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물이 되어
1995년 2월,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향했다.
두려움은 짐처럼 무겁고, 설렘은 입김처럼 가볍던 시간.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성년의 풍경으로 들어갔다.
20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기로 결심했을 때 서울은 설렘과 두려움이었다.
서울에서 살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20살 이전까지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까만 물결 같은 인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층빌딩, 햇볕을 튀겨내는 자동차의 은빛 물결. 밤거리에 흐르는 네온사인.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본 서울은 말 그대로 텔레비전 속의 세상 같았다.
국민학교 시절,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서울에 다녀온 친구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며칠이나 머물렀다고 서울말을 어설픈 억양으로 흉내 내는 것이 밉상이기도 했지만 여기저기에 붙여 온 서울의 경험을 부러워했다.
그중 가장 강렬한 기억은 서울 지하철 표이다. 노란색 빳빳한 종이에 갈색 마그네틱 선이 붙어 있었다. 처음 보는 신세계의 물건이었으며 동시에 신세계로 가는 입장권 같았다.
그 표를 넣으면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는 개찰구,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계단,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는 기차의 문. 만화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상이 저 멀리 존재한다는 것이 그리고 실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세상을 다녀온 친구 녀석이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예상과 달리 기쁨이 아니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동경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람들의 까만 물결에 휩쓸려 모르는 곳으로 갈 것 같은 불안. 고층빌딩 사이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느꼈던 현기증. 시끄럽게 찔러대는 자동차의 은빛 물결.
나는 작아지고 작아졌다. 신호가 바뀌자 양쪽에 멈춰있는 자동차들을 의식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 나를 지나쳐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며,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마음속에서 가까웠던 서울은, 현실의 거리감으로 멀어졌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날, 서울로 향했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새벽기차에 올라탔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한숨도 자지 못했다. 서울을 경험하기 전의 설렘과 경험한 후의 두려움, 새로운 터전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이 뒤섞여, 나는 깨어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후, 기차는 한강철교를 건넜다.
한강. 새벽빛에 사물의 윤곽이 살아나고 있었고 강은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을 받아내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여수에서 해안도로를 걸을 때, 또는 내 방 창을 열었을 때 보던 섬과 섬 사이를 흐르던 물길.
그것과 닮은 강이었다.
그 친숙한 광경에 긴장이 풀렸고, 서울역 도착 10여분을 남기고 눈이 감겼다.
노량진 고시원에서의 첫 생활.
가장 싼 월8만원의 복도 끝 방은 창이 없다.
답답할 때마다 사육신묘 공원을 찾는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정상의 정자에 오르면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향집 창문으로 보던 풍경과 비슷하다.
특히 배경이 흐릿한 밤에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고향 바닷가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이 그리울 때 거기에 앉아 고향생각을 한다. 그리고 상상을 한다.
'저 물은 내 고향 바다와 연결되어 있겠지?'
'내가 물이 되어 흐른다면 언젠가 고향으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익숙해진 서울의 이 공간도 변하기 시작한다. 내 시야에서 부드러운 강을 톱니바퀴처럼 파먹는 고층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어느 날부터 물길을 부드럽게 비추어 주던 대교의 불빛들이 시끄러워지고 급기야 샛노랗게 강을 툭툭 자른다. 점점 고향의 그것과 닮지 않은 불편한 풍경이 돼 간다. 천천히 서울과 나를 이어주던 공간이 사라져 간다.
공원의 정자가 더 이상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슬퍼진다. 이제 저 물을 따라가도 고향에 닿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눈물이 되어 강으로 흐른다.
