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지친 날엔

by 손이불

오늘도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말하고자 했던 것과 전달된 것 사이의 간극,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과 실제로 이해받은 정도 사이의 거리감.

이런 날이면 문득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내향형인 나에게 관계는 자연스레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다.

불확실한 돌길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건너야 하는 다리에 가깝다. 그래서 어색한 순간들이 많았다.

미소 짓는 표정을 연습하고, 작은 목소리를 감추려 성급하게 친절을 먼저 베푸는 습관도 생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눈을 맞추며 고개 숙여 인사하기, 카페에서 주문할 때 "감사합니다" 한마디 더 건네기. 그런 작은 용기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조용하다고 해서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받을 때. 그 억측들 때문에 나를 바꿔야 하나 고민했던 밤들도 있었다. 억지로 밝게 굴어보기도 했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늘어놓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어색해지고 지쳐갔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말수가 적다고 해서 성과가 부족하다고 속단하거나, 회식 자리에 소극적이라고 해서 팀워크가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시선들. 한 동료는 조용한 성격 때문에 승진에서 번번이 밀려났고, 또 다른 후배는 아이디어가 좋아도 발표를 꺼려한다는 이유로 기회를 잃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많은 고민과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 후로는 작은 관심이라도 꾸준히 표현하려 애썼다. 아픈 동료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거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후배에게 "괜찮아?"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일.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내 진짜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때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따뜻함을 만났다.

카페 사장님이 음료를 고르며 망설이던 내게 건넨 한마디.

"요즘 힘들어 보이네요."

그리고 내가 좋아할 만한 쿠키를 조심스레 내미는 손길.


그 작은 관심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의 다정함이, 오래 준비한 말보다 더 큰 치유가 된다는 걸 알았다.


관계에서 지친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안에서 받는 예상치 못한 선물들. 누군가의 진심 어린 관심, 불시에 찾아온 공감, 내가 건넨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는 깨달음. 그런 순간들이 모든 피로와 아픔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내 조용한 동료는 결국 자신만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팀장이 되었고, 그 후배는 일대일 미팅을 통해 뛰어난 아이디어들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며, 작지만 진심 어린 배려로 조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리더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내향형인 나에게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긴장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억측에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진심을 전하려 할 때 비로소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지친 날에는 쉬어도 된다. 하지만 다시 그 자리로 나가는 용기만큼은 잃지 말자 다짐한다.

스스로의 벽을 하나씩 넘어가는 것, 그것이 관계 속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사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들.


결국 우리는 관계에 지치면서도,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모순적이지만 아름다운 존재다.


나처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서툰 표현도, 어색한 침묵도, 때로 찾아오는 외로움도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진심을 품은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의 조용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고,

당신의 따뜻한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멈추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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