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나를 부러워 할까봐 겁이 난다.

by 온날



나에겐 참 이상적이고 또 유난히도 자상한 아빠가 있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나는 내가 여전히 아빠의 눈에는 마냥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정도로 조건없는 사랑을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나의 아빠다.


아빠라는 존재는 그런거라고 당연스레 믿고 살았다.








아니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은 커녕 최소한의 책임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아빠가 존재한다.


아빠라고 불리울 자격도 없는 그런 인간들.


부부가 헤어진 것과 자식에 대한 도리는 별개인 것인데

어른의 문제와 자식에 대한 책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

방관, 폭력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식에게 오래 남을 상처를 남기는 인간.


사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참 많다는 건 익히 들어왔었지만 난 믿지 못했었다.

내가 알고 살아온 아빠라는 존재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막상 나의 일이되니 그제서야 현실감이 들었다.

정말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부류가 바로 내 딸의 아빠였다.



나와 내 딸은 너무도 다른 아빠가 있다.










이혼 후 딸과 함께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돌이 갓 지난 딸이, 내가 아빠를 부르는 것을 보고 똑같이 '아빠'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아빠를 부르고 싶었을까,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때 부터 나는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한다.



딸에게는 부를 대상이 없는 그 호칭을 입에 올리기가 죄스럽다.

나에겐 항상 쉴 곳이 되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빠가 있음이 딸에게 미안하다.


내가 아빠라는 말을 뱉으면 내 딸도 그 말을 하고 싶을까봐

최대한 누르고있는 아빠라는 존재를 상기시킬까봐

차마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가 없다.


일상을 살며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마다

내 딸은 아빠라는 존재를 통해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임이 안타까워 속이 울렁거린다.



딸이 나를 부러워 할까봐 겁이 난다.










아빠라는 존재



내 딸은 최고의 할아버지가 있다.

지금의 나의 아빠에겐 내 딸이 세상 1순위다.

내 딸은 나의 아빠에겐 그저 마른 낙엽을 손에 올려둔 것 처럼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는 존재다.


그러나 아빠와 할아버지는 분명히 다르다.


각 존재의 사랑의 모양은 다르기에,

넘치는 사랑을 주어도 맞지않는 퍼즐 조각처럼 채워지지않는 공간이 아이에게 분명히 있음을 느낀다.


아빠라는 존재의 의미를 딸에게 설명할 수 없다.

책을 읽어주다가도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면 입술이 마비된다.

아빠가 주인공인 책은 이미 숨겨 두었다.


당연한 세상의 이치, 천륜, 관계의 뿌리를 알려줘야 하는데 어렵다.

그리고 무섭다.


차라리 나에게도 아빠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좀 쉬웠을까.

'엄마도 아빠 없는데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잖아' 라고 딸의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아빠의 사랑을 잘 알기에, 그래서 더 아리다.


아빠 몫까지 하려, 온 가족이 용을 쓰고 있지만 사실 대체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런게 아빠라는 존재의 의미이니까.


아이에게 오래 남을 상처가 될까봐 벌써부터 너무나 아리다.


딸이 나를 부러워 할까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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