강물에 실려 미쳐보지 못한 서울을 구경한다. 강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한 가족이 보인다. 바닥에 누워 네 살 남짓한 어린 아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아버지의 팔에서 가족을 온전히 끌어갈 수 있는 믿음이 느껴진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다섯 살 남짓한 딸을 무릎에 앉혀 안고 있는 어머니의 팔에선 가족을 온전히 안을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는 계속 흐른다. 강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연인이 보인다. 꼭 잡은 손위로 맞닿은 연인의 팔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그 설렘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반영되고 연인의 눈동자에 맺힌 도시의 풍경은 내가 보는 것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맥주 캔을 손에 들고 둘러앉아 있는 젊은 친구들이 보인다. 한 친구가 술에 취해 울고 있다. 힘든 친구의 눈물에 도시의 풍경은 굴곡이 져있다. 눈물을 훔치던 팔에서 서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우는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는 다른 친구들의 팔에서 그 서러움을 나눠 갖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나는 유람선에 밀려 강 가장자리로 흐르고 작은 파도를 타고 뛰어오른다. 자전거를 타다 쉬고 있던 한 청년의 이마의 땀이 된다. 청년은 다시 강을 따라 힘차게 달리고 강처럼 흐르는 핏줄을 가진 청년의 팔에서 이루고 싶어 하는 선명한 꿈이 느껴진다.
나는 청년의 이마에서 강둑 시멘트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오후의 햇살에 증발해 수증기가 된다.
하늘로 올라가며 서울을 본다. 이제 도시의 풍경에 사람이 보이고 사람마다 뿜어내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보인다. 그 덩어리들은 서로 뭉치고 흐르고 있다. 이것들은 도시의 아스팔트, 금속, 유리 그리고 콘크리트를 감싸 돌아 풍경을 변화시킨다. 이것들은 커다란 물줄기를 따라 여기저기로 흘러 도시의 풍경을 살아 있는 어떤 것처럼 보이게 한다.
어두워진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하늘의 달과 별과 지상의 불빛을 담아내던 고향의 그 물길과 닮아 있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구름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간다. 가끔씩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이제 모두 익숙하다. 아침이 밝을 때쯤 아래를 보니 어딘가 많이 달라 보이지만 내 고향이 보인다. 나의 마음은 반가움으로 설렌다.
나는 곧 방울져 비가 되어 떨어진다. 지상으로 떨어지며 점점 가까이 보니 유선형의 해안선들이 반듯해지고 산을 가로질러 길들이 새로 놓인 듯하다. 도시 외곽의 산에 떨어진 나는 바위를 타고 흘러 작은 냇물에 합류한다. 저수지를 지나 논을 따라 흐르다 꽤 큰 천에 도착한다.
연등천이다. 국민학교 하교 길에 가끔 길을 마다하고 천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두세 번 징검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천이다. 천을 따라 하교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없다. 천을 따라 중심가로 가까이 가는 중에 갑자기 어두워진다. 위를 올려보니 막혀 있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흐르다 갑자기 밝아진다. 천이 바다에 이를 때까지 덮여 있다. 연등천에서의 모든 추억들이 함께 시멘트로 덮여 버린 기분이다.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해안을 따라 흐른다.
내가 살던 동네에 이르렀을 때 어딘가 바위에라도 잠시 쉬고 싶었지만 모래와 자갈 바위로 이루어졌던 해안들이 모두 반듯하게 시멘트로 바뀌어 있어 머무를 곳이 없다. 매끄러운 시멘트 해안은 나를 자꾸 밀쳐낸다. 내가 살던 동네도 이제 아파트들이 들어서 알아볼 수가 없고 얼음을 제조해 선박에 제공하던 얼음공장의 공중레일만이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이제 고향이 멀어진 느낌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계속 흐르던 나는 콘크리트로 정비된 해안가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한 가족을 본다. 익숙한 풍경이다. 한 연인을, 모여서 술을 마시는 젊은 친구들을, 자전거를 타는 청년을 본다. 사람이 보이고 감정의 덩어리들이 보이고 그리고 다시 그 감정의 덩어리들이 감싸 도는 풍경이 보인다. 친숙한 풍경이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서울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기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전히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노란색 지하철 표를 손에 단단히 쥐고,
지하철로 몰려가는 인파 속으로,
나는 흘러 들어갔다.
#에세이 #90년대 #노량진 #청춘 #자존감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