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책꽂이 - 첫 번째 책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
지은이: 김지혜
혐오와 차별이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을 꽤 오랜 시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도 어쩌면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결정을 참 못 하고 하기 싫어하던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결정장애'라는 말. 나 또한 꽤 많이 썼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시작하는 단어 또한 결정장애이다. "결정장애는 누군가가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다면 여기서의 '장애'는 부족함과 열등함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장애인'이라고 불러지는 집단은 항상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이었다."(1)
이처럼 우리가 다수라서 인지하지 못했던 차별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한 줄씩 읽어 나갈 때마다 나의 무지함을 깨닫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소수였기 때문에 느꼈던 아픈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가장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온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이야기는 영화 '우리들'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면 가장 흔하게 편을 가르는 방법은 홀수팀, 짝수팀 아니면 가장 운동을 잘하는 아이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씩 고르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 팀원으로 선택당하기를 기다린다. "주인공인 이선은 가장 마지막 차례까지 본인이 뽑히지 못하고 어느 팀에든 소속이 되어야 하지만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장면들은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그 불안함을 아주 잘 묘사하였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하거나, 소풍에서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거나." (2)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다고 착각하는 어린 시절이 실은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하기도 했음을 영화는 깨우쳐준다.... 친구라는 공동체가 느슨하게 열린 관계가 아니라 끈끈하게 밀착된 닫힌 관계일 때, 소속되지 못함에 대한 불안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3) 이 문장을 보고 정말 많은 유년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7,8명의 친구들 무리에 소속되어 있었고 어느 날 나는 A라는 친구를 제외한 친구들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A가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싫어. 우리 한 번 불러서 서로 단점 고치기 시간 가지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A한테 그거 고치라고 말하자." 나는 침묵했고, 그것은 동의였다. 약속한 시간에 우리는 모두 모였고 나는 말했다. "A가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거 좀 고쳐주면 좋겠어." 그리고 나를 뺀 나머지 친구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너 아는 척 너무 많이 해. 그거 좀 안 하면 좋겠어." 나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공동체 속에서 다수와 함께라는 안정감을 위해 소수를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동조했지만 결국 실제 대상은 나였음을 깨달았다. 다소 충격적인 기억이고 그때 당시에는 많은 상처도 받았지만 그 기억이 나를 오히려 혐오와 차별을 더 인지하고 경각심을 갖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일을 겪고 내가 얼마나 무지하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많은 차별에 동조했는지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 한 명의 친구를 외모비하하며 놀리는 일에 나는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동조했고, 중학교 때 나 다음으로 단점 개선 요청에 불려진 다른 친구를 모른 척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나는 더 이상 과도하게 끈끈하고 기이하게 밀착된 닫힌 관계보다 자유롭고 느슨하고 숨 쉴 수 있는 열린 관계를 찾았고 추구했다. 내가 그 무리에서 정말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죽어라 고쳤겠지만, 나는 나를 바꾸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다른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화를 만들기 꿈꾼다." (4) 나라는 사람이 바라는 세상과 많이 닮아있는 작가의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이다. 참 마법 같은 단어이다. 상대가 정말 나와 정반대의 사람일지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다. 다만 그 행동이나 말이 법규나 도덕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다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있으면 오히려 소름 돋지 않을까) 우리는 다름을 용인해야 하고,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생각은 내가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을 주지만 일을 하는 회사와 내가 만드는 프로덕트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하나의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에도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과 반대, 논의가 진행된다. 기획자는 프로덕트를 탄생시키는 데 있어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야 하지만, 고유하게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나는 그 가치를 폄훼하지 않는 이상 개발자와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의견을 듣고 그게 우리의 프로덕트를 더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언제나 환영한다. 다만 포함여부는 해당 프로덕트의 일정이나 리소스에 따라 결정되지만, 아이디어를 저버리지 않고 백로그에 기록해 둔다.
또한 하나의 프로덕트가 정말 건강하게 사용자에게 좋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악용되거나 그릇되게 인지될 수 있는 여지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가 되어야 한다. 일례로 내가 만든 프로덕트 중에 본인의 감정을 5자로 작성하여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여기서 꼭 필요한 것은 블라인드 기능이었다. 나는 본인의 감정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만약 한 사용자의 감정이 다른 사용자를 비난하거나, 차별한다면 나는 해당 콘텐츠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유저가 본인이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삭제하거나 사용을 금하지는 않았다. 기획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차별 없이 기능을 쓸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고 책임이다.
좋은 프로덕트는 좋은 사람으로부터 탄생한다는 믿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많은 사용자에게 좋은 프로덕트를 선사할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만연하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NO'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도록,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할 수 있고 그런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인용]
(1)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p. 6
(2)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p.207
(3)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p. 208
(3)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지음. p.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