었다.
어김없이 또 허기가 졌다.
이제 곧 6시니 고시원 밥솥에 새로 한 밥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입을 다시며 좁은 길로 들어서니 온갖 반찬과 음식 냄새가 가득 풍겼다.
노량진 뒤 골목길엔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식당들이 줄줄이 있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손에 식권을 쥐고 저마다의 단골집으로 향했다.
고시 식당에는 몇 가지 메뉴는 있었지만 가장 저렴하고 알찬 것은 백반이었다.
식당들의 백반 한 끼는 천 원이었다.
천 원짜리 식권은 열 장에 구천 원이었다.
열 장을 사면 백반한 끼는 공짜인 셈이다.
가끔 제육이나 오징어덮밥이 먹고 싶을 땐 500원을 보태면 되었다.
안주머니에서 나일론 천지갑을 꺼내었다.
찍-
찍찍이를 떼자 거칠게 소리가 났다.
삼단으로 접힌 천지갑을 펼쳤다.
목젖이 도드라진 내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신분증 뒤 작은 주머니에서 식권을 꺼내었다.
분홍색 얇은 색지에 ‘여수식당’이라는 직인이 찍혀있었다.
뻔히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알지만,
호치키스가 찍힌 쪽을 잡고 개수를 세었다.
일곱 개.
마음이 든든해지며 얼굴에 웃음이 피었지만,
내 사소한 행복을 누가 알아챌까 빠르게 웃음을 거두었다.
오늘은 가는 날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여수식당을 들렀다.
입구에서 살짝 들여다보니 쟁반에 두부조림이 가득 있었다.
몇 주를 살펴보니 화요일에는 달걀프라이,
금요일에는 제육볶음이 백반 반찬으로 나왔다.
넓은 사각 알루미늄 쟁반에 가득 담아 내어놓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일 갔다 와?”
식당 이모가 주방에서 돌아서는 나를 보며 불렀다.
“네!”
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만.”
이모는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주방에 나왔다.
“살 좀 쪄야지. 기운 내서 뭐든 하지. 이거 가져가 먹어.”
노란 콩가루가 듬뿍 얹힌 시루떡이었다.
식당 이름이 여수식당이라 가끔 들르게 되었고,
일당을 못 잡고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엔
점심을 일찍 여기서 해결하였다.
어느 날 여수에서 온 걸 알고 난 후부터
이모는 나를 조카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고향의 손맛이 담긴 음식은 허기진 마음도 채워주었다.
“안녕하세요? 몇 명이세요?”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홀에 들어서자 점장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입구에 아르바이트생 모집글 보고 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이모가 준 시루떡을 담은 비닐을 가방에 급하게 넣었다.
“아 그래요? 홀서빙은 구했어요.”
점장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철판 닦는 일 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먼저 지원했을까 불안했다.
“일이 힘들어요. 금방 그만 두면 안 돼요.”
골목길에서 큰길로 연결되는 코너에 있는
프랜차이즈 닭갈비 식당은 규모가 꽤 컸다.
철판세척 알바는 시간당 1,800원으로 시급이 좋았다.
업무시간도 오후 6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나,
일당잡부 일을 끝마치고 오면 딱 맞았다.
거기에 닭고기가 포함된 저녁밥이 제공되었다.
식당에 도착하면 먼저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빨간 고무가 반코팅된 장갑을 챙겨 세척실로 향했다.
식당 안쪽으로 비상문이 있었다.
비상문 밖의 옆 건물과 사이의 좁은 공간은 길과 연결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간이벽으로 양끝을 막아 그 공간은 막혀 있었다.
한쪽 끝은 화장실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반대쪽은 각목나무로 뼈대를 짜고
그 위에 투명한 물결 패널 지붕을 덮은 세척실이었다.
비상문을 닫고 벽에 붙어 있는 전구의 전원 스위치를 켰다.
튼튼한 금속테이블 아래에는 점심부터 사용한 철판이 쌓여 있었다.
커다란 하늘색 플라스틱 통을 테이블 옆으로 가져다 놓았다.
철판을 하나씩 금속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남은 음식물을 쇠헤라로 밀어 모아 하늘색 통에 털어 넣었다.
화장실에서 연결된 호스의 밸브를 열어 물을 끼얹었다.
철수세미로 눌어붙은 검은 자국을 벗겨냈다.
마지막으로 콩기름을 얇게 펴 바르고,
하얀 키친타월에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문질렀다.
출입문 쪽 테이블 끝에 신문을 깔고 철판을 내려놓았다.
손잡이가 겹치지 않도록 각도를 틀어가며 하나씩 포개 쌓았다.
“야 이렇게 쌓아 두니까, 일하기 너무 편한데?”
점장님이 사용한 철판을 나에게 넘겨주고 세척한 철판을 잡아들었다.
“아우 눈부시다. 너무 닦지 마, 철판 닳어.”
점장님이 철판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점장님은 비상문을 발로 밀어 열었다.
문이 열리자 손님들의 들뜬 목소리들이 넘쳐 나왔다.
문 너머로 홀에 가득한 손님들이 잠시 보였다.
내가 닦은 철판이 그들에게 온기를 전하는 것 같아,
젖은 내 손도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점장님이 챙겨준 얼음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위 거울엔 수증기가 가득 맺혀 있었다.
손으로 닦아 비친 얼굴을 보니 난데없이 웃음이 터졌다.
코미디 영화에서 폭탄을 맞은 희극배우가 서 있었다.
얼굴은 부분 부분 시커멓고 눈썹은 그을려 자국만 남아 있었다.
머리는 불에 그을린 채 수세미처럼 뻣뻣하게 엉켜 삐죽하게 솟아 있었다.
손으로 만지자 바스락 소리가 나며 부서졌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터진 게 어이가 없어 또 웃음이 터졌다.
부서지며 떨어지는 머리칼에서 고소한 불냄새가 났다.
세면대의 얼음물에 얼굴을 담갔다.
중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가 불 질러버린 산 37번지의 셋집.
잔불 바닥에서 찾은 반쯤 타버린 라면 냄새가 코를 휙 스쳤다.
먹을 수 있는 라면을 추슬러 담고,
어두워진 동네 골목길을 내려갔던 어린 나는 어디로 향했던 걸까?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낮게 읊조렸다.
"그때는 어쩔 수 없던 것들이 많았지.
너는 작았고,
세상은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무게를 끌고도
한 걸음은 뗄 수 있다."
수증기가 맺혀 흐려진 거울 위로 물방울 하나가 굵게 흘러내렸다.
그것은 벌판에 남은 내가 끌고 온 바위 자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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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