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하고 부정해봐도 자라나는 감정이라는 녀석
며칠이 지나자
새싹은 햇볕도 별로 받지 않았는데
쑥쑥 자라났어요.
심지어 곰 아저씨가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도 듣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곰 아저씨는 조금 걱정스러워졌어요.
"도대체 넌 누구니…
왜 혼자서 그렇게 자라는 거니?"
곰 아저씨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이름 모를 새싹을 돌봐주지 않았어요.
다른 꽃들에게는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물을 주며 잎사귀를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어요.
그런데도 새싹은 쑥쑥 자라났어요.
곰 아저씨는 곰 아저씨의 허락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자라난 새싹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한동안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서 다른 꽃들은 조금 시들시들 해졌는데, 도대체 이 새싹은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 건지 무럭무럭 커갔다. 곰 아저씨는 혹여라도 꽃집 창문 너머로 이 새싹이 보일까 봐 걱정되었다. 누가 볼까 봐 더 이상 자라나지 않도록 물을 주지도 않고, 다른 꽃들에게 매일밤 자장가처럼 불러주는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다.
감정을 외면하고 억압한다는 건 뭘까?
감정을 외면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 감정을 느끼지 않을수 있을까? 나는 왜 내 마음속에 자라난 작은 새싹을 모르는 척하고 없었던 일인 것처럼 굴며 마음속 작은 문을 닫아버리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너무 강하고 낯선 자극.
우리의 의식은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그 문을 닫아버린다.
원래 닫혀있었던 문인 것처럼.
이미 문 너머 한 구석에서 새싹은 혼자서도 쑥쑥 커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직면하는 게 두려워서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원래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버린다. 그냥 그러면 모르는 척했으니까 그대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이게 웬걸? 이미 자라 버린 새싹은 그렇게 무시당한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꽃집 운영에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페르소나에 몰두해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슬픔을 느끼는 대신 바쁜 일을 만들어 잊으려고 하거나, 분노가 올라올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아버리기도 하며, 두려움이 밀려올 때는 오히려 웃어버리며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기도 한다.
"지금은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돼!", 혹은
"이런 감정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라고 돌아서버리는 일이 반복될 때, 그렇게 감정은 억압되고 그 억압은 우리의 무의식 어느 한 부분에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감정은 단순히 흘러가는 기분이 아니다.
감정은 외면한다고 해서
억누른다고 해서 참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자라난 새싹을 모르는 척하고 외면하는 건 사실 지금 잘 자라나고 있는 정원의 꽃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초기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예쁜 꽃만 키우는 꽃집 주인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곰 아저씨처럼 장기적으로는 자기 인식이 왜곡될수도 있다.
그림자 없는 빛은 없다.
어둠을 부정할수록 어쩌면 그 어둠은 더욱 커져 나를 잠식시킬 수도 있다. 감정을 모르는 척 외면하기보다 왜 지금 이 감정이 자라났을까 나의 정원을 돌아봐야 할 때일 수도 있다.
과연 곰아저씨는 혼자서도 쑥쑥 커나가는 이 새싹을 계속 모르는 척할 수 있을까?
* 모든 그림과 글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씁니다.