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행복했던 기억

에필로그

by 따뜻한시선

여름이었습니다.


“할머니, 내 반바지 어디 있어?”

집에서 입던 반바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잠바리?”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습니다.


두호와 정호는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할머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네 잠바리를 할머니가 어떻게 아니?”

두호의 말에 형제는 바닥을 구르며 끅끅대며 웃었습니다.


“할머니, 잠바리가 뭐야? 반바지! 내 반바지.”

정호는 아픈 배를 잡고 겨우 말했습니다.


“아! 반바지?”

정호의 말에 할머니도 함께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이고, 보청기 약이 떨어졌는갑다. 하하.”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며 두호의 등을 툭 쳤습니다.


“아… 잠바리… 큭큭큭….”

두호와 정호는 눈이 마주치자 또 웃음이 터졌습니다.


배가 당겨 눈물이 날 만큼 웃었습니다.

숨이 멎을 것처럼 웃었습니다.


죽도록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두호와 정호는

할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잠바리’를 떠올렸습니다.

그 여름날처럼 또 웃었습니다.


정호는

할머니와 두호가 그리울 때마다 ‘잠바리’를 떠올립니다.

그 여름날처럼 웃다가, 울기도 합니다.






행복했던 것들에는

‘잠바리’처럼 하나씩 이름을 붙였습니다.


불행했던 것들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고통이 시작되었던 곳,

‘산 37번지’라는 검은 봉지에 담아 묶어두었습니다.






두호가 그리울 때마다

영양제처럼 마음에 꽂았던

이름 붙인 행복들은

어느 날 무뎌졌습니다.


그리고

검은 봉지가 터졌습니다.


이름 붙이지 않았던 것들은

날것처럼 다시 박혀왔습니다.


하지만 그 봉지 안에는

이름 없이 함께 들어가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이제야 토닥이며

스물다섯 개의 이야기로 이름을 붙여

이곳에 풀어놓았습니다.






일기장에나 적어야 할 이야기를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두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국

시간 속에 조금씩 희미해져

몇십 년 후면

누군가의 기억에서도 흐려지겠지만,


당신과 다르지 않은

두호와 정호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만은

남기고 싶었습니다.






정호의 스무 살 이전의 이야기,

‘고단한 날들의 온기 – 산 37번지’를

이제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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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날들의 온기 – 산 37번지]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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