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람이야.
심지어 가까운 지인들의 삐끗함 조차 걱정스런 맘 이면에 위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심심찮케 접하게 되는 큰 사건사고 소식에 나도 모르게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사기를 당하고 집에 불이 나는 난리통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연이어 계속 발생하는 사건사고 속에서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내 인생이 씁쓸하게 느껴지다가도.
아빠의 부재 속에 살아갈 내 아이가 말할 수 없이 짠해 마음이 타들어가다가도.
타인의 불행에 위안을 얻으며 마음을 다잡을 때가 있다.
'내 문제는 그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런 돈문제 일 뿐이야.
건강하게 살아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거지.
나와 내 가족들은 아프지 않아서 또 살아있어서.
그저 다행이다, 감사하다. 불평하지 말자'
나 정도의 불행은 괜찮은 거라고, 내 문제는 그들의 것에 비해 아무렇지 않은거라고,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오열하는 타인의 모습에 함께 눈물 지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정신만은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미쳐버린걸까?
설마 내가 다른이의 불행을 바라고 쾌감을 얻는 정신병자인걸까?
'착한 사람'은 되지 못할지언정 죄는 짓지 말아야 하는데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짓는 기분에
나만 아는 죄책감에 작아지고 부끄러웠다.
나쁜사람이 되는 기분에 괴로웠다.
그러나 불쾌한 위안을 느낄 때 마다 함께 찾아오는 괴로운 마음을 계속 지니고 살 수는 없다.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정신적 고통이 타인의 불행에서 얻는 위안으로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면 -
그로인해 스스로 엉망인 내 인생에 감사함을 느끼고 긍정적인 면을 더 먼저 볼 수 있다면 -
그러한 심리적 방어기제로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조금 이기적이어져도 된다고 세뇌했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일들로 힘겨워하며 정신, 건강, 경제력 그 모든 것의 바닥을 찍고 있을 때 진심어린 걱정과 위로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주던 지인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의 위안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너를 보면 나는 너무도 평탄하게 잘 살고있구나 생각하게되.
이 정도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구나 싶더라.
나도 힘들긴한데 너 보면 나는 명함도 못내밀겠다 싶어'
나만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얻는게 아니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이기에 당연한 것이고 절대 나쁜 의도로 갖는 마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행복했다.
열심히 살아 온 지난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살아낼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내 자신과 내 인생이 꽤나 가치없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나의 불행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의 이유와 가치로 삼기에 충분했다.
누군가 나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그들의 삶에 감사함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건
나에겐 무척이나 큰 의미이자 보람이었다.
나의 고통이 그저 고통이 아닌 그 어떠한 역할을 하는 거니까.
역시 사람의 삶은 제각각의 사명과 의미를 갖고있다.
성공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어주고 불행한 사람은 위안을 주는.
마냥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 자신의 삶에 보다 더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하는 것에 단 1%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포근해졌다.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갖는 마음한켠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서로 공생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세상에서 위안을 받고 또 위안을 주는 것에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나의 불행도 타인에게 위안이 되길 주저하지 않을 것.
위안 삼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기도하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