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철문이 열리던 아침
철커덕-
굳게 닫힌 거대한 철문 옆에 붙은 작은 철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그 좁은 틈으로 쏠렸다.
두호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툭 바닥에 버리고, 발로 급하게 비볐다.
철문을 나서던 남자는 쏠린 시선에 잠시 멈칫거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가 그를 에워싸며 안았다.
정호는 철문 쪽으로 쑥 내밀었던 고개를 거둬들이며 돌아섰다.
두호는 말없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짧은 재회를 마친 무리가 정문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흙이 단단히 굳은 길은 바짝 마른논을 가르며 멀리 국도까지 이어졌다.
길가엔 마른 잎 몇 장을 위태롭게 매단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3월 초의 차가운 봄볕이 길 위에 실금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 그림자를 새겼다.
마른바람이 길 위를 걷는 무리의 발자국마다 흙먼지를 일으켰다.
정호는 조그맣게 회오리 치며 사라지는 흙먼지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겨울의 여운이 남은 새벽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첫새벽기차가 종착역 여수로 소리를 죽이며 들어섰다.
치이-
기차는 멈춰 서자마자 길고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기차가 밀어낸 바람에 정호의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다.
정호는 코로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에는 기차가 품고 온 희미한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화물칸 위로 뛰어올랐다.
신문 백 부씩 묶인 덩어리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정호는 묶음 하나를 플랫폼으로 던지려다 말고 동작을 멈췄다.
‘문민정부 첫 삼일절 특사 단행, 4만여 명 새 삶 찾는다’
투명한 비닐포장 너머로 신문의 1면이 헤드라인이 비쳤다.
정호는 묶음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쥔 채, 잠시 멎은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두호는 집 앞 소방도로 가드레일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정호와 함께 사는 단칸방의 작은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우-
하늘로 뿜은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어져 빠르게 사라졌다.
나무 전봇대에 매달린 골목등의 갓이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콘크리트 바닥을 노랗게 비추는 둥그런 빛의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얗게 칠해진 난간 아래는 곧장 절벽이었다.
두호의 등 뒤로 장군도와 돌산대교의 불빛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난간 기둥이 벼랑 끝에 띄엄띄엄 박혀 있었고,
그 사이를 물결 모양의 강판이 잇고 있었다.
강판을 기둥에 고정한 리벳 구멍 아래마다
붉은 녹물이 눈물자국처럼 흘러내렸다.
기둥 하나는 바닷바람에 부식되어 밑동이 끊긴 채,
붉은 속살을 거칠게 드러내며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 바로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는 기둥뿌리가 사라져 버린
구멍만이 어둡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다음 주에 나오신대.”
두호는 학교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정호에게 편지봉투를 건넸다.
정호는 편지를 골목등 불빛에 비추었다.
1993년 3월 6일 토요일
아버지는 출소 날짜를 편지에 적어 보냈다.
글씨는 짧았고, 시간이 없는 날짜만 또렷했다.
“더 윗동네에 다른 집을 구해야겠어.”
두호가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길게 뱉었다.
정호는 윗동네를 바라보았다.
정호는 4년 전 떠나온 광무동 산동네의 잔상이 겹쳐 보였다.
아버지가 태워버린 산 37번지 집이 불길처럼 어른거렸다.
두호는 거의 필터만 남은 담배를 절벽 아래로 튕겨 던졌다.
담배꽁초는 어두운 하늘로 짧은 포물선을 빨갛게 그리며 떨어지다
짧게 휙 불어온 바닷바람에 밀려 절벽에 부딪혔다.
이내 붉은 파편으로 사라졌다.
돌산대교 아래로 힘차게 출항하는 어선의 작업등이 꿈뻑이며 멀어져 갔다.
[고단한 날들의 온기 – 산 37번지] 연재를 다시 이어갑니다.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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