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도 새싹은 핀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며, 기대보다 좋은 대학에 갔고, 기회를 잘 만나 큰 기업에 입사를 했다. 좋은 경력을 이어가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오롯이 내 힘으로 서울에 투룸 빌라를 얻어 로망대로 집을 꾸미며 반려묘들과 유유자적 일상을 보냈다. 때 되면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여행을 모시고 다니며 나름의 효도도 열심히 했다. 시간과 물질 그 모든 것에 꽤나 자유로웠고 안정감을 느꼈었다.
안정적인 인생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믿었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특별한 걱정고민 없이 살았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큰 풍파 없이 노력에 비해 많은 것을 얻었던 복 받았다 여겼던 내 인생.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복인 '안 좋은 사람 안 만나는 복'. 그 복은 받지 못한 나였다.
인생에 잘못 들인 단 한 사람으로 인해 한 순간에 인생이 통째로 산산조각 무너졌다. 나름대로 견고하게 열심히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 그리고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렇게 무너질 것이었다니. 내 인생은 부실 공사 그 자체였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고, 또 하나를 내어주면 하나를 얻게 되는 인생의 순리처럼 그렇게 모든 걸 잃으면서 비로소 찾게 된 귀한 것들이 있다.
무너짐으로 인해 비로소 내 인생이 견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릴 기회를 얻었다.
30대 중후반. 이제껏 살아온 시간을 감히 '인생'이라 칭해도 될런지, 이른 감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해야만 하는 것에 이미 늦었나 하는 조급함이 들 때가 있다. 지금도 그러한데 혹시나 더 늦게 내 인생에 큰 사건을 맞닥뜨렸다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빌런 한 둘로 무너지지 않을 인생의 기반을 다시 그리고 견고히 다져나가게 되었다. 꽤나 덤벙대기도 하며 뭐든 흘러가는 대로 두던 나에게 플랜 B 그리고 C, D 그 이상까지도 철저히 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MBTI로 치면 극 P였던 내가 J로 변화되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짐이 없었다면 결코 몰랐을 작은 구멍들까지도 유심히 보며 내실을 채워 넣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이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울만 좋은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 온 뒤 땅이 굳고, 폭풍을 견뎌낸 나무가 더욱 깊게 뿌리내리는 것처럼 아마도 시간이 흐른 뒤 내 인생은 이 기회로 하여금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단 한 명의 안 좋은 사람을 만나고서 흥했던 내 인생이 망했다. '뭔가 잘못됐다'라고 느낀 순간 이미 늦었다. 눈앞에서 망해가는 모든 상황을 그저 바라보며 온몸으로 맞아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무서운 건, 불행과 불운은 하나로 끝나지 않고 새끼 치 듯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자책 그리고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이란 폐허 속에서 마음이 괴로운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은은히 그리고 조용히 빛을 내고 있던 내사람들을 발견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내 곁을 지키며 묵묵히 크나 큰 힘과 지지를 보내주었다. 가족들도 말없이 나를 품어주며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진짜 내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최악의 순간에 비로소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내사람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을 계속 살아내었다면 난 끝내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의미 없는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고 우선순위를 놓쳤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깜깜한 바닥에서 허우적 대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그리고 내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솔직할 수 있던 그들은 진짜 내사람으로 남았다.
무너짐이 없었다면 차마 몰랐을 내사람. 폐허에서야 지짜 찾을 수 있는 내사람. 요즘은 그들을 발견하게 해 준 시련이 나에겐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고, 심지어는 잘된 일이었단 생각까지 든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둔 내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뭉클한 뿌듯함도 느낀다.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이 있는 법이니 나도 좋은 사람일거라 세뇌하며 자존감도 채웠다. 그리고 내사람들처럼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리라 매일 다짐한다.
인생이 망하며 나는 말 그대로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전락했다. 먼 일,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내 일이 되었다. 국가의 지원, 복지가 절실했다. 주민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때 내 사정을 듣는 담당자분들이 충격받고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서 혼란한 와중에 내 현실을 인지하기도 했다.
월급명세서에 찍힌 세금들에 억울해할 때가 있었다. 왜 이렇게 세금을 많이 떼가냐고, 나라가 날강도냐고. 그랬던 내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당장의 생계에 도움을 받고 조금이나마 내일을 그릴 힘을 얻고 있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부족한 인간이었는지 깨달았다.
무너진 인생의 잔해 속에서 다양한 세상 사람들, 그리고 제각각의 사정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과 마음을 얻었다. 내가 전재산을 잃지 않았다면, 배신과 회피에 방치당하며 힘겨운 이혼 과정을 겪어내지 않았다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살게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을 좁은 시각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돕고 나누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직접 내가 여러 입장이 되어보니 누구나 예기치 못하게 인생이 몰락할 수 있고 동시에 또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되었기에. 그렇게 나는 잔해 속을 뒤지며 한층 열린 사람이 되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 그리고 때 되면 가는 해외여행이 행복이고 가치 있는 것이며 성공의 지표라 여기던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모두 꽤나 거창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무너져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하루하루 배불리 먹고, 더울 땐 시원하게 또 추울 땐 따스하게 잘 곳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것인지를.
사사로운 것에 불평하거나 불만 갖지 않게 되었다.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것을 가질 수도 또 잃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니 세상의 아름다운 부분을 먼저 보게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지 않아도 그저 이 순간 무탈함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을 겪으면서도 이정도로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역시 복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교, 경쟁, 욕심... 무의미한 부정적인 감정에 나의 아무것도 소모하기 싫어졌다.
지금에 안주하겠단 의미는 결코 아니다. 행복이란, 예쁜 희망을 품고 선한 인생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에 탁월한 재료가 되어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소소한 것에서도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결국 나를 바로 세워줄 것이기에 폐허 속에서 얻은 귀한 것이란 의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폐허 속에서 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누가 어떻게 보든 나는 그 누구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잦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폐허 속에서도 새싹이 피어나 듯,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여겨지는 깜깜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 상황을 마주하냐에 따라 분명 빛을 만날 수 있다.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당장 내 배를 불려주진 못하더라도, 당장 내일 아이 학원비가 되어주진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일이란 상대적인 것이기에 누군가에겐 난 배부른 소리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난 말한다.
내 인생은 분명히 무너졌다고. 그랬었다고. 그리고 그 무너진 인생의 폐허 속에서 더 귀한 것들을 찾았다고.
혹여나 지금 폐허 속에서, 어둡고 축축한 바닥을 헤매고 있다면 그곳에 그저 눕지 말고, 숨겨져 있을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는 귀한 보물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